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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자(靑霞子) 이중약(李仲若)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18:57

청하자(靑霞子) 이중약(李仲若)


?~1122(인종 1). 고려 중기의 문신

자는 자진(子眞), 호는 청하자(靑霞子). 7대를 이은 명문 출신으로 어머니 이씨가 도사(道士)를 의미하는 노란색 관을 꿈에 보고 잉태하였다고 한다.

여러서부터 도장(道藏)을 탐독하고 도풍(道風)을 섬겼다. 출가하여 가야산에 은거하여 스스로 청하자라 칭하며 수련을 쌓다가, 처사(處士) 은원충(殷元忠)과 선사(禪師) 익종(翼宗)의 주선으로 월출산으로 옮겨 일재(逸齋)를 짓고≪황정경(黃庭經≫에 으지하여 부상공(夫桑公-少明)·도은거(陶隱居-弘景)·장천사(張天師-道陵) 등을 받들고 연단(鍊丹) 수련을 하였다.
도교 의술(醫術)에 정통하여 조야에 명성을 떨쳤으며 숙종의 치료를 위하여 상경한 뒤 궁주에서 태자를 시봉했는데, 그 태자가 즉위하여 예종이 되니 발탁되어 1108년(예종 3) 입송사절(入宋 使節) 한교여를 따라 송나라에 들어가서 법사 황대충(黃大忠)·주여령(周與齡)에게 도교의 요제(要諦)를 전수하고, 송나라 휘종(徽宗)에게 청원하여 청원하여 도사 2명을 고려에 파견하였다.
귀국 후 국가 재초소(齋醮所)이며 도관(道觀)으로서 복원궁(福源宮)을 건립하게 하였다.
고려 도교의 총본산인 이 복원궁을 중심으로 예종을 통하여 도교정책을 펴다가 권신 이자겸(李資謙)의 세력에 의하여 한안인(韓安仁) 일파에 몰리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뒤에 신원되어 신원(伸寃)되어 생전의 합문지후(閤門祗侯)의 좌사(左司)로 추증되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중약(李仲若)

미상~1122년(인종 즉위년)
고려전기 국가 재초소로 도관 복원궁 건립을 주도한 도교인. 도사(道士).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진(子眞), 호는 청하자(靑霞子). 7대를 이은 명문출신으로 어머니 이씨(李氏)가 꿈에 도사를 나타내는 노란색의 관을 보고 임신하였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닦는 한편 도장(道藏)을 탐독하고 도풍(道風)을 섬겼다.

출가하여 가야산에 은거하며 스스로 청하자라 칭하고 수련을 쌓다가, 나중에 처사(處士) 은원충(殷元忠)과 선사(禪師) 익종(翼宗)의 주선으로 월출산으로 옮겨 일재(逸齋)를 짓고, 『황정경 黃庭經』에 의지하며 부상공(夫桑公, 少明)·도은거(陶隱居, 弘景)·장천사(張天師, 道陵) 등을 받들어 연단수련(鍊丹修鍊)을 하였다.

도교의술(道敎醫術)에 정통하여 조야에 명성을 얻었으며, 숙종의 치료를 위하여 상경한 뒤, 궁중에서 태자를 시봉하다가 예종이 즉위함에 따라 조정에 등용되었다.

1108년(예종 3) 입송사절(入宋使節)인 예부시랑 한교여(韓皦如)를 따라 송나라에 건너가 법사 황대충(黃大忠)·주여령(周與齡)에게 도교 요체를 전수하는 한편, 송나라 휘종(徽宗)에게 청원하여 도사 2명을 고려에 파견시켰다.

귀국 후 상소하여 국가 재초소(齋醮所)로 도관 복원궁(福源宮)을 건립하였다. 고려 도교의 총본산인 이 복원궁을 중심으로 예종을 통하여 도교정책을 펴다가 1122년 권신 이자겸(李資謙)의 세력에 의한 한안인(韓安仁) 일파 축출시에 연루되어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신원되어 생전의 합문지후(閤門祗候)에서 좌사(左司)로 추증되었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6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