경주이씨 인물 과거/경주이씨◇인물

경주이씨 주요 인물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9. 18:33

경주이씨 주요 인물

 

이(ㄱ) (ㄴ~ㅂ) ()

이갑성(李甲成)

1889~1981. 일제강점기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 호는 연당(硏堂). 1919년 최연소자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민족독립선언서에 서명. 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 회장. 제2대 민의원에 당선. 국민회(國民會)의 최고위원에 추대. 자유당 최고위원에 임명. 33인유족회장·국산부흥회장. 건국훈장 대통령장.

이개립(李介立)
1544(중종 39)~1625(인조 2). 조선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의 의병장. 자는 대중(大中 혹은 大仲), 호는 성오당(省吾堂)·역봉(櫟峰). 대호군(大護軍) 이욱(李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이선동(李善童)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준(李竣). 김성일(金誠一)의 문인.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산은현감(山隱縣監).

이거명(李居明)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중시조이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문하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찬한 이제현 묘지문(墓地文)에 따르면,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은 시조 이알평(李謁平)의 원대손(遠代孫)이나 선계(先系)는 미상이다. 신라 말 소판(蘇判) 벼슬을 하였으니 소판(蘇判)은 진골(眞骨)만이 오를 수 있는 관등이다.

이건영(李健榮)
1853~1940. 대한제국기 전기철도사무사판위원, 충청남도관찰사, 중추원찬의 등을 역임한 관료. 부통령 이시영의 형.

이겸호(李謙浩)
1895~1942. 일제강점기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명 석(石). 1910년 만주로 건너가 이상룡(李相龍)·이시영(李始榮)·김동삼(金東三) 등과 독립운동기지건설에 노력.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항일운동을 전개. 건국포장. 애국장이 추서.

이경륜(李敬倫)
1735(영조11)~1789(정조13). 조선후기 대사간(大司諫),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사서(士敍). 이세필(李世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태좌(李台佐)이다. 아버지는 이종백(李宗白). 영중추부사 이종성(李宗城)에게 입양.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경억(李慶億)
1620(광해군12)~1673(현종13). 조선후기 대사헌(大司憲),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좌의정(左議政)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석이(錫爾), 호는 화곡(華谷). 서울 출생. 이경윤(李燝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대건(李大建)이다. 아버지는 판서 이시발(李時發). 『화곡유고』. 시호는 문익(文翼).

이경일(李敬一)
1734(영조10)~1820(순조20). 조선후기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형조판서(刑曹參判), 좌의정(左議政)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원회(元會), 호는 청헌(聽軒). 이항복(李恒福)의 6대손이며, 이세장(李世章)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문좌(李文佐)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종열(李宗悅), 도사 이종악(李宗岳)에게 입양. 문과정시(文科庭)에 을과(乙科)로 급제. 봉조하(奉朝賀). 오은군(鰲恩君)에 피봉. 『청헌유고(聽軒遺稿)』. 시호는 효정(孝定).

이경휘(李慶徽)
1617(광해군9)~1669(현종10). 조선후기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 경기감사(京畿監司),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군미(君美), 호는 묵호(默好) 또는 춘전거사(春田居士).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며, 이경윤(李憬胤)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대건(李大建)이고,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시발(李時發).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춘추관기사관으로 『인조실록』 편찬사업에 참여. 시호는 익헌(翼憲).

이계조(李啓朝)
1793(정조17)~1856(철종7). 조선후기 경상감사(慶尙監司), 대사성(大司成),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덕수(德叟), 호는 동천(桐泉). 서울에서 살았다. 이항복(李恒福)의 7대손이며, 이종주(李宗周)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경관(李敬寬)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석규(李錫奎).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 제2인으로 급제. 글씨에도 뛰어나 작품으로 경릉비(景陵碑)」. 시호는 문정(文貞).

이공린(李公麟)
생몰년 미상. 조선전기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 창평현감(昌平縣監) 등을 역임한 문신.

이광윤(李光胤)
1564(명종19)~1637(인조15). 조선시대 수찬(修撰), 서천군수(舒川郡守), 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극휴(克休), 호는 양서(瀼西).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 이공린(李公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창평현령(昌平縣令) 이곤(李鯤)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잠(李潛). 진사(進士).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도승지(都承旨)에 추증. 인산서원(仁山書院)에 제향.

이광좌(李光佐)
1674(현종15)~1740(영조16). 조선후기 병조판서(兵曹判書), 우의정(右議政), 영의정(領議政)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상보(尙輔), 호는 운곡(雲谷). 이항복(李恒福)의 현손이다. 이성남(李星男)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시현(李時顯)이다. 아버지는 장령(掌令) 이세구(李世龜). 실록청총재관(實錄廳摠裁官)이 되어 『경종실록』·『숙종실록』 보유편의 편찬.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급제.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 1등.

이교영(李敎榮)
1838(헌종4)~?. 개항기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이조참판(吏曹參判),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치이(稚而). 이계형(李啓亨)의 손자로, 이유대(李裕大)의 아들.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중추원일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 비서원승(秘書院丞).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이구(李龜)
1469(예종1)~1526(중종21) 조선전기 교리(校理), 수찬(修撰), 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장(子長), 호는 사미정(四美亭). 이제현(李齊賢)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창평현령 이공린(李公麟).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이구(李球)
1488(성종19)~1550(명종5).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창서(昌瑞). 호는 표덕(表德). 양평공 철견(鐵堅)의 손자. 무과시(武科試)에 급제. 세자익위우익찬(世子翊衛右翊贊). 병마만호(兵馬萬戶). 풍천도호부사(豊川都護府使).

이구징(李耉徵)
1609(광해군1)~1688(숙종14). 조선후기 예조좌랑(禮曹佐郞),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대년(大年), 호는 죽헌(竹軒). 경주 출생. 이홍(李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한(李景漢)이다. 아버지는 이상일(李尙一). 향시(鄕試)에 합격. 명경시(明經試)와 사마시(司馬試)에 모두 합격.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추증. 『죽헌문집』 3권.

이규(李樛)
생몰미상. 고려말 문신. 일명은 조은(朝隱). 성암공 인정(仁挺)의 아들. 성균시(成均試) 문과(文科)에 장원급제. 한림학사(翰林學士). 우헌납(右獻納) 덕원부사(德源府使).

이규(李揆)
고려후기 우대언(右代言), 밀직부사(密直副使), 첨의참리(僉議參理)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정렬(貞烈). 월성군파 파조인 월성군(月城君) 지수(之秀)의 장자.

이규채(李圭彩)
1888(고종25)~1947.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한국독립당 정치부위원, 신한독립당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명 규보(圭輔). 자는 공삼(公三), 호는 경산(庚山)·동아(東啞)·우정(宇精). 경기도 포천 출신. 이철영(李喆榮)의 아들.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이규헌(李圭憲)
1896~1976. 해방 이후 『긍당집』을 저술한 학자. 자는 성빈(聖斌), 호는 긍당(肯堂). 공주 출신. 아버지는 이회영(李晦榮). 재종숙 이하영(李夏榮)에게 입양되었으며, 작은아버지 이철영(李喆榮)에게 수학. 이철영의 『성암집(醒菴集)』을 편집, 간행하였고, 이유태의 『초려전집(草廬全集)』 중간과 『사례홀기(四禮笏記)』·『문산문답(文山問答)』 등을 간행하는 데 참여.

이규홍(李圭弘)
1881(고종18)~1928. 대한제국기 고산, 진안, 장수, 용담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 자는 원오(元五), 호는 오하(梧下). 전라북도 익산 출신. 중추원의관 이기영(李琪榮)의 아들. 대통령표창. 건국포장이 추서.

