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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상서우복야공(司空尙書右僕射公) 이주좌(李周佐)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19:01

사공상서우복야공(司空尙書右僕射公) 이주좌(李周佐)


?~1040(정종 6). 고려의 문신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좌복야 이성공(李成功)의 천거로 국학에 입학하고 목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상주목기실참군사로 나갔고 이어 감찰어사에 올랐다.

현종 때 기거사인․동북면병마사가 되었는데, 삭방도내의 19현이 번적(蕃賊)의 피해를 입은 지역이므로 조세의 감면을 요청하여 실현하는 등 백성의 안주(安住)에 힘썼다.
덕종초에 우간의대부에 이르고 1036년(정종 2) 우산기상시를 거쳐 1040년 형부상서판어사대사에 이르렀다. 사후에 사공상서우복야(司空尙書右僕射)에 추증되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주좌(李周佐)

미상~1040년(정종 6)
고려전기 우간의대부, 우산기상시, 형부상서판어사대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가세가 한미하였으나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동경유수로 있던 좌복야(左僕射) 이성공(李成功)의 천거로 국학에 입학하였다.

목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상주목기실참군사(尙州牧記室參軍事)로 나아갔고, 이어 감찰어사에 올랐으며, 현종 때 기거사인(起居舍人)을 거쳐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이 때에 삭방도내의 19현이 번적(蕃賊)의 피해를 크게 입는 지역임을 들어 조세의 감면을 요청, 주민의 안주(安住)에 힘썼다.

덕종 초에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고, 1036년(정종 2)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를 거쳐 1040년에는 형부상서 판어사대사(刑部尙書判御史臺事)에 이르렀다. 사공 상서우복야(司空尙書右僕射)에 추증되었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5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