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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포공(松圃公) 이일로(李逸老)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20:40

송포공(松圃公) 이일로(李逸老)


?~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회수(晦叟), 호는 송포(松圃). 일영(逸英)의 아우이다.

1613년(광해군 5) 국구(國舅) 김제남(金悌男)을 역모로 몰고 영창대군을 강화에 위리안치한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항소하여 흉당을 공박한 일로 투옥되었고 역모로 몰아 가혹한 국문(鞠問)을 하는데도 자기의 소행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일일이 직고(直告)하여 온갖 고초를 겪고 절도(絶島)에 안치되었다.

15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서 종묘봉사에 배치되었고 1636년 병자호란 때에 강화에 들어갔다가 강화성이 함락되므로 형 일영과 함께 순절하였다.

이때에 형수 이씨(李氏)와 부인 이씨(李氏)도 함께 순절하여 한 집안에서 네 사람이 순국하였다. 1834년(순조 34) 그의 형제에게 지평(持平)이 추서되고 그들의 집이 있던 경상도 칠곡에 정문을 세워서 표창하였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일로(李逸老)

1578년(선조 11)~1637년(인조 15)
조선시대 종묘봉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회수(晦叟), 호는 송포(松圃). 이계장(李繼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간 이세림(李世琳)이다. 아버지는 증참의 이돈(李敦)이며, 이일영(李逸英)의 아우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국구(國舅) 김제남(金悌男)을 역모로 몰고, 영창대군을 강화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한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항소하여 대북을 공격하여 투옥되었다.

역적을 심문하는 국청(鞫廳)이 개설되자 자기의 소행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일일이 직고(直告)하여 절도(絶島)에 안치되어 10년 동안 고초를 겪었다. 15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종묘봉사(宗廟奉事)에 배수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에 들어갔는데, 강화성이 함락되자 부인 풍양조씨(豊穰趙氏), 그리고 형 이일영과 형수 고령박씨(高靈朴氏)도 같이 순절하여 한집에서 네 사람이 순국하였다. 1834년(순조 34) 이일로의 형제에게 지평이 증직되고, 그들이 살고 있던 경상도 칠곡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5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