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유고(慵齋遺稿) 35

[慵齋遺稿] [疏] 辭臺職 <국역>

용재유고(慵齋遺稿) / 疏 辭臺職 伏以臣屛伏嶺陬。跡阻鵍班。瞻望雲天。不覺神魂之飛越。卽者。柏府除旨遽下。繼而有馹召之命。臣北望稽首。感淚被面。莫知所以爲言也。臣才識空疏。言議拙訥。本不合於淸朝耳目之任。今此所叨之職。決無趨承之望。且臣身嬰奇疾。已過三朔。抱鞍遠役。實無其勢而第伏念。臣以遐方孤寒之踪。荷 聖上翦拂之私。自釋褐至今數年之間。恩數之及於賤臣者非止一再。臣感激震越。銘在肺腑。常欲一死於國。而不可得。顧何敢聞命遲徊。言私退托。以自陷於辜恩負國之罪哉。況今盛禮纔過。群情益聳。以臣慕戀之誠。得際煕昌之會。一登文陛。仰瞻天顏。尤是滿腔之至願。區區微命。有不足恤。故扶曳病軀。冒風登途矣。至陰竹地。身病添㞃。一倍作苦。強起倚馬。旋復顚仆。自量氣力。實有中路溘死之慮。茲敢席藁旅邸。仰暴危懇。伏乞聖明。俯憐疾痛之呼。特賜鐫削之恩。因治臣逋慢之罪。以肅朝綱。千萬幸甚。 ⓒ 한국고전번역원 ..

[慵齋遺稿] [詩] 題枕流亭 <국역>

용재유고(慵齋遺稿) / 詩 題枕流亭 古渡鳴灘依舊流。豐林不改去年幽。山開廣漠聯蓬戶。水鋪平田易釣鉤。峽老登筵因識面。官娥當酒故低頭。斜陽眠鷺渾無事。似解滄浪送客愁。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한국문집총간 > 용재유고 > 慵齋先生遺稿 附訥齋遺稿 > 詩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087A_0030_010_0080_2003_A016_XML 침류정에 짓다[題枕流亭] 옛날 건너던 여울물 여전히 흘러가고 古渡鳴灘依舊流 풍성한 숲은 지난해 그대로 그윽하구나 豐林不改去年幽 산은 넓게 열려서 초가집이 연이었고 山開廣漠聯蓬戶 물은 평평하게 펼쳐져 낚시에 수월하네 水鋪平田易釣鉤 산촌 노인이 얼굴 안다고 잔치에 나오고 峽老登筵因識面 관기는 술잔 들고 짐짓 고개 숙..

[慵齋遺稿] [詩] 次睡軒 <국역>

용재유고(慵齋遺稿) / 詩 次睡軒 戲劇從他造物麽。浮休自信命途賖。冥心擬住棲霞嶺。散脚那堪待漏靴。書劍有身長客路。乾坤到處是渠家。悤悤又向前頭館。十里林霏送 缺 笳。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한국문집총간 > 용재유고 > 慵齋先生遺稿 附訥齋遺稿 > 詩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087A_0030_010_0070_2003_A016_XML 수헌에게 차운하다1)[次睡軒] 희극은 잗달은 저 조물주에게 맡겨 두고 戲劇從他造物麽 무상한 인생 아득한 운명의 길에 맡기네 浮休自信命途賖 고요한 마음 노을 지는 산에 머무려는데 冥心擬住棲霞嶺 한가한 발걸음 어찌 새벽 출근을 견디랴 散脚那堪待漏靴 책과 긴 칼 몸에 지닌 머나먼 나그네 길 書劍有身長客路 천지간에 닿..

[慵齋遺稿] [詩] 和睡軒登樓韻 <국역>

[용재유고(慵齋遺稿) / 詩 和睡軒登樓韻 鶴怨山空一逋客。簿書叢裏鬢華生。農謳落日村村雨。驚喜皇牟已受明。 又 蘸他雲磴有澄江。掠舫沙鷗作一雙。如許天游吾領略。高懷磯硉此能降。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한국문집총간 > 용재유고 > 慵齋先生遺稿 附訥齋遺稿 > 詩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087A_0030_010_0060_2003_A016_XML 수헌의 「등루」 시에 화답하여1)[和睡軒登樓韻] 산이 비자 학은 달아난 나그네 원망하는데2) 鶴怨山空一逋客 문서 더미 속에서 백발만 생기는구나 簿書叢裏鬢華生 농부는 해 질 녘 마을마다 내리는 비를 노래해 農謳落日村村雨 보리가 장차 익어갈 것을 기뻐하네 驚喜皇牟已受明 ------------------- ..

[慵齋遺稿] [詩] 送秋江南孝溫游柰城郡 奈城。寧越舊號。 <국역>

용재유고(慵齋遺稿) / 詩 送秋江南孝溫游柰城郡 奈城。寧越舊號。 十年山海客。誰識讀春秋。一掬零陵淚。三更杜宇樓。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한국문집총간 > 용재유고 > 慵齋先生遺稿 附訥齋遺稿 > 詩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087A_0030_010_0050_2003_A016_XML 내성군으로 유람하는 추강 남효온을 보내며[送秋江南 孝溫 游柰城郡] 내성柰城은 영월寧越1)의 옛 이름이다. 십 년 동안 강산 떠도는 나그네 되니 十年山海客 『춘추』를 읽은 자인 줄 뉘라서 알리 誰識讀春秋 한 움큼 영릉의 눈물2)을 흘리노라 一掬零陵淚 깊은 밤 자규루3)에서 三更杜宇樓 ------------------------ 1) 영월(寧越) : 단종이 노..