이극복(李克福)
1548(명종3)~1596(선조29).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팔공산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자는 유사(有司), 호는 모석(慕石) 또는 모의당(慕義堂).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윤(李倫). 조호익(曺好益)의 문인. 형제가 무과(武科)에 급제.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 『모석유고』 1책.

이금서(李金書)
고려초 문신으로, 호는 남계(南溪). 중시조 신라 말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의 손자이다. 경순왕(敬順王)의 사위이다. 고려 조정에 출사하여 태조(太祖) 때 삼한공신(三韓功臣)에 녹훈되었다. 중원태수(中原太守) 호부랑중(戶部郞中). 태조 때 개국공신(開國功臣) 삼한공신(三韓功臣)에 책록되고, 고려조에 출사하여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역임.

이금현(李金現)
병부령(兵部令). 신라(新羅) 법흥왕(法興王)이 병부령(兵部令)을 두어 대아찬(大阿餐), 각간(角干)의 벼슬로 재상(宰相)을 겸직(兼職)토록 하였다. 아들이 금서(金書).

이기남(李箕男)
1598(선조31)~1680(숙종6). 조선후기 백령첨사(白翎僉使), 이산군수(理山郡守), 풍천부사(豊川府使) 등을 역임한 무신. 자는 정숙(靜叔). 할아버지는 참찬 이몽량(李夢亮)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이항복(李恒福). 진사(進士). 풍천부사에서 체임(遞任)할 때에는 오직 쌀 한 섬만을 싣고 귀향할 만큼 청백하였다.


이녹천(李祿千)

공부상서(工部尙書). 인종(仁宗) 을미(乙未)년에 상장군(上將軍)에 올라 통제사(統制使)로 서경(西京)의 도적(盜賊) 묘청(妙淸) 잔당을 공격한 사실이 고려사(高麗史)에 보인다. 父는 시랑공(侍郞公) 이춘림(李春林).

이단장(李端章)
1664(현종5)~1727(영조3). 조선후기 정언(正言), 함평현감(咸平縣監)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상보(相甫). 이서(李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태(李惟泰)이다. 아버지는 이옹(李顒).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이달존(李達尊)
1313(충선왕5)~1340(충혜왕 복위1). 고려후기 감찰장령(監察掌令), 전의부령(典儀副令), 전리총랑(典理摠郞)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자는 천각(天覺), 호는 운와(雲窩)이다. 문하시중 이제현(李齊賢)의 아들. 문과(文科)에 급제.

이달충(李達衷)
?~1335(우왕11). 고려후기 『제정집』을 저술한 유학자. 문신. 자는 중권(仲權), 호는 제정(霽亭). 증조는 문하평리(門下評理) 이핵(李翮), 할아버지는 밀직부사 이세기(李世基), 아버지는 첨의참리(僉議參理) 이천(李蒨). 문과(文科)에 급제. 호부상서(戶部尙書). 밀직제학(密直提學).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제정집』. 시호는 문정(文靖).

이담(李擔)
1370(공민왕19)~1405(태종5). 조선전기 직예문관(直藝文館), 우부대언(右副大言) 등을 역임한 문신.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제현(李齊賢)의 증손자이고, 아버지는 이학림(李學林). 춘장문과(春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상서사(尙書司). 서장관(書狀官).

이대건(李大建)
1550년(명종 5)~1574년(선조 7). 조선전기 우의정(右議政)에 추증된 문신. 자는 여립(汝立), 호는 오촌(梧村). 이원(李黿)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증좌승지 이경윤(李憬胤). 증광향시(增廣鄕試).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청주의 송천서원(松泉書院)에 제향(祭享).

이득윤(李得胤)
1553(명종8)~1630(인조8). 조선시대 『현금동문유기』, 『서계집』, 『서계가장결』 등을 저술한 유학자. 역학자(易學者), 음악인. 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 고려말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 진사(進士). 청주의 신항서원(莘巷書院)과 청안(淸安)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祭享). 『현금동문유기』외에 저서로 『서계집(西溪集)』·『서계가장결(西溪家藏訣)』이 있다. 특히, 정두원과 나눈 서한의 내용을 담은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는 『안상금보(安常琴譜)』·『조성금보(趙晟琴譜)』와 더불어 임진왜란 이전의 음악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래(李來)
1362(공민왕12)~1416(태종16). 조선전기 첨서승추부사(僉書承樞府事), 대사간(大司諫), 공조판서(工曹判書) 등을 역임한 문신. 초명은 이내(李徠). 자는 낙보(樂甫)·안국(安國). 아버지는 우정언(右正言) 이존오(李存吾)이며, 우현보(禹玄寶)의 문인. 문과(文科)에 급제. 추충좌명공신(推忠佐命功臣) 2등에 책록. 계림군(鷄林君)으로 책봉.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지의정부사겸판경승부사(知議政府事兼判敬承府事). 태종 묘정에 배향. 시호는 경절(景節).

이명민(李命敏)
?~1453(단종1). 조선전기 호조좌랑(戶曹佐郞),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이회(而晦), 호는 지지당(知止堂). 아버지는 대사헌 이승직(李繩直). 직장(直長)·안악군수(安岳郡守).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 영월의 팔충신조사단(八忠臣朝士壇)에 제향. 시호는 충민(忠愍).

이명우(李明雨)
1901~?.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조선의 영화감독이자 촬영감독으로,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의 감독을 맡았으며, 경성영화촬영소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친 바 있다. 조선 최초의 촬영기사인 이필우(李弼雨)의 동생. 이명우(李明雨)는 이필우(李弼雨)와 함께 조선 영화계의 초창기 촬영기사로 널리 알려진 스텝이었다.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은 대표적인 경우였다. 이필우가 〈황무지〉 제작 문제로 다른 제작진들과 불화를 일으키고 경성촬영소를 떠난 이후, 경성촬영소를 지키며 기술 유지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영화인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초기 조선 영화계의 도전하여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촬영감독으로도 기록될 것이다.

이몽규(李夢奎)
1510(중종5)~1563(명종18) 조선 중기의 명현(名賢). 자는 창서(昌瑞), 호는 천휴당(天休堂). 증이조판서 인신(仁臣)의 계자(季子)이고 명종 때의 명장 몽린(夢麟)의 넷째 아우. 경자식년사마시(庚子式年司馬試)에 생원 3등으로 합격.

이몽량(李夢亮)
1499(연산군5)~1546(명종19). 조선전기 병조참판(兵曹參判), 경기감사(京畿監司), 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응명(應明). 이숭수(李崇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동판관 이성무(李成茂)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예신(李禮臣). 생원시(生員試)·진사시(進士試)에 급제. 형 이몽윤(李夢尹)과 함께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도승지(都承旨).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우참판(右參判). 시호는 정헌(定獻).

이몽린(李夢麟)
1496(연산군2)~1563(명종18). 명종 때의 명장. 자는 국서(國瑞)이고 증이조판서 인신(仁臣)의 장남이며 명상(名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당숙. 무과(武科)에 등제. 단천군수(端川郡守). 전라우도수군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포도대장(捕盜大將). 증영의정(贈領議政)에 추서. 사패묘지(賜牌墓地)를 받았으며 3대 증직(贈職)이 되어 고(考)는 증이조판서*조부도 증이조판서*증조부는 증이조참판을 받았다.

