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인물 과거/경주이씨◇인물

독립운동가 경산공(庚山公) 이규채(李圭彩)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9. 11:11

독립운동가 경산공(庚山公) 이규채(李圭彩)


1888(고종 25)~1947. 독립운동가

일명 규보(圭輔), 자는 공삼, 호는 경산(庚山)*동아(東啞)*우정(宇精).
경기도 포천 출신.
3.1운동 이후 항일의식을 고취하다가 상해로 망명, 1924년 임시의정원의원,
1930년 한국독립당 정치부위원 및 군사부참모장, 1933년 중화민국 제3군 상교참모(上校參謀),
1934년 신한독립단감찰위원장, 1935년 9월 25일 상해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10년 언도를 받고 복역하다가 1940년 가출옥하였고 1945년 단군전봉건회(檀君殿奉建會) 부위원장,
반탁국민연맹회 상무위원, 미소공동회의 대책국민연맹 대표이원,
대한독립촉성국민대회장, 대종교총본사 경의참의 등을 역임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규채(李圭彩)

1884년(고종 21)~1947년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한국독립당 정치부위원, 신한독립당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일명 규보(圭輔). 자는 공삼(公三), 호는 경산(庚山)·동아(東啞)·우정(宇精). 경기도 포천 출신. 이철영(李喆榮)의 아들이다.

1908∼1910년까지 청성학교(靑城學校)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3·1운동 이후 창신서화연구회(創新書畫硏究會)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남녀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다가 일본경찰에 발각되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1924년 임시의정원의 의원으로 피선되었다. 1930년 한국독립당의 정치부위원 겸 군사부참모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32년 총무위원장이 되었다.

1933년 중화민국 길림육군(吉林陸軍) 제3군의 상교참모(上校參謀)가 되었으며, 1934년 신한독립당감찰위원장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음해 9월 25일 상해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10년 징역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다가 1940년에 가출옥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단군전봉건회(檀君殿奉建會) 부위원장을 비롯, 반탁국민연맹회 상무위원, 미소공동회의 대책국민연맹 대표위원, 대한독립촉성국민대회장, 대종교총본사 경의참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3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