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인물 과거/경주이씨◇인물

눌헌공(訥軒公) 이사균(李思鈞)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23:48

눌헌공(訥軒公) 이사균(李思鈞)


1471(성종 2)~1536(중종 31)

자는 중경(重卿), 호는 눌헌(訥軒).

1498년에 문과에 급제, 1509년 교리를 거쳐 장악원정․우승지에 이르고 1513년 도승지가 되고 1517년 공조, 형조참의 때에 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한 때 조광조일파로 몰리어 좌천되었으나 이조판서․참찬으로 승진되고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강(文剛)이고 ≪訥軒集≫이 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사균(李思鈞)

1471년(성종 2)~1536년(중종 31)
조선전기 우승지, 이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경(重卿), 호는 눌헌(訥軒). 이희(李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계반(李繼潘)이다. 아버지는 판관 이식(李埴)이며, 어머니는 부사 김숙(金潚)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로 등용되었다. 1500년 홍문관정자 겸 경연전경(弘文館正字兼經筵典經)이 되고, 1503년 저작·부사과를 거쳐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었다. 이듬해에 부수찬으로 폐비 윤씨(尹氏)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보은으로 유배되었고, 곧 곤양(昆陽)으로 옮겨졌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부수찬으로 기용되고, 이듬해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이 되었다. 1509년(중종 4) 교리를 거쳐 부응교가 되고, 이듬해 전적을 거쳐 집의 겸 춘추관편수관이 되었다. 그 뒤 승문원참교(承文院參校)·사성 겸 지제교·장악원정·우승지·첨지·장악원판결사를 역임하고, 1513년에 도승지가 되었다.

1514년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517년 공조와 형조의 참의가 되었다. 그 해에 중궁책봉주청사(中宮冊封奏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19년 전주부윤을 거쳐, 부제학으로 있을 때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趙光祖) 일파로 몰려 한때 좌천되었다가 곧 공조참판이 되고, 이어서 이조판서가 되었다.

1534년 참찬으로 승직되었으나, 나세찬(羅世纘)을 구하려다가 경기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뒤에 다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저서로는 『눌헌집(訥軒集)』이 있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4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