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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공(襄平公) 이양생(李陽生)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22:34

양평공(襄平公) 이양생(李陽生)

 

1423(세종 5)~1488(성종 19). 조선 전기의 무신

군수 종직(從直)의 아들. 서자로 태어나 어릴 때는 신을 삼아 생계를 유지했으나 비록 공부는 못했으나 무예에 능하여 장용위(壯勇衛)의 군졸이 되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고 계성군(鷄城君)에 봉해졌으며 충의교위행호분위중부사직겸사복(忠毅校尉行虎賁衛中部司直兼司僕)이 되었다.

서얼출신이기 때문에 가선대부까지는 이르렀으나 한 번도 현직(顯職)에는 나아가지 못했고 평생을 겸사복으로 포도장을 맡아 도성을 물론 전국의 도적을 소탕하였다.

그 가운데 관악산을 근거로 출몰하는 고도(古道)·김말응(金末應) 등의 도적을 소탕하고 충주의 수리산(愁里山)·여주의 강금산(剛金山) 등의 도적의 소굴을 쳐서 뿌리뽑아 큰 공을 세웠다.

일생을 겸사복으로 지냈으나 불평하지 않았고 옛날 자신이 신을 삼아 팔던 저자를 지날 때에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옛친구들과 땅바닥에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가는 소탈한 성품이었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양생(李陽生)

1423년(세종 5)~1488년(성종 19)
조선전기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군수 이종직(李從直)이다.

서자로 태어나 어릴 때는 신을 삼아 저자에 내어 팔아 생활을 하였고, 비록 책은 읽지 못하였으나 무예(武藝)에 능하여 장용위(壯勇衛)의 군졸이 되었다.

1467년(세조 13)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토벌군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고 계성군(鷄城君)에 봉하여졌으며, 충의교위(忠毅校尉) 행호분위중부사직(行虎賁衛中部司直)으로 겸사복(兼司僕)이 되었다.

서얼 출신이기 때문에 자급(資級)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으나 한 번도 현직(顯職)에는 등용되지 못하였고, 평생 겸사복으로 있으면서 포도장으로 도성 내외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도적 소탕에 공을 세웠다. 그 중에서도 관악산 일대에 둔취, 항거하였던 고도(古道)·김말응(金末應) 등의 소탕과 충주의 수리산(愁里山), 여주의 강금산(剛金山) 도적들을 소탕하여 큰 공을 세운 것이 유명하다.

평생을 겸사복으로 지냈으나 불평 한마디 없었고, 옛날 자신이 신장사하던 저자를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옛 친구들과 땅에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가곤 하였다 한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5087

 

 

◈[월성군파 인물, 가계도] 월성군 5세손 양평공(襄平公) 이양생(李陽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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