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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권선생이안시고유문(松巢權先生移安時告由文)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1. 18. 14:23

[訥隱集] 松巢權先生移安時告由文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


文爲世師。行是後式。俎豆伊社。卽近遺馥。扼以邦禁。斯文運極。則謀移奉。奄見朔易。多士遑遑。載懼不克。睠玆鏡院。三賢攸宅。敻世遺芬。一室亦樂。烝我髦士。奉櫝齊遫。今焉啓道。敢用虔告。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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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은집(訥隱集)은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의 文集이다.
◯이광정(李光庭) 1674년(현종 15)~1756년(영조 32). 자는 천상(天祥), 호는 눌은(訥隱)이고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이현일(李玄逸), 권두경(權斗經), 권두인(權斗寅)의 문인(門人). 김성탁(金聖鐸), 권구(權榘) 등과 교유.



권우(權宇)

1552(명종 7)∼1590(선조 2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보(定甫), 호는 송소(松巢). 병절교위(秉節校尉) 권갑성(權甲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권엽(權燁)이고, 아버지는 생원 권대기(權大器)이며, 어머니는 훈도(訓導) 이제(李濟)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73년(선조 6) 생원시에 합격한 뒤 과거공부를 그만두고 성리학에 전심하여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1586년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제수되었다. 1589년 왕자(뒤의 광해군)의 사부에 제수되었으나 그 다음해에 죽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스승인 권우의 옛 은혜에 보답하고자 좌승지를 추증하고 예관(禮官)을 보내어 제사지내게 하였다. 안동의 경광서원(鏡光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송소집(松巢集)』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07016


송소선생문집(松巢先生文集) 해제

1811년(순조 11) 상주(尙州) 산양(山陽)에서 7대손 달충(達忠)에 의해서 편집‧간행되었다. 유고(遺稿) 상태로 보관되어 오던 것을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2책으로 산정(刪整)하였으며, 1799년(정조 23) 경관서원에 기궐(剞劂)을 부탁하였다. 경광서원에서는 7년에 걸쳐 1806년(순조 6)에 기궐을 마치고 인쇄된 책을 본손에게 보내주었다. 본손은 족제(族弟) 국인(國仁)과 족질(族侄) 섬(暹)에게 일을 맡겨 완성하였다. 그러나 문집간행에 있어 더 이상 경광서원의 사림(士林)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기에 상주(尙州) 산양(山陽)에서 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우산장(愚山丈)에게 질정을 구하여 교감을 마쳤으며, 달충(達忠)과 국인(國仁)이 목록과 오자(誤字)를 기록하다가 신미년 봄 완성하기 전에 국인(國仁)이 숨을 거두었다. 이에 족질인 섬(暹)과 달충(達忠)이 모든 것을 맡아 10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문집 간행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의 서문, 권말에 달충(達忠)의 발문이 있다. 卷1은 詩 175수 ‧ 부(賦) 1편 ‧ 사(辭) 1편이 실려 있으며, 卷2는 서(書) 28편만 실려 있다. 卷3은 제문(祭文) 10편 ‧ 잡저(雜著) 6편 ‧ 행장(行狀) 2편이 실려 있으며, 卷4는 부록(附錄)으로 만사(輓詞) 5수 ‧ 사제문(賜祭文) 1편 ‧ 제문(祭文) 10편 ‧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名)이 각 1편, 노림서원(魯林書院)의 봉안문(奉安文)과 상향축(常享祝)이 각 1편, 경광서원(鏡光書院)의 복향문(復享文)과 상향축(常享祝)이 각 1편, 구발(舊跋) 3편, 식(識)와 어사서첩후발(御賜書帖後跋)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유교넷. 한국국학진흥원
http://www.ugyo.net/cf/frm/ykFrm.jsp?CODE1=01&CODE2=01&CLSS=A001&B_SUJI_ID=KSAC_M_A0600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