이몽서(李夢犀)
1508(중종3)~1569(선조2).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희서(希瑞). 판서공 인신(仁臣)의 넷째 아들. 사마시(司馬試)에 급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평시서령(平市署令). 고양군수(高陽郡守).

이몽윤(李夢尹)
생몰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응신(應莘). 찬성공 예신(禮臣)의 아들. 식년시문과병과(式年試文科丙科)에 급제. 사옹원정(司饔院正).

이문좌(李夢麟)
1461(세조7)~1491(성종22). 조선전기 안협현감을 역임한 문신. 자는 현도(顯道). 호는 세촌(細村). 증조는 이진(李進)이고, 할아버지는 이권생(李權生)이다. 아버지는 감무 이계상(李繼祥). 일찍이 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 등과 더불어 김종직(金宗直)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다. 생원(生員)으로 춘당문과(春塘文科)에서 갑과 1인으로 급제. 안협현감(安峽縣監). 예천의 인산서원(仁山書院)에 제향.

이문형(李文炯)
?~1467(세조13). 조선전기 우승지(右承旨), 형조참판(刑曹參判), 이조참판(吏曹參判) 등을 역임한 문신. 할아버지는 이담(李擔)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이희(李瞺).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정과(丁科)로 급제. 『세종실록』편찬에 참여.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 『역대병요(歷代兵要)』를 교정. 『북정록(北征錄)』을 교정. 시호는 문안(文安).

이병성(李炳星)
1909~1960. 일제강점기 아악수, 아악수장, 아악사 등을 역임한 명창. 호는 두봉(斗峯). 서울 출생. 고종 때의 거문고 대가인 수경(壽卿)의 아들. 국악진흥회로부터 국악상을 수상. 그의 가곡은 장남 동규(東圭)에 의하여 계승.

이보림(李寶林)
?~1385년(우왕11). 고려후기 우사간(右司諫), 남원부사(南原府使), 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문하시중을 지낸 이제현(李齊賢)의 손자이며, 이서종(李瑞種)의 아들. 계림군(鷄林君). 시호는 문숙(文肅).


이사균(李思鈞)

1471(성종2)~1536(중종31). 조선전기 우승지(右承旨), 이조판서(吏曹判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중경(重卿), 호는 눌헌(訥軒). 이희(李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계반(李繼潘)이다. 아버지는 판관 이식(李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시호는 문강(文剛). 『눌헌집(訥軒集)』.

이상백(李相佰)
1904~1966. 해방 이후 『한국사: 근세전기편』, 『한국사: 근세후기편』 등을 저술한 학자. 사회학자, 체육인. 호는 상백(想白)·백무일재(百無一齋). 대구 출신. 아버지는 이시우(李時雨)이다. 이시우의 셋째 아들로, 맏형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상정(李相定), 중형은 민족시인 이상화(李相和), 아우는 정통 수렵인 이상오(李相旿). 「질서와 진보」·「중간계급의 성격」 등 많은 논문을 발표. 미헬스(Michels,R.)의 『정치사회학』, 루섹 와런의 『사회학개론』 등의 역서. 『서해도서(西海島嶼)』를 발간. 훈민정음을 해설한 『한글의 기원』을 저술. 한국체육회장(1964∼1966)·한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1964∼1966).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건국문화훈장 등 여러 가지 훈장과 상을 받았으며, 모란장이 추서.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아명(兒名)은 복남(福男) ・ 상남(相男), 자(字)는 순오(舜五), 호(號)는 보재(溥齋), 당호(堂號)는 벽로방(碧蘆舫).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성균관(成均館)교수 겸 관장. 대한협동회(大韓協同會)가 조직되었고 회장으로 추대. 『식물학(植物學)』과 물리학 저술인 『백승호초百(勝胡艸)』, 화학 저술인 『화학계몽초(化學啓蒙抄)』를 편찬하는 등 근대과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동생 이상익도 뛰어난 수학자로서 저술을 남겼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이상옥(李相玉)
1908~1981.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 『한국사통론』, 『한국사 신강』 등을 저술한 학자. 사학자, 한학자. 호는 한파(漢坡). 경기도 파주 출신. 아버지는 한학자 이선우(李善雨). 『한국의 역사』 전 12권의 저술로 제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 우석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 『한국의 역사』 전 13권, 『한국사통론』·『한국사 신강』·『한국사화』·『한국인』·『인간의 역사』·『한국의 고경학(古經學)』 등. 130여편의 논문 및 논설.

이상정(李相定)
1897~1947. 일제강점기 충칭육군참모학교 교관, 신한민주혁명당 중앙위원 , 군사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별명은 이연호(李然浩)·이직(李直). 호는 청남(晴南)·산은(汕隱). 대구 출신이다. 아버지는 이시우(李時雨)로 이시우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우로는 이상화(李相和, 李尙火)·이상백(李相佰)·이상오(李相旿)가 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일우(李一雨)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흥사단(興士團)에 가입. 유고로 『표박기(飄泊記)』가 있고, 시(詩)·서(書)·화(畫)에 능하였으며, 전각(篆刻)에 뛰어났다.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이상협(李相協)
1893~1957 일제강점기 매일신보 발행인, 동아일보 편집국장, 조선일보 이사 등을 역임한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호는 하몽(何夢). 해방후 매일신보가 미군정에 인계된 뒤에도 부사장으로 재직했으며 1951년 자유신문사 사장 또는 부사장으로 만년까지 활동. 작품으로는 ≪아라비안 나이트≫·≪해왕성≫·≪재봉춘(再逢春)≫·≪정부원(貞婦怨)≫·≪누(淚)≫·≪무궁화≫ 등.

이석(李錫)
1882~1909. 대한제국기 산남의진에 입진하여 초장과 좌령장으로 활약한 의병. 자는 사옥(士玉). 경상북도 청송 출신.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

이석규(李錫奎)
1758(영조34)~1839(헌종5). 조선후기 우참찬(右參贊),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 초명은 이영석(李永錫), 자는 치성(穉成), 호는 동강(東江). 진위(振威)출신. 이항복(李恒福)의 7대손이며, 이정관(李鼎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종주(李宗周)이다. 아버지는 이경관(李敬寬).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시호는 효정(孝貞).

이석표(李錫杓)
1704(숙종30)~미상. 조선후기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대사간(大司諫),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운원(運元), 호는 남록(南麓). 이경억(李慶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이인엽(李寅燁)이다. 아버지는 이하곤(李夏坤). 진사시(進士試)에 장원급제. 알성문과(謁聖文科)에도 장원급제.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잡저문고(雜著文藁)』 6책.

이선용(李宣用)
군윤(軍尹). 고려관제(高麗官制)에 경직(卿職). 8품(八品)을 군윤(軍尹)이라 하고 9품(九品)은 보윤(甫尹)이라 하였다. 父는 생원공(生員公) 이현복(李玄福).

이성남(李星男)
1578(선조11)~1642(인조20).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명숙(明叔). 백사공 항복(恒福)의 아들. 사마시(司馬試)에 급제. 철원부사(鐵原府使). 오흥군(鰲興君)에 추봉.

이성룡(李聖龍)
1672(현종13)~1748(영조24). 조선후기 사헌부지평(司憲府 持平),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공조판서(工曹判書) 등을 역임한 문신. 초명은 이운룡(李雲龍). 자는 자우(子雨), 호는 기헌(杞軒). 이경성(李慶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저(李竚)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여주(李汝柱). 증광문과(增廣文料)에 병과(丙科)로 급제. 시호는 혜정(惠靖).

