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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공(襄平公) 이철견(李鐵堅)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18:43

양평공(襄平公) 이철견(李鐵堅)


1435(세종 7)~1492(성종 23). 조선 전기의 무신

자는 연부(鍊夫). 처음에 능직(陵直)으로 시작하여 사헌부감찰·충청도사·한성부판관에 이르러 다시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통정대부·훈련도정를 거쳐 가선대부․자헌대부가 가자(加資)되었고 평안도 서도(西道) 절도사에 이르고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성종 때에 좌리공신에 책봉되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오르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공은 3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양조(兩曹)의 판서와 금려(禁旅. 궁중의 용호영(龍虎營)의 기사(騎士))의 도총관을 맡았으며 사헌부와 사간원의 수장이었고 한선부의 판윤을 다시 맡고 의정부의 이상(貳相)에 오랐으니 모든 직위를 고루 겪었다고 할 것이다.
1492년(성종 23)에 졸하니 향년 59이었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앞의 향년은 대종보의 행적기록에 따라 정리)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철견(李鐵堅)

1435년(세종 17)~1496년(연산군 2)
조선전기 형조판서, 호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연부(鍊夫). 이원보(李元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승(李昇)이고, 아버지는 참판 이연손(李延孫)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윤번(尹璠)의 딸이다.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동생이다.

문음으로 헌릉직(獻陵直)을 거쳐 한성부판관으로 있을 때인 1460년(세조 6) 무과에 급제하고, 1466년 등준시(登俊試)에 합격하여 이듬해에 훈련원도정이 되었다. 1468년 예종 즉위 후에 평안도절도사가 되고 성종 즉위 후인 1470년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하여졌다. 이어 경기도관찰사, 형조·호조의 판서를 거쳐 1480년(성종 11)에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이어 좌참찬·경상도관찰사·대사헌을 지냈다.

1484년에 한성부판윤으로 사민안접순찰사(徙民安接巡察使)를 겸하여 사민정책을 주관하였다. 1486년에 좌찬성이 되고, 이어 판의금부사, 평안도·영안도(永安道)의 도체찰사, 도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1493년에 척신으로서 탐학하고 사치를 좋아하며 전횡이 심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연산군 즉위 후인 1495년에 지의금부사에 복직되었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6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