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옹공(艮翁公) 이익(李瀷) 1579(선조 12)~1624(인조 2).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형여(泂如), 호는 간옹(艮翁), 옥포(玉浦). 판관 유일(惟一)의 아들이다. 1612년(광해군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에 등용되고 뒤에 사서·전언·헌납·지평·예조정랑·병조정랑을 거쳐 직강에 이르렀다. 인목대비의 폐비논의가 일자 반대상소를 올렸다가 심한 문초를 받았으나 끝까지 굽히지 않았으며 다행히 기자헌(奇自獻)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고 제주에 안치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사예와 장령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미처 왕을 호종하지 못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사후에 전한(典翰)에 추서되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