이성중(李誠中)
1331(충혜1)~1410(태종10). 조선전기 축성도감제조(築城都監提調),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계저(季著). 대제학 검교정승(檢校政丞) 세기(世基)의 손자이고 대제학 문하시랑평장사 천(蒨)의 아들. 문과(文科)에 급제. 시호는 정순(靖順)이고 전주 구호원(龜湖院)에 배향.

이세구(李世龜)
1646(인조24)~1700(숙종26). 조선후기 상의원첨정(尙衣院僉正), 홍주목사(洪州牧使)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수옹(壽翁), 호는 양와(養窩). 이항복(李恒福)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성주목사 이시현(李時顯)이다. 박장원(朴長遠)의 문인.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경학(經學)·예설(禮說)·역사 등에 걸쳐 박통. 영의정(領議政)에 추증. 홍주의 혜학서원(惠學書院)에 제향. 『양와집(養窩集)』 13책.

이세기(李世基)
생몰미상. 고려말 문신. 호는 송암(松巖). 시(諡)는 문희(文僖). 열헌공 핵(翮)의 계자(季子). 성균시(成均試) 문과(文科)에 장원급제. 친시(親試) 병과(丙科)에 장원급제. 중형 동암(東庵)과 2.3등으로 동방급제. 천장급제라 하였으며 황패를 하사. 비서성비서교서(秘書省秘書校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검교정승(檢校政丞). 경주 단구서원에 배향. 파주 국당공 천(蒨) 묘상에 설단.

이세장(李世長)
1628(인조6)~1668(현종9). 조선후기 예조좌랑(禮曹佐郞), 이조좌랑(吏曹佐郞), 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도원(道遠).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남(李井男)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 이시술(李時術). 생원(生員)·진사(進士) 양시(兩試)에 모두 합격. 증광문과(增廣文料)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세필(李世弼)
1642(인조20)~1718(숙종44). 조선후기 김제군수(金堤郡守), 사복시정(司僕寺正), 장악원정(掌樂院)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자는 군보(君輔), 호는 구천(龜川). 이항복(李恒福)의 증손이며, 이조참판 이시술(李時術)의 아들.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영광의 백산서원(柏山書院)과 김제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 시호는 문경(文敬).

이세현(李世賢)
1656(효종7)~1697(숙종23).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문관이자 학자. 경주(慶州)이고 자(字)는 석경(碩卿)이다. 이세현은 경주 이씨 중시조 이거명(李居明)의 28세손이고, 경주 이씨 상서공파 파시조 이과(李簻)의 12세손이며, 상서공파 옥구 입향조 이몽원(李夢黿)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봉정대부 군자감 정을 지낸 이용근(李庸謹)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을 지낸 이뢰(李雷)이다. 아버지는 장사랑을 지낸 이문빈(李文彬). 식년시(式年試)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증광시(增廣試) 문과(文科)에 급제. 예조좌랑(禮曹佐郞). 옥구 삼현사(三賢祠)에 배향.

이수경(李壽卿)
1882(고종19)~1955. 일제강점기 아악수장, 아악사 등을 역임한 국악인. 거문고명인. 자는 치일(致一), 호는 송사(松史). 서울 출신. 헌종 때 피리의 명인인 이인식(李寅植)의 장손이고, 역시 고종 때 피리의 명인인 이원근(李源根)의 맏아들이며, 가곡의 명창 이병성(李炳星)의 아버지. 춤과 피리, 아악의 거장(巨匠).

이수림(李壽林)
1332년(충혜왕2)~1369(공민왕18). 고려후기 정조사(正朝使),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밀직원사(密織院事)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할아버지는 추성양절동덕협의찬화공신 우정승 영가부원군(推誠亮節同德協義贊化功臣右政丞永嘉府院君) 이제현(李齊賢)이다. 아버지는 전법총랑(典法摠郎) 이달존(李達尊)이며, 어머니는 백이정(白頤正)의 딸로서 고려 후기에 손꼽히던 명문세족 출신.

이수일(李守一)
1554(명종9)~1632(인조10)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庵). 증조할아버지는 주부를 지내고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된 이오(李塢)이고, 할아버지는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된 생원 이자침(李自琛)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월성부원군 이난(李鸞). 별시무과(別試武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 형조판서겸금화제조주사대장. 시호는 충무(忠武).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좌의정겸영경연사(左議政兼領經筵事)에 추증. 영의정(領議政)에 추증.

이수종(李秀宗)
1614(광해군5)~1666(현종7).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사종(士宗). 호는 가은(加隱). 관수재공 응윤(應胤)의 아들. 사마시(司馬試)에 급제. 성균진사(成均進士).

이숭수(李崇壽)
1425(세종7)~1489(성종20). 조선 전기 문무신. 초명은 옥견(玉堅). 자는 미수(眉叟). 참판공 연손(延孫)의 아들. 문과(文科)에 급제. 무과시(武科試) 급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절충장군(折衝將軍). 이조판서(吏曹判書) 추증.

이승상(李升商)
?~1413(태종13). 조선전기 좌대언(左代言), 형조판서(刑曹判書) 등을 역임한 문신. 문정공(文靖公) 달충(達衷)의 손자. 성균관시(成均館試)에 장원(壯元)으로 합격. 진사과(進士科) 합격.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4등에 책록. 시호는 처음에 공정(恭靖)이라 했으나 나중에 공의(恭懿)로 개시(改諡).

이승증(李承曾)
1515(중종10)~1599(선조32).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자는 희로(希魯), 호는 관란(觀瀾). 경주 출신. 아버지는 훈도 이계간(李季干). 김대유(金大有)의 문인. 생원(生員)·진사시(進士試)에 모두 합격. 의병장. 사도시직장(司䆃寺直長). 정려(旌閭). 지곡서원(智谷書院)·도연서원(道淵書院)·문호서원(汶湖書院)에 배향. 『관란문집(觀瀾文集)』 1권.

이승직(李繩直)
1378년(우왕4)~1431년(세종13). 조선 전기 문신. 월성군 지수(之秀)의 증손 판서 만실(蔓實)의 아들. 문과(文科)에 급제. 호군(護軍).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대사헌(大司憲).

이승훈(李承訓)
정조시랑(正朝侍郞). 고려관제(高麗官制)에 내사시랑(內史侍郞), 문하시랑(門下侍郞), 중서시랑(中書侍郞)이 있는데 벼슬차례에 6품(六品)은 경직(卿職)이고 7품(七品)은 정조(正朝)이다.

이시발(李時發)
1569(선조2)~1626(인조4)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 고조할아버지는 이원(李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며,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 아버지는 진사 오촌(梧村) 이대건(李大建).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의 문하. 증광시문과(增廣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형조판서(刑曹判書). 이시발은 문신이면서도 임진왜란 이후 국방·군사 분야에 상당한 업적을 쌓은 장신형(將臣形) 전략가이다. 『벽오유고(碧梧遺稿)』. 『주변록(籌邊錄)』.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익(忠翼).

이시성(李時省)
1598(선조31)~1668(현종9).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삼(子三). 호는 기봉(騏峰). 현감공 태남(泰男)의 아들. 사마양시(司馬兩詩)에 급제. 증광시문과병과(增廣試文科丙科)에 급제. 다시 중시문과병과(重試文科丙科)에 급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기봉집(騏峰集).

이시술(李時術)
1606(선조39)~1672(현종13)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사강(士强). 명상 항복(恒福)의 손자이며 부사 정남(井男)의 아들. 진사시(進士試).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형조참의([刑曹參議)·우부승지(右副承)·대사간(大司諫)을 거쳐 병조참지(兵曹參知)·이조참의(吏曹參議). 병조참판(兵曹參判).

