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인물 과거/경주이씨◇인물

양희공(襄僖公) 이흥적(李興啇)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14:41

양희공(襄僖公) 이흥적(李興啇)


?~1465(세조 11).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자연(子衍). 음직(蔭職)으로 나가서 여러 관직을 겨쳐 판선공감사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란 당시에 의금부진무로 있을 때 수양대군의 지시로 김종서의 집으로 가서 김종서와 그의 아들을 죽였다. 이 공으로 정란공신 3등에 책정되고 첨지중추원사에 올랐다. 1454년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고 이듬해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양희(襄僖)이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흥상(李興商)

미상~1465년(세조 11)
조선전기 의금부진무, 첨지중추원사, 중추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연(子衍). 음직으로 행수(行首)에 보직, 여러 벼슬을 거쳐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당시에 의금부진무(義禁府鎭撫)로서 수양대군의 지시를 받고 김종서(金宗瑞)의 집에 가서, 김종서와 그 아들 김승벽(金承璧)을 찾아내어 목을 베었다. 이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책정되고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승진되었다. 이듬해 1454년에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고, 1455년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양희(襄僖)이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6697

 

 

*다음백과에는 이흥적(李興啇) → 이흥상(李興商)으로 나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