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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공(逋世公) 이홍업(李弘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15:42

포세공(逋世公) 이홍업(李弘業)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시립(時立), 호는 포세(逋世).

1579년(선조 1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박사·병조좌랑·고창현감 등을 거쳐 지평으로 있을 때 미움을 받아 함경도 경성도호판관으로 좌천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적장 가또(加藤淸正)가 왜군을 이끌고 회령에 침입했을 때 회령부사 국경인(鞠景仁)이 왕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을 비롯하여 수10인을 포박하여 왜적에게 투항했을 때 그도 함께 붙들려갔는데, 적장이 강화문서를 작성하여 왕자와 대신에게 강제로 서명하라 하고 그 문서를 그에게 주면서 의주의 행재소(行在所)에 가서 왕에게 전하라 하므로 의주 행재소에 이르렀으나, “적장의 문서를 가지고 온 것은 나라를 욕되게 한 짓이므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는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다.
옥중에도 세 번이나 소를 올려 왕자의 급박한 사정을 상세하게 아뢰고 잡혀있는 대신들의 전언(傳言)을 자세하게 썼다. 그러면서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단지 적장의 문서를 전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두 왕자를 구출하려고 함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니 그의 충성심이 인정되어 죽음을 면하고 길주로 유배되었다가 4년 뒤에 풀려났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홍업(李弘業)

생몰년 미상
조선전기 승문원박사, 병조좌랑, 고창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시립(時立), 호는 포세(逋世). 이원(李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수(李洙)이고, 아버지는 의영고영(義盈庫令) 이개윤(李愷胤)이며, 어머니는 정윤의(鄭允義)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박사·병조좌랑·고창현감 등을 거쳐 지평으로 있을 때 미움을 받아 함경도 경성도호판관으로 좌천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적장 가토(加藤淸正)의 군대가 함경도 회령에 이르렀을 때 회령부사 국경인(鞠景仁)이 왕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을 비롯하여 수십인을 포박하여 왜군에 투항하였는데, 이때 그도 체포되었다.

적장이 강화문서를 작성하여 포로가 된 왕자와 대신에게 강제로 서명(署名)하게 한 뒤 그 문서를 그에게 전달하면서 행재소(行在所: 왕이 멀리 거둥하여 임시로 머무는 처소)인 의주로 가게 하였다.

행재소에 도달하였으나 적의 문서를 가지고 온 것은 나라를 욕되게 한 짓으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는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다. 옥중에서 세번이나 소를 올렸는데, 왕자의 급박한 상황을 말하고 잡혀 있는 대신들의 전언을 상세히 아뢰었다.

적의 문서를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왕자를 구출하는 것임을 말하고, 그 방법을 모색하여줄 것을 간언하였다. 그의 충성심이 받아들여져 사형은 면하고 길주로 유배되었다가 4년 뒤에 풀려났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6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