이시영(李始榮)
1869(고종6)~1953.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10대조 이항복(李恒福)의 후손으로 이후 6명의 정승과 2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명문가로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6형제 가운데 이회영(李會榮)이 바로 위인 넷째 형이었다. 본명은 성흡(聖翕), 자는 성흡(城翕) ・ 성옹(聖翁), 호는 성재(省齋), 해방 전에는 시림산인(始林山人)이란 필명을 아호로 썼다. 소과(小科)에 합격. 대과(大科)인 문과에 급제. 홍문관의 수찬(修撰) ・ 교리(敎理) ・ 응교(應敎)와 규장각 직각(直閣)으로 시강원(侍講院)의 문학직을 겸하였다. 1893년 사간원과 사헌부를 거치며 여러 요직을 겸임할 정도로 승승장구. 대종교(大倧敎) 원로원장에 선출. 성균관 총재에 추대. 배영대학관(培英大學館)을 설립. 신흥전문학관(新興專門學館)을 세웠으며 두 학교는 통합되어 1949년 5월 2년제 신흥초급대학으로 개교하였다. 제헌국회에서 부통령에 당선. 제2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국민당 후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

이시현(李時顯)
1622(광해군14)~1678(숙종4). 조선후기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 개령현감(開寧縣監), 공주목사(公州牧使)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사영(士榮).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의 후손이며, 참판 이몽양(李夢亮)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부사 이성남(李星男).

이신우(李申佑)
병부시랑(兵部侍郞).

 

 

이(ㅇ) (ㅈ) (ㅊ~ㅎ)

이알평(李謁平)

알평(謁平, 생몰년 미상)은 신라 초기 신화에 등장하며, 사로6촌장(진한)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촌장으로 경주 이씨의 시조이다. 혁거세(赫居世) 거서간(居西干)의 탄생과 즉위에 관여하였다. 자(字)는 천서(天瑞), 호(號)는 표암(瓢巖), 성(姓)은 이(李), 시호(諡號)는 문선공(文宣公) 또는 은열왕(恩烈王). 혁거세(赫居世) 거서간(居西干) 때에 개국(開國) 좌명공신(佐命功臣)에 녹훈(錄勳)되고 각간(角干), 아찬(伊飡) 등을 역임하였으며 군무를 주관. 고려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찬한 익재공 묘지(墓誌)에 신라말 진골(眞骨) 출신으로 소판(蘇判) 관직에 오른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 이후의 계보가 밝혀짐으로써,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한 계보가 전해지게 된다.

이양생(李陽生)
1423(세종5)~1488(성종19). 조선전기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아버지는 군수 이종직(李從直). 계성군(鷄城君)에 봉하여졌으며, 충의교위(忠毅校尉) 행호분위중부사직(行虎賁衛中部司直)으로 겸사복(兼司僕). 서얼 출신이기 때문에 자급(資級)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으나 한 번도 현직(顯職)에는 등용되지 못하였고, 평생 겸사복으로 있으면서 포도장으로 도성 내외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도적 소탕에 공을 세웠다. 시호는 양평(襄平).

이연손(李延孫)
1404(태종4)~1463(세조9). 조선 초기의 무신. 상서공(尙書公) 과의 증손이고 첨지중추부사 숭수(崇壽)의 아버지. 무과(武科)에 급제.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공조참판(工曹參判). 영의정(領議政)이 추서.

이영(李瑛)
1501(연산군7)~1558(명종13). 조선전기 예조정랑, 병조정랑,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윤(子潤). 이혁손(李赫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증(李增)이다. 아버지는 부사과 이양필(李良弼). 진사시(進士試).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

이영도(李永道)
1916~1976. 해방 이후 『청저집』, 『석류』 등을 저술한 시인. 시조시인. 호는 정운(丁芸). 경상북도 청도 출생.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의 누이동생. 눌월문화상(訥月文化賞)을 수상. 주요 작품으로 「바람」(1956)·「시조3수」(1956)·「지리산시초(智異山詩抄)」(1957)·「한라산」(1958)·「설악산시초(雪嶽山詩抄)」(1959)·「4월의 하늘 아래서」(1960)·「경주시초(慶州詩抄)」(1961)·「목련화」(1965)·「수혈(輸血)」(1965)·「아지랭이」(1966)·「나목(裸木)」(1967)·「백록담」(1968)·「미소」(1969)·「들에서」(1969)·「추청(秋晴)을 갈(磨)다」(1969)·「제야(除夜)에」(1970)·「구천동소묘(九千洞素描)」(1970) 등. 시조집으로 『청저집(靑苧集)』(1954)·『석류』(1968)가 있고 수필집으로 『춘근집(春芹集)』(1958)·『비둘기 내리는 뜨락』(1966)·『머나먼 사념(思念)의 길목』(1971) 등. 『한국문학』에서는 그를 기념하여 매년 정운시조문학상(丁芸時調文學賞)을 시상.

이완(李浣)
1602(선조35)~1674(현종13). 조선후기 공청도병마절도사(公淸道兵馬節度使), 한성우윤(漢城右尹), 공조판서(工曹判書) 등을 역임한 무신. 자는 징지(澄之), 호는 매죽헌(梅竹軒), 충무공 수일(守一)의 아들. 시호(諡號)는 정익(貞翼).

이원(李黿)
?~1504(연산군10). 조선전기 검열(檢閱), 호조좌랑(戶曹佐郎)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낭옹(浪翁), 호는 재사당(再思堂). 명상 제현(齊賢)의 7세손으로 현령 공린(公麟)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증이조판서 박팽년(朴彭年)의 딸. ≪금강록(金剛錄)≫·≪재사당집(再思堂集)≫.

이원근(李源根)
1850(철종1)~1918. 대한제국기 악사(樂師), 전악(典樂) 등을 역임한 국악인. 피리명인. 자는 경재(景哉). 서울 출신. 피리의 대가인 이인식(李寅植)의 아들. 제사과(祭祀課)에 근무.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 피리주자로 활동하였으며, 맏아들 수경(壽卿)은 거문고의 명인이고, 넷째아들 수억(壽億)은 관악기를 전공.

이유승(李裕承)
1835(헌종1)~1906. 개항기 이조참판(吏曹參判),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우찬성(右贊成)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경선(景先).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이계선(李啓善)이다. 대한민국 초대부통령인 이시영(李始榮)의 아버지. 증광문과(增廣文料)에 병과(丙科)로 급제. 정헌(靖憲)의 시호를 받았다가 다시 효정(孝貞)으로 개시(改諡).

이유원(李裕元)
1814(순조14)~1888(고종25). 조선후기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 좌의정(左議政), 영의정(領議政)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경춘(京春), 호는 귤산(橘山)·묵농(默農). 이조판서 이계조(李啓朝)의 아들. 『임하필기(林下筆記)』·『가오고략(嘉梧藁略)』·『귤산문고』.

이유응(李裕膺)
1817(순조17)~?.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경창(景昌). 익재공 제현(齊賢)의 후손 계정(啓禎)의 아들. 정시문과병과에(庭試文科丙科)에 급제). 대사헌(大司憲). 한성판윤(漢城判尹). 이조판서(吏曹判書). 시(諡)는 효정(孝靖).

이유태(李惟泰)
1607(선조40)~1684(숙종1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아버지는 유학 이서(李曙).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 『초려집』 26권. 시호는 문헌(文憲).

