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인물 과거/경주이씨◇인물

정헌공(定獻公) 이몽량(李夢亮)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23:58

정헌공(定獻公) 이몽량(李夢亮)


1499(연산군 5)~1546(명종 19) 조선 중기의 명신

자는 응명(應明). 증좌찬성 예신(禮臣)의 아들이며 선조 때의 명상(名相) 항복(恒福)의 아버지.

1528년 형 몽윤과 함께 문과에 급제 사간원정언을 거쳐 1539년 특명으로 경상도 어사가 되어 민정을 살피고 명종이 즉위하면서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이 되었고 대사간에 이르렀다.

1560년 한성부판윤을 거쳐 형조판서․우참찬에 이르렀다. 증영의정에 추서되고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몽량(李夢亮)

1499년(연산군 5)~1564년(명종 19)
조선전기 병조참판, 경기감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응명(應明). 이숭수(李崇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동판관 이성무(李成茂)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예신(李禮臣)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시·진사시에 급제하고, 1528년 형 이몽윤(李夢尹)과 함께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다. 이어서 승정원주서·사간원정언을 역임하고, 1539년 국왕의 특명으로 경상도어사가 되어 민정을 살피고 돌아왔다.

그 뒤 명종이 즉위하자 동부승지로 발탁되면서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으로 광산군(廣山君)에 봉해졌고, 이어서 대사간으로서 학문에 입각한 도학정치를 제창하였다. 1547년(명종 2)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도민의 진휼을 위하여 진력하였고, 이어서 예조참의·병조참지·대사간을 역임하고 1550년 도승지에 올랐다.

이듬해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조식(曺植) 등 재야사림을 천거하였고, 이어서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그 뒤 대사간·병조참판·경기감사·예조참판·도승지를 역임하고, 1560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이어서 대사헌·형조판서를 지냈는데, 형조판서로서 형률을 잘못 처리하였다고 하여 한 때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곧 서용되어 동지중추부사·한성부판윤을 거쳐 우참판에 이르렀다. 성품이 온유하였고 형제 사이에 우의가 돈독하였다.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4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