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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광서당기(鏡光書堂記) -松巖(송암) 權好文(권호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1. 18. 00:00

[松巖集] 鏡光書堂記
-松巖(송암) 權好文(권호문)


永嘉。嶺表之儒藪。俗尙敎育。家習絃誦。文風盛也。自近歲。士類愈奮勵。慕家塾黨庠之制。爭建隸業之所。此崇學之端也。隆慶三年。士人南君衝,權君德潤氏。乃就辛上舍乃沃謀曰。吾輩雖遲暮。孺子可敎。其可無藏修之室耶。乃卜溪曲一隙地。眞絶境也。分有司聚堂資。期以明年春堂成。中以爲堂。傍以爲齋。下一層東西。又設燠房。使諸生處焉。遂名之曰鏡光書堂。嗚呼。士之爲學。莫要於養心。養心之要。莫切於靜處而篤功。是以。古之有志者。或讀書于山房。或窮理于林居。便向聖賢路頭。以做日用事業。此皆收此心而明此道也。夫道之大原。出於天而具於心。非學則安能明此道而行於世乎。今世之學者不如是。道理之精微。事物之本原。不知何在。而徒區區於務記誦要利祿而已。則豈知爲學之方云乎哉。一心之養與不養。而斯道之行不行係焉。苟得其養。則光明四達。而照用有裕。苟失其養。則人欲昏蝕。而天理牿亡。君子小人之判。自此而分。可不勉哉。立敎之條。進學之序。當以朱文公白鹿洞規。揭諸壁眉。晨夕在目。常自體認。則立脚有定。確然不撓。洗盡俗習趨利之陋。可得有造有德之效。進足以致吾君而澤吾民。退足以掖後覺而厚末俗矣。然後吾鄕文士之興。無愧於無窮。而吾賢友立堂之意。永不孤矣。嗟夫。心學之要。至爲精妙。雖諸子或未易究。而其間亦豈無氣質純粹。志趣堅確。而甘受和白受采。能有造道者乎。此愚之所以眷眷者也。朱子曰。止水不波。明鏡無塵。今以鏡光名此堂者。欲使學者取水鏡之淸明。而明此心之本體也。居是堂而講斯學者。可不顧名而思義乎。夫源泉本淸。而流於汚則濁。故以寸膠救之則還澄。鏡體本明。而埋於塵則暗。故以水鉛磨之則復光。人性本善。而鮮不爲物欲之所蔽。苟能滌舊染之汚。而能復其初。則如水之淸。如鏡之光。故敢以是爲來者告焉。某碌碌末生。見道未瑩。只是賴天之靈。顧諟于中。則方才自若。主翁惺惺。正如明珠大貝。雖落沙礫中。而零零星星。片光時發。故今當奬學之日。聊以所知。不敢自諱於左右也。壬申五月望。永嘉後學松巖某。記。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9
*출처: 한국문집총간 > 송암집 > 松巖先生文集卷之五 >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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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巖集] 경광서당1) 기문〔鏡光書堂記〕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영가(永嘉 안동(安東)의 옛 이름)는 영남에서 유학의 본고장으로, 풍속이 교육을 숭상하여 집집마다 학문을 익혀서 문풍(文風)이 성대하다. 근세에 선비들이 더욱 분발하고 가숙(家塾)과 당상(黨庠)의 제도를 흠모하여 다투어 학업을 연마하는 곳을 세웠으니, 이것이 학문을 숭상하는 단서이다.

융경(隆慶 명 목종(穆宗)의 연호) 3년(1569)에 선비 남형(南衡)과 권덕윤(權德潤)이 상사(上舍) 신내옥(辛乃沃)2)에게 가서 말하기를,

“우리가 비록 늙었지만 어린이들을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어찌 학문을 닦는 장소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에 계곡 구비의 노는 땅에 집터를 정하니 참으로 절경이었다. 유사(有司)를 나누어 정하고 자금을 모아 이듬해 봄에 완공하기로 하였다. 가운데를 당(堂)으로 하고 곁을 서재로 하고, 한 층 아래 동쪽과 서쪽에 또 온돌방을 설치하여 여러 학생들이 거처하도록 하였다. 마침내 이름을 ‘경광서당(鏡光書堂)’이라 하였다.

아, 선비가 학문을 함에 있어서 마음을 기르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마음을 기르는 요체는 고요하게 거처하며 독실하게 공부하는 것보다 절실한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옛날 뜻을 가진 자가 혹 산방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혹 숲 속에 살면서 이치를 궁구하면서 성현의 길로 향하는 것으로써 일상의 사업으로 삼았으니, 이는 모두 마음을 수렴하여 도를 밝히는 일이었다.