이윤(李潤)
?~1592(선조25). 조선전기 죽산현감(竹山縣監), 이조참판(吏曹參判)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존중(存中), 호는 퇴사암(退思菴). 할아버지는 감사 이감(李堪)이다. 이이(李珥)·조헌(趙憲) 등을 따라 학문을 연마.

이윤인(李尹仁)
1415(태종15)~1471(성종2). 조선전기 의주목사(義州牧使),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평양부윤(平壤府尹)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임지(任之). 이덕림(李德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고려 안찰사(按察使) 이신(李伸)이다. 아버지는 낙안군수(樂安郡守) 이지번(李之蕃). 생원(生員)으로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정과(丁科)로 급제. 원종공신(元從功臣) 2등에 책록.

이윤홍(李潤弘)
병정(兵正). 고려(高麗)가 병부령(兵部令)을 설치할 때에 따라서 병정(兵正)을 두었으니 품계(品階)는 재상(宰相)으로 보인다.

이익(李瀷)
1579(선조12)~1624(인조2). 조선시대 지평(持平), 장령(掌令), 예조정랑(禮曹正郞)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형여(泂如), 호는 간옹(艮翁)·옥포(玉浦). 이자침(李自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난(李鸞)이다. 아버지는 판관 이유일(李惟一). 사마시(司馬試).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전한(典翰)에 추증.

이인(李仁)
1896~1979. 일제강점기 의열단사건, 광주학생사건, 안창호사건 등을 맡은 법조인. 변호사, 정치인. 호는 애산(愛山). 대구 출생. 할아버지는 성리학자였으며, 아버지는 한말 애국계몽운동단체였던 자강회(自彊會)와 대한협회의 중심 인물.

이인소(李寅燒)
1637(인조15)~1698(숙종24). 조선후기 수찬(修撰), 교리(校理)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명(子明), 호는 노포(老圃). 이대건(李大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시발(李時發)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이경억(李慶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동생 이인병(李寅炳)과 함께 급제.

이인식(李寅植)
생몰년 미상. 개항기 전악(典樂), 집사악사(執事樂師) 등을 역임한 국악인. 악사(樂師). 거문고의 명인 이수경(李壽卿)의 할아버지이고, 가곡(歌曲)의 명인 이병성(李炳星)의 고조부. 전공은 피리인데 이수경 외에 이 집안은 한결같이 피리가 전공이었다. 세습적인 궁중악인이다.

이인신(李仁臣)
1457(세조3)~1518(중종13). 조선 중기 문신. 판관공 성무(成茂)의 장남이며 명장 몽린(夢麟)의 아버지. 등준시문과(登俊試文科)에 급제. 공조참판(工曹參判).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이조판서(吏曹判書) 추증.

이인엽(李寅燁)
1656(효종7)~1710(숙종36). 조선후기 이조판서(吏曹判書), 弘文館大提學(홍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계장(季章), 호는 회와(晦窩). 이대건(李大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시발(李時發)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이경억(李慶億). 사마시(司馬試). 정시문과(廷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인정(李仁挺)
1241(고종29)~?. 고려후기 광주판관(廣州判官), 전중시사(殿中侍史), 기거사인(起居舍人)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충숙왕 때 검교정승(檢校政丞)에 오른 이진(李瑱)의 형이며, 이제현(李齊賢)의 큰아버지이다. 아들은 이부(李榑)와 이규(李樛)로 각각 사인(舍人)과 헌납(獻納)에 이르렀다.

이인하(李仁夏)
생몰년 미상. 조선후기 병조참판(兵曹參判), 총융사(摠戎使),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등을 역임한 무신. 자는 하숙(夏叔). 우의정 이완(李浣)의 조카.

이인환(李寅煥)
1633(인조11)~1699(숙종25). 조선후기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문백(文伯), 호는 생곡(生谷). 이대건(李大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이시발(李時發)이다. 아버지는 이경휘(李慶徽). 진사시(進士試).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이일로(李逸老)
?~1636(인조14). 조선시대 종묘봉사(宗廟奉事)를 역임한 문신. 자는 회수(晦叟), 호는 송포(松圃). 이계장(李繼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간 이세림(李世琳)이다. 아버지는 증참의 이돈(李敦)이며, 이일영(李逸英)의 아우. 그의 형제에게 지평(持平)이 추서. 경상도 칠곡에 정문(旌門)을 세워서 표창.

이일범(李一凡)
1917~1973. 일제강점기 한족동맹회 회장,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공작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명 경태(敬泰). 항일비밀결사인 한족동맹회(韓族同盟會) 및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를 조직. 대통령표창. 건국포장. 애국장이 추서.


이재수(李在秀)

1912~1974. 해방 이후 『고전』, 『한국소설연구』, 『고전문학선』 등을 저술한 학자. 국문학자. 아호는 상산(常山). 이봉섭(李鳳燮)의 넷째 아들. 경북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 유고집으로 『내방가사연구』.

이전(李專)
생몰년 미상. 조선전기 안동부사(安東府使)를 역임한 문신. 아버지는 고려 말의 호부상서 이달충(李達衷)이며, 아들은 이조판서 이승상(李升商).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봉.

이정(李淀)
1589(선조22)~1668(현종9). 조선시대 거창현감(居昌縣監), 장례원판결사(掌隷院 判決事) 등을 역임한 문신. 초명은 이종호(李淙滈). 자는 노천(老泉). 생원 이자침(李自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난(李鸞)이다. 아버지는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이수일(李守日). 김장생(金長生)의 문인. 경림군(慶林君)에 습봉(襲封).

이정(李靖)
생몰년 미상. 조선후기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자는 위경(衛卿). 할아버지는 이정암(李廷馣). 무과(武科)에 급제.

이정견(李廷堅)
?~1409(태종9). 조선전기 좌상시(左常侍), 밀직사사(密直司使),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등을 역임한 문신. 아버지는 고려말의 정랑 이육(李毓). 문과(文科)에 급제. 첨서승추부사(簽書承樞府事).

이정남(李井男)
1585(선조18)~1653(효종4).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문숙(文叔). 백사공 항복(恒福)의 차남. 사마양시(司馬兩詩)에 급제. 예빈시정(禮賓寺正).

이정암(李廷馣)
1541(중종36)~1600(선조33). 조선시대 병조참판(兵曹參判), 전주부윤(全州府尹),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중훈(仲薰), 호는 사류재(四留齋)·퇴우당(退憂堂)·월당(月塘). 서울 출신. 감정(監正) 이거(李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사 이달존(李達尊)이다. 아버지는 사직서영(社稷署令) 이탕(李宕). 이조참판 이정형(李廷馨)의 형.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책록. 월천부원군(月川府院君)에 추봉. 좌의정에 추증. 연안 현충사(顯忠祠)에 제향. 『상례초(喪禮抄)』·『독역고(讀易攷)』·『왜변록(倭變錄)』·『서정일록(西征日錄)』·『사류재집』 등. 시호는 충목(忠穆).

이정원(李挺元)
1567(명종22)~1623(인조1). 조선시대 응교,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중인(仲仁), 호는 후포(後浦). 이숙한(李淑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분(李世芬)이고, 아버지는 이충량(李忠良). 진사(進士).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대사간(大司諫). 이조참의(吏曹參議).

이정형(李廷馨)
1549(명종4)~1607(선조40) 조선시대 우승지(右承旨),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덕훈(德薰), 호는 지퇴당(知退堂) 또는 동각(東閣). 사직서령 탕(宕)의 아들이고 지중추부사 정암(廷馣)의 아우. ≪동각잡기(東閣雜記)≫·≪황토기사≫·≪용사기사(龍蛇記事)≫·≪수춘잡기(壽春雜記)≫·≪지퇴당집≫.

