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인물 과거/경주이씨◇인물

승정원승지공(承政院承旨公) 이단장(李端章)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5. 25. 20:38

승정원승지공(承政院承旨公) 이단장(李端章)

 

 

1664(현종5)~1727(영조3).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상보(相甫). 초려공 유태(惟泰)의 손자이다.

1705(숙종31)년 증광시문과병과에 급제하고 사헌부사간에 이르렀다. 1709(숙종35)년 세자시강원설서 사간원정언을 지냈다. 1717(숙종43)년 함평현감을 지낼 때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고 어사 조영복에 의해 파직되었다.

1724(경종4)년 사간원장령을 지내다 다시 파직되었다가 1725(영조1)년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을 거쳐 사간원집의를 지냈다. 1726(영조2)년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지내다 1727(영조3)년 정미환국 때 파직되었다.


자료제공: 이범우 중앙화수회 자문위원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단장(李端章)

 

출생: 1664년(현종 5)

사망: 1727년(영조 3)

경력: 정언, 함평현감

 

요약: 조선후기 정언, 함평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상보(相甫). 이서(李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태(李惟泰)이다. 아버지는 이옹(李顒)이며, 어머니는 정언 윤문거(尹文擧)의 딸이다. 정산(定山)에 살았다.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사간에 이르렀다. 1709년(숙종 35)에 설서(說書), 이어 정언에 올랐다. 1717년(숙종 43) 함평현감 때에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하였다고 해서 전라우도암행어사 조영복(趙榮福)에 의해 파직되었다.

 

1724년(경종 4)에 장령이 되었으나 다시 파직되었다. 1725년(영조 1) 필선·헌납이 되었다가, 사간·집의에 임명되었다. 1726년(영조 2)에 다시 사간이 되었다가 이듬해에 승지가 제수되었으나, 1727년(영조 3) 정미환국(丁未換局) 때에 영부사 민진원(閔鎭遠) 등 101인과 함께 파직되었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3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