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사당공(再思堂公) 이원(李黿) ?~1504(연산군 10).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낭옹(浪翁), 호는 재사당(再思堂). 명상 제현(齊賢)의 7세손으로 현령 공린(公麟)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증이조판서 박팽년(朴彭年)의 딸이다. 1989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1495년(연산군 1)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으며 그 뒤 호조좌랑을 거쳐 봉상시에 재직하면서 공의 스승인 김종직(金宗直)에게 문충(文忠)의 시호를 줄 것을 제안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 때 이로 인하여 곽산에 장류(杖流)되었다가 4년만에 다시 나주로 이배되었는데, 1504년 갑자사화로 참형을 당하였다. 1506년(중종 1)에 중종반정으로 신원(伸寃)되었고 뒤에 나주의 영강사(榮江祠)와 곽산의 월포사(月浦祠)에 배향되었다. 유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