이제현(李齊賢)
1287(충렬왕13)~1367(공민왕16). 고려후기 정당문학(政堂文學), 판삼사사(判三司事), 정승(政丞) 등을 역임한 관리. 학자, 문인, 문신. 초명은 이지공(李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역옹(櫟翁). 고려 건국 초의 삼한공신(三韓功臣) 이금서(李金書)의 후예로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이진(李瑱). 성균시(成均試) 1등으로 합격. 『역옹패설(櫟翁稗說)』『익재난고(益齋亂藁)』 10권과 『역옹패설』 2권이다. 흔히 이것을 합해 『익재집(益齋集)』. 경주의 구강서원(龜岡書院)과 금천(金川)의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祭享). 공민왕 묘정에 배향. 시호는 문충(文忠).

이조(李蓨)
1325(충숙왕12)~? 고려말 문신. 송암공 세기(世基)의 계자(季子). 성균시(成均試) 문과(文科)에 장원급제. 문하성기거랑(門下省起居郞). 중서사인(中書舍人).

이존오(李存吾)
1341(충혜왕 복위2)~1371(공민왕20). 고려후기 우정언(右正言), 장사감무(長沙監務)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자는 순경(順卿). 호는 석탄(石灘)·고산(孤山). 문과(文科)에 급제.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추증. 여주 고산서원(孤山書院), 부여 의열사(義烈祠), 무장 충현사(忠賢祠)에 봉향. 『석탄집(石灘集)』 2권.

이종백(李宗白)
1699(숙종25)~1759(영조35). 조선후기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 호조참판(戶曹參判),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태소(太素), 호는 목천(牧川). 이시술(李時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필(李世弼)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이형좌(李衡佐). 사마시(司馬試) 증광문과(增廣文料)에 병과(丙科)로 급제. 시호는 정민(貞敏).

이종성(李宗城)
1692(숙종18)~1759(영조35). 조선후기 예조판서(禮曹判書), 좌의정(左議政),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고(子固), 호는 오천(梧川). 이항복(李恒福)의 5세손이며, 이시술(李時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필(李世弼)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이태좌(李台佐). 진사(進士). 증광문과(增廣文料)에 병과(丙科)로 급제. 『오천집(梧川集)』. 시호는 효강(孝剛), 뒤에 문충(文忠)으로 개시(改諡).

이종윤(李從允)
1431(세종13)~1490(성종21). 조선전기 예조좌량(禮曹佐郞),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제주목사(濟州牧使)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가정(可貞), 호는 송와(松窩). 이을충(李乙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원길(李元吉)이고, 아버지는 현감 이형(李衡). 생원(生員)·진사(進士) 양시(兩試)에 합격.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모현사(慕賢祠)에 봉안. 『송와문집(松窩文集)』 4권.

이종적(李宗迪)
1710(숙종36)~1748(영조24). 조선후기 대사간(大司諫),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순(子順), 호는 송계(松溪). 명상 항복(恒福)의 5대손으로 정좌(鼎佐)의 아들. 정시문과(廷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종준(李宗準)
1454(단종2) 추정~1499(연산군5). 조선전기 의성현령(義城縣令),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자는 중균(仲鈞), 호는 용재(慵齋)·용헌(慵軒)·부휴자(浮休子) 상우당(尙友堂)·태정일민(太庭逸民)·장육거사(藏六居士). 대사헌 승직(繩直)의 손자이며 홍준(弘準)의 형. 별시문과(別試文科)에 1등 3인으로 급제.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부제학(副提學)으로 추증. 안동의 경광서원(鏡光書院)·백록리사(栢麓里祠)에 제향. 『용재유고(慵齋遺稿)』. 의서로는 『산림경제(山林經濟)』등에 인용된 『신선태을자금단방(神仙太乙紫金丹方)』. 「송학도(松鶴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종태(李鍾泰)
1850(철종1)~?. 조선후기 『진명휘론』을 저술한 서예가. 자는 공래(公來), 호는 소농(筱農). 덕수궁의 대한문(大漢門)의 액서(額書).

이주복(李周復)
좌사간(左司諫). 고려(高麗) 목종(穆宗)이 좌우보궐(左右補闕)을 좌우사간(左右司諫)으로 고치니 벼슬의 차례는 6품(六品)이다. 고려사(高麗史)에 이주좌(李周佐)는 경주인(慶州人)이라 목종조(穆宗朝)에 급제(及第)하여 벼슬이 형부상서(刑部尙書)이니 공(公)의 형제(兄弟)인듯하나 족보(族譜)에 전함이 없다.

이주영(李胄榮)
1837(헌종3)~1917 대한제국기 시강원첨사, 궁내부특진관, 장례원경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자는 순경(舜敬) 또는 순교(舜敎)이다.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고 군수 이유헌(李裕憲)의 아들. 증광시(增廣試)에 급제. 대사헌(大司憲).

이주좌(李周佐)
?~1040(정종6). 고려전기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형부상서판어사대사(刑部尙書判御史臺事)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사공상서우복야(司空尙書右僕射)에 추증.

이준억(李俊億)
도위위승(都衛尉丞). 父는 상서공(尙書公) 이녹천(李祿千).

이중명(李重明)
1615(광해군7)~1672(현종13). 조선후기 광흥창봉사(廣興倉奉事)를 역임한 문신. 자는 자문(子文), 호는 안곡(安谷). 아버지는 참봉 이사금(李師金). 천안의 육현사(六賢祠)에 배향.

이중약(李仲若)
?~1122(인종1). 고려전기 국가 재초소로 도관 복원궁 건립을 주도한 도교인. 도사(道士). 자는 자진(子眞), 호는 청하자(靑霞子). 좌사(左司)로 추증.

이중협(李重協)
1681(숙종7)~?. 조선후기 대사간(大司諫), 공조참판(工曹參判), 도승지(都承旨)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화중(和仲). 사간원정언 이익(李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인실(李仁實)이고, 아버지는 이병(李炳). 증광문과(增廣文料)에 갑과(甲科)로 급제.

이진(李瑱)
1244(고종31)~1321(충숙8). 고려후기 상의도첨의사사찬성사(商議都僉議司事贊成事), 검교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초명은 방연(芳衍), 자는 온고(溫古), 호는 동암(東庵). 문하평리 핵(翮)의 둘째 아들이고 명상 제현(齊賢)의 아버지. 『동암집(東庵集)』. 시호는 문정(文定).

이진택(李鎭宅)
1738(영조14)~1805(순조5). 조선후기 병조좌랑(兵曹佐郞),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장령(掌令)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덕봉문집(德峯文集)』.

이집두(李集斗)
1744(영조20)~1820(순조20). 조선후기 한성판윤(漢城判尹), 공조판서(工曹判書), 예조판서(禮曹判書)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중휘(重輝), 호는 파서(琶西) 또는 구학(臞鶴). 좌의정 경억(慶億)의 5대손으로 감역 진원(進源)의 아들. 진사(進士)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이천(李蒨)

국당(菊堂) ?~1349(충정왕1). 고려후기 동지공거(同知貢擧), 첨의평리상의(僉議評理商議),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자는 군실(君實), 호는 국당(菊堂). 국자감시(國子監試)에 급제.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책봉.

이철견(李鐵堅)
1435(세종7)~1492(성종23). 조선전기 형조판서(刑曹判書), 호조판서(戶曹判書),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역임한 무신. 자는 연부(鍊夫). 이원보(李元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승(李昇)이고, 아버지는 참판 이연손(李延孫). 시호는 양평(襄平).

