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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서공(琶西公) 이집두(李集斗)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18:46

파서공(琶西公) 이집두(李集斗)


1744(영조 20)~1820(순조 20). 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중휘(重輝), 호는 파서(琶西) 또는 구학(臞鶴). 좌의정 경억(慶億)의 5대손으로 감역 진원(進源)의 아들이다.

1774년(영조 50) 진사가 되고, 이듬해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에 들어갔다. 뒤에 이조좌랑·장령·이조참의·대사성·승지를 거쳐 강릉현감으로 나갔을 때 상소하여 해폐(海弊)·군폐(軍弊)·세폐(稅弊)·삼폐(參弊) 등의 읍폐(邑弊)를 일소하도록 건의하였다. 이어서 대사간·대사헌을 거쳐 안동부사와 1798년(정조 22)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변방의 야인을 잘 다스렸으며 1800년 주청부사(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01년(순조 1) 한성부판윤·공조판서·예조판서가 되었고 1810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판돈녕부사로 치사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집두(李集斗)

1744년(영조 20)~1820년(순조 20)
조선후기 한성판윤,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휘(仲輝), 호는 파서(琶西) 또는 구학(臞鶴).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5대손이며, 이항곤(李恒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석노(李錫老)이고, 아버지는 감역 이진원(李進源)이며, 어머니는 조철명(趙哲命)의 딸이다.

1774년(영조 5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에 들어갔다. 그 뒤 이조좌랑·장령·이조참의·대사성·승지를 거쳐, 강릉현감이 되었을 때는 상소하여 해폐(海弊)·군폐(軍弊)·세폐(稅弊)·삼폐(蔘弊) 등 네가지 읍폐(邑弊)를 들고 그 시정을 건의하였다.

이어 대사간·대사헌과 외직으로 안동부사, 1798년(정조 22)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변방의 야인을 잘 다스렸고, 1800년 주청부사(奏請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순조가 즉위하자 한성판윤, 공조·예조판서가 되고, 1810년 동지사(冬至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판돈녕부사로 치사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6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