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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공(文安公) 이문형(李文炯)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5. 25. 16:53

문안공(文安公) 이문형(李文炯)

 

 

?~1467(세조13). 조선 전기 문신

 

시(諡)는 문안(文安). 청호공 희(暿)의 아들이다.

1447(세종29)년 식년시문과정과에 급제하고 1452(문종2)년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3(단종1)년 계유사화 때 공으로 원종공신2등에 녹훈되었으며 이조정랑에 임명되었다.

1461(세조7)년 승지로 발탁되어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으로 왕명을 받들어 손자주해를 교정하였다. 사헌부집의를 지내고 동부승지를 거쳐 우부승지를 지내면서 역대병요를 교정하였다.

이어 좌부승지를 거쳐 1463(세조9)년 형.이조참판을 지내고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5(세조11)년 한성부윤(漢城府尹)에 올랐다. 1466(세조12)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使)가 되어 표류민(漂流民)들을 돌려보낸 데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통주에서 병사했다. 그는 문장에 능하여 이름을 떨쳤으며 세인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자료제공: 이범우 중앙화수회 자문위원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문형(李文炯)

 

사망: 1466년(세조 12)

경력: 우승지, 형조참판, 이조참판

 

요약: 조선전기 우승지, 형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이담(李擔)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이희(李瞺)이다. 어머니는 안등(安騰)의 딸이다.

 

1447년(세종 29) 궁직(宮直)으로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1452년(문종 2)에 『세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고,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에 공을 세워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 되었으며 정랑이 되었다.

 

1455년(세조 1) 정랑에서 집의를 거쳐 1460년에는 시를 잘 지은 것이 계기가 되어 승지로 발탁되었고, 예문관직제학으로 『손자주해(孫子註解)』를 교정하였으며, 집의·동부승지를 거쳐 이듬해에는 우부승지가 되어 『역대병요(歷代兵要)』를 교정하였다.

 

그 뒤 좌부승지·우승지를 거쳐 1463년에 형조참판·이조참판에 이르러서는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명황계감(明皇誡鑑)』의 가사를 교정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한성부윤을 거쳐, 동지중추원사에 이르러서는 표류민을 돌려보낸 데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갔었다.

 

그 해 귀국하던 중 통주(通州)에서 병사하였다. 성품이 온화하고 국량(局量)이 있었으며, 침묵을 지켜 말이 적고 비록 급한 일이 있을지라도 침착하고 조용하게 처리하였다. 아들이 없었으나, 첩을 두지 않고 조카로 후계를 삼았는데도 가정이 화목하고 엄하였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고고한 한담(閑談)으로 문아(文雅: 문장과 風雅)가 한때를 오로지하니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고 공경하였는데, 이문형의 죽음을 듣고 슬퍼하고 애석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북정록(北征錄)』을 교정하였으며,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4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