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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광서원(鏡光書院) 권송소복향봉안문(權松巢復享奉安文), 상향축(常享祝)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1. 17. 20:40

鏡光書院 權松巢復享奉安文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資稟耿介,操履淸潔。雪立陶山,澤麗川月。凋華就實,功在博約。暫應弓旌,旋樂衡泌。山林道長,逸駕天奪。士慕冞深,爰議廟食。移自溪塾,三賢並腏。朝有令甲,限年毁撤。事異跡混,一體無別。多士籲冤,容臺行牒。事有屈伸,道益光白。改立祠版,蠲吉妥揭。牲醴潔香,庶降監騭。

◈대산집(大山集)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文集이다.
○이상정(李象靖) 1711년(숙종 37)~1781년(정조 5).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고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시호는 문경(文敬). 이재(李栽)의 외손(外孫)이자 門人. 김낙행(金樂行), 최흥원(崔興遠) 등과 교유한 남인학자(南人學者).

ⓒ 한국고전번역원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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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享祝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學問純正。操履堅確。遺風起敬。報祀無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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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집총간 > 송소집 > 松巢先生文集卷之四 > 附錄 > 鏡光書院復享文[李象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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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광서원에 권송소[주-D001]를 다시 제향하는 봉안문〔鏡光書院權松巢復享奉安文〕

굳세고 곧은 성품 타고나 / 資稟耿介
맑고 깨끗한 지조 지켰네 / 操履淸潔
도산에게 가르침을 청하였고[주-D002] / 雪立陶山
월천에게 이택의 도움 받았네[주-D003] / 澤麗川月
꽃 시들매 열매 이루나니 / 凋華就實
공은 박문약례에 있었네 / 功在博約
잠시 궁정에 응하였지만[주-D004] / 暫應弓旌
돌아와 형비[주-D005]를 즐기었네 / 旋樂衡泌
산림에서 도가 자라나는데 / 山林道長
뛰어난 인재 하늘이 빼앗았네 / 逸駕天奪
선비의 사모함 더욱 깊어져 / 士慕冞深
사당에 모실 것 의논하였네 / 爰議廟食
계숙에서 옮겨 모셔 와[주-D006] / 移自溪塾
세 현인 나란히 배향하였네[주-D007] / 三賢並腏
나라 법령이 새로 생겨 / 朝有令甲
연한을 정해 훼철하는데 / 限年毁撤
사적이 다른데도 뒤섞어서 / 事異跡混
일체로 구별 없이 처리하니 / 一體無別
선비들이 억울함 호소하여 / 多士籲冤
대간에 첩정을 올리기도 했네 / 容臺行牒
굽힐 때가 있으면 펴질 때도 있어 / 事有屈伸
도가 더하고 빛이 밝아졌네 / 道益光白
다시 사당에 위판을 세워 / 改立祠版
좋은 날 가려 봉안하였네 / 蠲吉妥揭
희생과 술이 정결하고 향기롭나니 / 牲醴潔香
부디 영령께서 강림하여 살피소서 / 庶降監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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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1] 권송소(權松巢) : 권우(權宇, 1552~1590)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정보(定甫), 호는 송소이다. 아버지는 생원 권대기(權大器)이다. 이황, 조목(趙穆)에게 수학하여 1573년(선조6) 진사시에 입격한 뒤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성리학에 전심하여 학문으로 명망이 높았다. 김해(金垓), 남치리(南致利) 등과 교분이 깊었다. 1589년 왕자인 광해군의 사부에 제수되었으나 그 이듬해에 죽었다. 문집으로 《송소집(松巢集)》이 있다.
[주-D002] 도산(陶山)에게 가르침을 청하였고 : 권우는 19세 때에 이황에게 《역학계몽(易學啓蒙)》을 배워 학문의 요지를 들었다.
[주-D003] 월천(月川)에게 …… 받았네 : 월천은 조목(1524~1606)의 호이다. 조목은 이황의 사후에 도산서원을 지키며 제자들을 지도하여 이황의 학문을 이은 고제(高弟)로 일컬어졌다. 이택(麗澤)은 사우(師友) 간에 학문을 절차탁마하여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이황이 졸한 뒤에 권우는 조목을 스승으로 섬겨 분의(分義)가 가장 깊었다.
[주-D004] 궁정(弓旌)에 응하였지만 : 예전에 임금이 사냥터에서 신하를 부를 때 사(士)는 활〔弓〕로 부르고 대부(大夫)는 정(旌)으로 불렀는데, 후에 궁정은 임금이 신하를 예를 갖추어 초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권우는 1586년(선조19) 천거로 경릉 참봉에 제수되자 부친의 권유로 출사하였는데 봉양의 편의를 위해 집경전 참봉(集慶殿參奉)으로 바꾸었다.
[주-D005] 형비(衡泌) : 학자가 은거하는 곳을 말한다. 《시경》 〈형문(衡門)〉에 “누추한 집 그 아래 쉬고 노닐 수 있으며, 졸졸 흐르는 냇물에서 굶주림을 잊고 즐길 수 있도다.〔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飢〕”라고 하였다.
[주-D006] 계숙(溪塾)에서 …… 와 : 계숙은 이계서당(伊溪書堂)을 말한다. 권우의 종택 앞에 이계재사(伊溪齋舍)가 있어 권대기(權大器)의 위패를 모셨는데 권우의 위패도 잠시 여기에 모셨다가 후에 다시 서원으로 옮긴 듯하다. 한국문집총간 187집에 수록된 이광정(李光庭)의 《눌은집(訥隱集)》 권10에 〈송소 권 선생을 이안할 때의 고유문〔松巢權先生移安時告由文〕〉이 실려 있다.
[주-D007] 세 …… 배향하였네 : 경광서원(鏡光書院)에는 배상지(裵尙志)를 주향으로 하여, 이종준(李宗準)ㆍ장흥효(張興孝)ㆍ권우가 배향되었다. 중간에 권우는 이계로 옮겨졌다가 이때 경광서원에 배향된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성애 (역)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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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鏡光書院權松巢復享奉安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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