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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원판결사공(掌隷院判決事公) 이충급(李忠伋)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18:41

장례원판결사공(掌隷院判決事公) 이충급(李忠伋)


?~1627(인조 5). 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중사(仲思), 용천(龍川) 출신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공로가 많았으므로 선무공신(宣武功臣)에 녹훈되고 주부가 되었다.
1624년(인조 2) 용골산성(龍骨山城)을 쌓을 때 공을 세워 청수만호(靑水萬戶)가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 의주에 들어가 동문을 지키는 장수가 되어 부윤 이완항(李完巷)이 전사하자 성문을 열고 나가서 백병전을 벌인 끝에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1647년(인조 25) 조정에서 정문(旌門)을 내리고 장례원판결사를 추서하였다. 의주 구암사(龜巖祠)에 배향되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충급(李忠伋)

미상~1627년(인조 5)
조선후기 청수만호,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사(仲思). 용천(龍川) 출신. 충걸(忠傑)의 아우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공로가 많았으므로 선무공신(宣武功臣)에 녹훈되고 주부가 되었다.

1624년(인조 2) 용골산성을 쌓을 때 도청(都廳)으로서 공을 세워 청수만호(靑水萬戶)가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의주에 들어가 동문을 지키는 동문장(東門將)이 되었는데 부윤 이완항(李完巷)이 전사하자 성문을 열고 뛰쳐나와 백병전을 벌인 끝에 전사하였다.

1647년 나라에서 정문을 세워 충의를 표창하였으며, 장례원판결사에 추증되었다. 의주의 구암사(龜巖祠)에 제향되었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6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