[慵齋遺稿] [詩] 謫江界。詠蘇武窟。 <국역>

용재유고(慵齋遺稿) / 詩 謫江界。詠蘇武窟。 萬古不辱命。誰與子卿烈。去時一漢節。來時一漢節。一節十九年。千秋名不滅。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한국문집총간 > 용재유고 > 慵齋先生遺稿 附訥齋遺稿 > 詩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087A_0030_010_0040_2003_A016_XML 강계에 귀양 가서 소무의 굴1)을 읊으며[謫江界 詠蘇武窟] 왕명을 만고에 욕되게 하지 않은 자 萬古不辱命 그 누가 자경2)의 매서움만 하랴 誰與子卿烈 떠날 때 한나라의 한 개 부절 지니고 去時一漢節 올 때도 한나라의 한 개 부절 지녔네 來時一漢節 오로지 십구 년을 절개 지키니 一節十九年 천추에 그 이름 사라지지 않도다 千秋名不滅 -------------..

[慵齋遺稿] [詩] 與權嚮之次季雲詠雪。排律。嚮之。睡軒字。季雲。濯纓字。 <국역>

용재유고(慵齋遺稿) / 詩 與權嚮之次季雲詠雪。排律。嚮之。睡軒字。季雲。濯纓字。 歲暮從爲客。天涯任轉蓬。睡軒 梅花驚落地。柳絮笑引風。 慵軒 片片飛回急。斜斜緩舞工。睡軒 重重成活畫。一一入詩胸。 慵軒 銀鳳眠欹竹。玉龍臥偃松。睡軒 白鷗應失樹。皓鵠已辭籠。 慵軒 賦縞梁王客。吟鹽謝氏童。睡軒 乘舟淸興足。擁馬謫心忡。 慵軒 敗履存東郭。吟肩秀兩峯。睡軒 閉門覺高士。盈尺占三農。 慵軒 瓊宇閑情發。瑤臺望眼矇。睡軒 仙從披氅得。節爲齧氈雄。 慵軒 造化元無定。吹噓萬不同。睡軒 書空愁咄咄。呼酒樂融融。 慵軒 詠雪潮陽筆。無端賦送窮。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한국문집총간 > 용재유고 > 慵齋先生遺稿 附訥齋遺稿 > 詩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087A_0030_010_0030_2..

[慵齋遺稿] [詩] 題友人扇 <국역>

용재유고(慵齋遺稿) / 詩 題友人扇 相知八年內。會小別離多。臨分千里手。掩泣聞淸歌。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한국문집총간 > 용재유고 > 慵齋先生遺稿 附訥齋遺稿 > 詩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087A_0030_010_0020_2003_A016_XML 벗의 부채에 쓰다1)[題友人扇] 서로 알고 지낸 팔 년 사이 相知八年內 만남은 적고 이별은 많았네 會小別離多 눈물 훔치며 맑은 노래 듣노라 掩泣聞淸歌 ------------------------ 1) 벗의 부채에 쓰다 : 이 시는 『연려실기술』 권6 「무오당적」과 남효온(南孝溫)의 『추강집(秋江集)』에 의하면 무풍정(茂豐正) 이총(李摠)이 지은 것이며, 그와 보제원(普濟院)에서 ..

[慵齋遺稿] [詩] 題三笑圖 <국역>

용재유고(慵齋遺稿) / 詩 題三笑圖 遠公細而黠。破戎非不知。暫寄虎溪興。欺謾措大癡。 次韻 南秋江 少年昧大年。少知昧大知。題詩亦措大。安知陶陸癡。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한국문집총간 > 용재유고 > 慵齋先生遺稿 附訥齋遺稿 > 詩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087A_0030_010_0010_2003_A016_XML 「삼소도」1) 에 짓다[題三笑圖] 원공2)은 잘고도 약아서 遠公細而黯 계율을 모르지 않았을 터 破戒非不知 잠깐 호계의 흥3)에 붙여서 暫寄虎溪興 어리석은 선비 속였던 게지 欺謾措大癡 ------------------ 1) 「삼소도(三笑圖)」 : 혜원(慧遠)·도연명(陶淵明)·육수정(陸修靜) 세 사람이 호계(虎溪)에서 크게 웃..

[慵齋遺稿] 慵齋先生遺稿世譜圖, 용재 눌재 양 선생 세계도(2020년)

[용재유고(慵齋遺稿)] 慵齋先生遺稿世譜圖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한국문집총간 > 용재유고 > 慵齋先生遺稿世譜圖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087A_0020_000_0010_2003_A016_XML ○ 시조(始祖) 알평(謁平)에서 32世까지의 족보가 실려 있다. 號·生年·관직·배우자 등의 개인기록은 21世에서 28世까지만 기록되어 있고 나머지 세대는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이종준 형제는 21世이다.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http://kyujanggak.snu.ac.kr/home/index.do?idx=06&siteCd=KYU&topMenuId=206&targetId=379&gotourl=http://kyu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