무릇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와 마음에 갖추어져 있으나 학문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도를 밝혀서 세상에 행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이와 같지 않아서 도리의 정미함과 사물의 본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다만 구구하게 외우기를 힘써서 이록(利祿)을 꾀할 뿐이니 어찌 학문을 하는 방도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수양되고 수양되지 못하는 데에 유학의 도가 행해지고 행해지지 못하는 것이 달려 있다. 진실로 마음을 수양하면 광명이 사방에 비추어 빛을 넉넉하게 쓸 수 있고, 마음을 수양하지 못하면 욕망에 어두워지고 침식되어 천리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군자와 소인이 여기에서 갈라지니 어찌 힘쓰지 않겠는가.

입교(立敎)의 조목과 진학(進學)의 순서는 마땅히 주문공(朱文公 주희(朱熹))의 〈백록동규(白鹿洞規)〉를 벽 위에 걸어 두고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늘 스스로 마음속에 깊이 새긴다면 참으로 입지가 정해지고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비루한 습속을 다 씻어버리고 성인(成人)은 덕이 있고 소자는 일함이 있어, 벼슬에 나아가서는 우리 임금을 성군에 이르게 하고 우리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으며, 벼슬에서 물러나서는 후학들을 권면하고 말세의 풍속을 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후에야 우리 고장 선비들이 흥기하여 뒷날에도 영원히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고, 우리 어진 벗들이 서당을 세운 뜻도 영원히 잊지 않고 계승될 것이다.

아, 심학(心學)의 요체는 지극히 정묘하여 학생들이 혹 쉽게 궁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기질이 순수해지고 뜻이 견고하게 되어 단 맛이 조화를 받아들이고 흰 바탕이 채색을 받아들이듯이3) 반드시 도에 나아가는 사람이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하던 바이다.

주자(朱子)는 “고요한 물〔止水〕은 물결이 일지 않고 밝은 거울〔明鏡〕은 티끌이 없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 서당을 경광(鏡光)이라 명명한 것은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수(止水)와 명경(明鏡)의 맑고 밝음을 취하여 마음의 본체를 밝히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 서당에 거처하며 학문을 강론하는 자가 어찌 서당 이름을 돌아보면서 그 뜻을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무릇 샘물은 본래 맑으나 더러운 곳으로 흘러가 혼탁하게 되면 한 치 되는 갖풀〔膠〕로 정화하여 다시 맑게 할 수 있고4), 거울은 본래 맑으나 먼지가 끼여 흐려지면 수연(水鉛)으로 닦아내어 밝은 빛을 회복할 수 있고,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나 물욕에 가려지지 않는 사람이 적다. 진실로 옛날에 물든 더러움을 씻어내어 처음의 선한 상태로 회복시키면 이는 마치 물이 다시 맑아지고 거울이 다시 밝아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감히 이것으로 배우러 오는 이들에게 고한다.

모(某)는 녹록한 말학(末學)으로 도를 본 것이 밝지 않다. 다만 천령(天靈)에 의지하여 마음에 돌이켜 생각한다면 마음이 태연자약하고 마음이 늘 깨어있게 되니, 정히 진주를 머금은 큰 조개가 모래 속에 떨어지더라도 희미하게 작은 빛이 때로 반짝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지금 학문을 장려하는 날을 맞아 오로지 알고 있는 바를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감히 숨기지 않고 고하는 바이다.

임신년(1572) 5월 보름에 영가 후학 송암(松巖) 모(某)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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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광서당(鏡光書堂) :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서당이다. 1579년 신내옥(辛乃沃), 남형(南衡), 권덕윤(權德潤) 등이 후학 양성을 위해 건립하였다. 1662년 경광정사로 이름을 바꾸고, 1687년에 경광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8년 복설되었다.
2) 신내옥(辛乃沃) : 1525~1595.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계이(啓而), 호는 일죽재(一竹齋)ㆍ양정재(養正齋)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동문 중 유운룡(柳雲龍), 권호문(權好文) 등과 가까이 지냈다. 출사하지 않고 도학 공부에 전념하여 마을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경광서당을 지어 마을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3) 흰 …… 받아들이듯이 :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단 맛이 조화를 받아들이고 흰 바탕이 채색을 받아들이듯이, 충실하고 신실한 사람이라야 예를 배울 수 있다.[甘受和, 白受采, 忠信之人, 可以學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4) 한 …… 있고 : 갖풀[膠]은 본래 흐린 물을 맑게 정화하는 성질이 있다. 《포박자(抱朴子)》 〈가둔(嘉遯)〉에 “조그마한 갖풀로는 탁한 황하를 맑게 할 수 없다.[寸膠不能治黃河之濁]”라고 하였다.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 안정 (역) | 2016
*출처: 고전번역서 > 송암집 > 송암집 제5권 / 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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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집(松巖集)은 권호문(權好文)의 文集이다.
○권호문(權好文) 1532(中宗27) ~ 1587(宣祖20).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 청성산인(靑城山人)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황(李滉)의 門人이다.

*송암집(松巖集). ⓒ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