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인물 과거/경주이씨◇인물

문숙공(文肅公) 이보림(李寶林)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23:51

문숙공(文肅公) 이보림(李寶林)


생몰년 미상. 고려말의 문신

문하시중 제현(齊賢)의 손자이고 서종(瑞種)의 아들.

1359년 남원부사 때에는 재정을 긴축하여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경산(京山)부사 때는 송사를 잘 처리하여 평판이 좋았다.

1375년에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치적(治積)이 뛰어나서 대사헌으로 승진하였다.

이어서 밀직부사가 되었는데 때에 제주도에서 바친 검은 염소를 여러 주에 나누어 기르게 했는데, 한 고위 관리가 사사롭게 분양을 요구하므로 그 부정함을 규탄하고 묵살해버렸다.

뒤에 정당문학에 오르고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보림(李寶林)

?~1385년(우왕 11)
고려후기 우사간, 남원부사,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문하시중을 지낸 이제현(李齊賢)의 손자이며, 이서종(李瑞種)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 염철별감(鹽鐵別監)을 여러 도에 보내려고 하자, 우사간(右司諫)으로 우간의(右諫議) 이색(李穡) 등과 함께 그 폐단을 들어 혁파하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재상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1359년 남원부사가 되어서는 재정계획을 정하고 재정을 집행하게 하여 백성들에게 함부로 걷는 것이 없게 하였다. 또한, 경산부사(京山府使)로 옮겨서는 어려운 송사를 잘 처리하여 평판이 좋았다.

1375년(우왕 1) 판안동부사로 있을 때는 치적이 최상이라 하여 대사헌으로 승진하였다. 이때 임박(林樸)이 북원(北元)에 보내는 글에 서명하지 않자 임박을 탄핵하여 유배시켜 당시 사람들로부터 이인임(李仁任)의 뜻에 아부하는 지조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어 밀직부사가 되었으며, 제주에서 바친 고력(羖䍽: 일종의 牝黑羊)을 여러 주에 나누어 기르게 하였는데 죽는 것이 많아지자 백성들에게 그 값을 물리므로 권중화(權仲和)와 함께 부당성을 지적하여 정지시켰다. 그 뒤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랐고,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4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