이총섬(李寵暹)
생몰년 미상. 고려 전기의 문신.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춘림(李春林)
문하시랑(門下侍郞). 父는 시중공(侍中公) 이총섬(李寵暹).

이춘정(李春貞)
순흥부사(順興府使). 순흥(順興)은 지금의 김해부(金海府)이다. 父는 시중공(侍中公) 이총섬(李寵暹).

이충급(李忠伋)
?~1627(인조5). 조선후기 청수만호(靑水萬戶), 장례원판결사(掌隷院 判決事) 등을 역임한 무신. 자는 중사(仲思). 용천(龍川) 출신. 충걸(忠傑)의 아우. 무과급제(武科及第). 정문(旌門), 의주 구암사(龜巖祠)에 배향.

이치련(李侈連)
아들 총섬(寵暹)이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써 귀함이 있으므로 마땅히 공에 대한 증직(贈職)이 있음 직한데 구보(舊譜)에 기록이 없다.

이칭(李偁)
보조공신(補助功臣) 문하시중(門下侍中). 구보(舊譜)에 벼슬은 사록(司錄)이니 보조공신(補助功臣)은 증직(贈職)인 것 같다. 재령이씨(載寧李氏) 족보(族譜)를 보면 이우칭(李禹偁)은 좌사간(左司諫) 주복(周復)의 아들이라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재령군(載寧君)을 봉(封)하여 시조가 되었다. 곧 칭(稱)의 형제(兄弟)이다.

이탁(李鐸)
1898~1967 해방 이후 『국어학논고』, 「이두의 근본적 해석」 등을 저술한 학자. 국어학자, 독립지사. 아명은 씨종(氏鍾), 호는 명재(命齋) 또는 월양(月洋).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한글학자 갑(鉀)의 형. 「언어상(言語上)으로 고찰한 선사시대의 환하문화(桓夏文化)의 관계」·「한국어와 중국어에 공통한 계통적 음운법칙」·「향가신해독(鄕歌新解讀)」·「어학적으로 고찰한 우리 시가(詩歌) 원론」 등 7편. 「이두(吏讀)의 근본적 해석」(一石還甲紀念論文集), 「언어상으로 고찰한 우리 고대 사회상의 편모」(한글 124호), 「‘·’음가의 새로운 고찰」(東方學志 5집), 「국어 어원풀이의 일단」(한글 140호) 등. 독립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이 추서(追敍).

이탁남(李擢男)
1572(선조5)~1645(인조23). 조선시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 덕산현감(德山縣監), 횡성현감(橫城縣監)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근숙(根叔). 할아버지는 좌참찬 이몽량(李夢亮). 오산군(鰲山君).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 시호는 의정(毅靖).

이태좌(李台佐)
1660(현종1)~1739(영조15). 조선후기 이조판서(吏曹判書), 우의정(右議政),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국언(國彦), 호는 아곡(鵝谷). 영의정 항복(恒福)의 현손이며 참판 세필(世弼)의 아들이고 영의정 광좌(光佐)의 재종형이며 영의정 종성(宗城)의 아버지. 진사시(進士試) 정시문과병과급제(廷試文科丙科及第). 시호는 충정(忠定).

이하곤(李夏坤)
1677(숙종3)~1724(영조1). 조선후기 「춘경산수도」, 「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 평론가. 자는 재대(載大), 호는 담헌(澹軒) 또는 계림(鷄林). 좌의정 경억(慶億)의 손자이고 대제학 인엽(寅燁)의 아들. <춘경산수도>(간송미술관 소장). <산수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두타초(頭陀草)≫ 18권.

이하영(李夏榮)
1858(철종9)~1919. 대한제국기 외부대신, 법부대신, 중추원 고문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자는 치행(致行), 호는 금산(琴山).

이항복(李恒福)
1556(명종11)~1618(광해군10). 조선시대 이조판서(吏曹判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우의정(右議政)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상(子常), 호는 필운(弼雲)·청화진인(靑華眞人)·동강(東岡)·백사(白沙)이며 시호는 문충(文忠). 『백사집(白沙集)』2권·『북천일록(北遷日錄)』2권·『주소계의(奏疏啓議)』2권·『사례훈몽(四禮訓蒙)』1권·『노사영언(魯史零言)』15권.

이해룡(李海龍)
1600~? 조선전기 금석문으로 사현의 양호묘비(楊鎬墓碑)를 쓴 서예가. 자는 해수(海叟), 호는 북악(北嶽). 벼슬은 내섬시주부(內贍寺主簿).

이핵(李翮)
자(字)는 만리(萬里)이고 호(號)는 열헌(悅軒)이며 초휘(初諱)는 타(駝). 중조 14세손인 문하평리(門下評理) 열헌공(悅軒公). 중흥조(中興祖).

이현복(李玄福)
생원(生員). 고려(高麗) 덕종원년(德宗元年, 1032년)에 국자감(國子監)에서 부(賦), 시(詩), 경(經) 등을 시강(侍講)하였고 문하성(文下省)의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하였다. 父는 부사공(府使公) 이춘정(李春貞).

이현직(李顯稷)
1797(정조21)~? 조선후기 어영대장(御營大將), 공조판서(工曹判書),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등을 역임한 무신. 자는 백형(伯衡). 총관(摠管) 격(格)의 아들이며 경상좌수사 학영(鶴榮)의 아버지.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이형만(李衡萬)
1711(숙종37)~?. 조선후기 필선(弼善), 헌납(獻納), 승지(承旨)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평일(平一). 이저(李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여주(李汝柱)이고, 아버지는 이성룡(李聖龍). 증광시문과(增廣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이형좌(李衡佐)
1668(현종9)~1746(영조22).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경윤(景尹). 호는 초천(椒泉). 구천공 세필(世弼)의 아들. 사마시급제(司馬試及第). 인천도호부사(仁川都護府使).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이형좌의 청덕선정비(淸德善政碑)가 인천향교에 세워졌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副使).

이호우(李鎬雨)
1912~1970. 해방 이후 『이호우시조집』을 저술한 시인. 시조시인. 아호는 본명에서 취음(取音)하여 이호우(爾豪愚). 청도 출신이고 시조시인 영도(永道)의 오빠.

이홍업(李弘業)
조선전기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 병조좌랑(兵曹佐郞), 고창현감(高敞縣監)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시립(時立), 호는 포세(逋世). 이원(李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수(李洙)이고, 아버지는 의영고영(義盈庫令) 이개윤(李愷胤).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회영(李會榮)
1867(고종4)~1932. 일제강점기 신민회 중앙위원, 항일구국연맹 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호는 우당(友堂). 서울 출신.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이유승(李裕承).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이흘(李忔)
1568(선조1)~1630(인조8). 조선시대 장단부사, 종부시정, 지제교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상중(尙中), 호는 설정(雪汀)·오계(梧溪). 생원시(生員試) 문과병과(文科丙科) 급제. 시호(諡號)는 충장(忠章). 『관주일록(觀周日錄)』·『오계문집(梧溪文集)』.

이흥적(李興啇)
?~1465(세조11). 조선전기 의금부진무, 첨지중추원사, 중추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연(子衍). 음직으로 행수(行首)에 보직. 계림군(鷄林君). 시호(諡號)는 양희(襄僖).

이희수(李喜秀)
1836(헌종2)~1909(순종3) 조선후기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를 그린 서화가. 자는 지삼(芝三), 호는 소남(少南)·경지당(景止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