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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헌공(聽軒公) 이경일(李敬一)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9. 11:32

청헌공(聽軒公) 이경일(李敬一)


1734(영조 10)~1820(순조 2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원회(元會), 호는 청헌(聽軒)으로 항복(恒福)의 6대손이다.

1775년에 문과 을과로 급제, 대사간·대사헌·황해도관찰사에 이르고 1800년(정조 24)에 공조판서·형조판서·좌찬성을 지내고 1804년(순조 4)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1808년 75세에 봉조하(奉朝賀)를 받았다.
시호는 효정(孝定)이고 문집 ≪청헌유고(聽軒遺稿)≫가 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청헌(聽軒) 이경일(李敬一)

1734년(영조 10)~1820년(순조 20)
조선후기 황해도관찰사, 형조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회(元會), 호는 청헌(聽軒). 이항복(李恒福)의 6대손이며, 이세장(李世章)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문좌(李文佐)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종열(李宗悅)이며, 어머니는 강석창(姜碩昌)의 딸이다. 도사 이종악(李宗岳)에게 입양되었다.

1768년(영조 44) 음덕으로 관직에 나와 온릉참봉·덕산현감을 지내고, 1775년 문과정시에 을과로 급제, 예조좌랑·사간원정언·홍문관부수찬·대사간·대사성·이조참의·황해도관찰사·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800년(정조 24) 공조판서에 오른 다음, 이어 대사헌·우참찬·형조판서·한성부판윤·좌참찬 등을 지냈다. 1804년(순조 4)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우의정으로 있을 때, 성학(聖學)에 힘쓰고 정치기강을 바로잡을 것 등 제반시책을 건의하여 받아들여졌으며, 1808년 나이 75세에 봉조하(奉朝賀)가 되고 오은군(鰲恩君)에 피봉되었다. 저서에는 시문을 모은 『청헌유고』가 있다. 시호는 효정(孝定)이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3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