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인물 과거/경주이씨◇인물

공주목사공(公州牧使公) 이시현(李時顯)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22:39

공주목사공(公州牧使公) 이시현(李時顯)


1622(광해군 14)~1678(숙종 4)

자는 사영(士榮). 명상 항복(恒福)의 손자이고 부사 성남(星男)의 아들이다.

1659년(효종 10) 병조판서 송준길(宋浚吉)의 추천으로 사옹원봉사가 된 뒤에 사복시직장·홍산현감을 거쳐 개령현감에 이르렀다.

때마침 가뭄으로 기근이 들었으나 비축미가 없어서 경비의 절약으로 기민을 구제하는 비상수단으로 많은 백성을 죽음에서 건졌다.

이 사실이 암행어사 신정(申晸)이 장계(狀啓)하여 이듬해에 성주목사로 승진하였다. 이곳에서도 선정을 베풀어 통정대부가 가자되었고 이어서 공주목사에 이르렀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시현(李時顯)

1622년(광해군 14)~1678년(숙종 4)
조선후기 사복시주부, 개령현감, 공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사영(士榮).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의 후손이며, 참판 이몽양(李夢亮)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부사 이성남(李星男)이며, 어머니는 참판 김제남(金悌男)의 딸이다.

1659년(효종 10) 병조판서 송준길(宋浚吉)의 천거로 사옹원봉사가 된 뒤 직장(直長)이 되고, 이어서 사복시주부·홍산현감을 거쳐 1671년(현종 12) 개령현감이 되었다. 때마침 기근이 들었으나 비축미가 없었으므로 경비를 절약하여 기민을 구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사실이 암행어사 신정(申晸)에 의하여 보고되어 이듬해 성주목사가 되었다. 이곳에서도 진휼정책을 잘하여 통정대부에 오르고, 이어서 공주목사를 역임하였다.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5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