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인물 과거/경주이씨◇인물

동강공(東江公) 이석규(李錫奎)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23:30

동강공(東江公) 이석규(李錫奎)


1758(영조 34)~1839(헌종 5)

조선 후기의 문신·초명은 영석(永錫)·자는 치성(穉成)·호는 동강(東江). 경기도 진위(振威) 출신.

항복(恒福)의 7대손으로 경관(敬寬)의 아들이다.

1783년 사마시에 올라 참봉을 거쳐 고양군수로 재직 중에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1818년 성균관 대사성, 1820년 대사간을 거쳐 1821년 충청도 관찰사로 나아가 단양군의 전세(田稅)·대동미(大同米)·군포(軍布) 등을 돈으로 대납하도록 하여 민폐를 줄였다.

1825년 형조판서에 오른 뒤에 이조·공조·예조의 판서를 거쳐 의정부 좌우참찬, 한성부판윤·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고 보국승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석규(李錫奎)

1758년(영조 34)~1839년(헌종 5)
조선후기 우참찬,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이영석(李永錫), 자는 치성(穉成), 호는 동강(東江). 진위(振威)출신. 이항복(李恒福)의 7대손이며, 이정관(李鼎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종주(李宗周)이다. 아버지는 이경관(李敬寬)이며, 어머니는 서종벽(徐宗璧)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하고, 참봉을 거쳐 고양군수로 재임중인 1807년(순조 7) 알성문과에 급제하였다. 1818년 성균관대사성, 1820년 대사간을 거쳐 1821년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충청도관찰사로 재임중 단양군의 전세(田稅)·대동미(大同米)·군포(軍布) 등을 돈으로 대납할 것을 청하여 허락받았다.

1825년 형조판서에 임명된 이래 이조·공조·예조 등의 판서, 의정부 좌·우참찬, 좌부빈객,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1833년 파직당하였다. 품계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이르렀고,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4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