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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대장(捕盜大將) 이몽린(李夢麟)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23:55

포도대장(捕盜大將) 이몽린(李夢麟)


1496(연산군 2)~1563(명종 18)

명종 때의 명장. 자는 국서(國瑞)이고 증이조판서 인신(仁臣)의 장남이며 명상(名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당숙이다.

어려서부터 무술에 능하여 담장에 구멍을 뚫고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아 백발백중하였다.

일찍이 무과에 등제하여 1523년(28세)에 단천군수, 1524년(29세)에 정평(定平)부사, 1530년(35세)에 전라우도수군절도사에 보임된 뒤에 왜선(倭船) 1척을 파쇄하고 적군 17급을 사살햇으며 궁시(弓矢)와 반의(斑衣) 및 잡물(雜物)을 노획하는 전공(戰功)을 올리므로써 남해와 서해에 출몰하는 왜구(倭寇)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그 뒤 관사(觀射) 때마다 번번히 1등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와 숙마(熟馬) 1필을 받았다.

1536년(41세)에 동지중추부사로 있을 때에 관사(觀射)에서 매가 장전(帳殿)에 차린 어선(御膳)을 노리며 맴돌므로 임금이 싫어하여 쏘아버리라 하므로 한 대신(大臣)이 “이몽린만이 할 수 있아옵니다.”하니 “몽린을 부르라”했다. 공이 황급히 달려와서 여쭙기를 “매의 어디를 쏘오리까”하니 임금이 괴이쩍게 여기고 “매의 등을 쏘아보라.” 하시니 화살 두 대를 시위에 먹이어 한 대를 먼저 쏘고 이어서 다음을 쏘니 먼저 쏜 화살이 매의 왼쪽 날개를 맞히자 매가 놀라 뒤집히는 사이에 다음 화살이 매의 등을 맞힌 것이다.
매가 땅에 떨어져 주워보니 과연 등에 촤살이 꽂혔으므로 임금과 신하들이 혀를 내둘렀고 이로부터 공의 명성이 전국에 울렸다.

뒤에 가의대부(嘉義大夫)를 받았고 1539년(44세)에 경상도수군절도사, 1541년(46세)에 전라도병마절도사, 1544년(49세)에 충청도병마절도사, 52세에 함경북도병마절도사에 이르고 56세에 동지중추부사로 시사(試射)에서 3번을 1등하였다.

60세에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이르고 62세에 포도대장으로 진력(盡力)하다가 65세에 졸하였다. 졸후에 증영의정에 추서되고 사패묘지(賜牌墓地)를 받았으며 3대 증직(贈職)이 되어 고(考)는 증이조판서*조부도 증이조판서*증조부는 증이조참판을 받았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