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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회계(承政院回啓) - 이만원(李萬元)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1. 17. 18:46

승정원회계(承政院回啓)

- 이만원(李萬元)


배상지는 고려 말에 전대의 왕조에 대한 의리를 지켜서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습니다. 주서(注書) 길재와 함께 주고받은 시편이 지금까지 남아 전하고 있으니, 이 2인이 뜻을 같이하고 도로써 합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선정신 류성룡의 문집 중에서도, 배상지는 고려 왕업이 이미 다했을 때 높은 절개와 원대한 식견으로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금계리에 숨어 살면서 스스로를 백죽이라 부르며 그 뜻을 나타냈다고 했습니다. 이 한 마디의 말이 가히 정확한 논이오나 지금 그 절의가 전해지지 않음은 진실로 법전이 결여된 까닭입니다.

이종준은 성명이 이미 무오당적에 실려 있어 분명하게 참고할 수 있으니, 외로이 충정을 지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아니하였는데 고산역벽(高山驛壁)에 시를 한 수 써 붙였다가 마침내 뜻밖의 화를 입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위풍에 공경심이 일어나건만, 제현들의 원통함을 신원할 때에 홀로 은전을 입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백여 년이 지나도록 그 실상을 진달하는 이가 없어 알려지지 못했으니, 당적에 이미 드러난 자취를 살펴 마땅히 포상해야 할 줄 압니다.

장흥효는 선정신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위기의 학문을 지키고 후학들을 인도하여 성취토록 한 공이 많았으니, 곧 영남 사림의 중망을 얻은 큰 선비였으나 애석하게도 숨은 덕행과 그윽한 빛을 마침내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사림의 정서가 오랠수록 더욱 막히게 됨을 헤아려 관작을 증직하여 기상을 떨칠 수 있도록 격려함이 마땅하리라 생각됩니다.

배상지, 이종준, 장흥효 3인을 모두 포증해서 여러 선비의 오랜 소망에 부응되게 해야 하겠으나, 사우의 사액은 일 자체가 워낙 중대하여 가벼이 논하기 어려우며, 더욱이 포증에 관한 일은 은전에 관계되는 일이라 본원에서 함부로 다룰 일이 아닙니다. 그런즉 상(上)께서 재가하심이 어떠하올는지요.

우부승지 이만원이 내년 경오년에 배상지에게 병조판서, 이종준에게 부제학, 장흥효에게 지평을 증직할 것을 아룁니다.[右副承旨臣李萬元次知翌年庚午贈裵尙志兵曹判書李宗準副提學張興孝持平]

*출처: 유교넷. 한국국학진흥원. 경광서원 원문자료
http://www.ugyo.net/tu/rin/ruins.jsp?sSiteCode=ansb007&sMenuTyp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