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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공(老圃公) 이인소(李寅燒)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21:27

노포공(老圃公) 이인소(李寅燒)


1637(인조 15)~1698(숙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자명(子明), 호는 노포(老圃). 좌의정 경억(慶億)의 아들.

1663년(현종 4) 진사가 되고 문음(門蔭)으로 외직에 나가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다. 정승 정재승(鄭載嵩)이 “몸가짐이 맑고 신실하다.”고 천거하여 낭관에 올랐다.

1693년(숙종 19) 57세로 아우 인병(寅炳)과 함께 급제하여 수찬으로 있으면서 화폐 유통의 폐단에 대하여 논하였고 뒤에 교리에 이르렀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인소(李寅燒)

1637년(인조 15)~1698년(숙종 24)
조선후기 수찬,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노포(老圃). 이대건(李大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시발(李時發)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이며, 어머니는 윤원지(尹元之)의 딸이다.

1663년(현종 4)에 진사가 되었고, 문음(門蔭)으로 외직에 나가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하였다. 임기를 채우고 서울로 오자 정승 정재숭(鄭載嵩)이 몸가짐이 맑고 신실하다는 것으로 천거하여 낭관에 올랐다. 1693년(숙종 19)에 57세의 나이로 알성문과에 병과로 동생 이인병(李寅炳)과 함께 급제하였다. 1696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화폐유통의 폐단에 대하여 논한 바 있다. 그 뒤 교리에 이르렀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5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