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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광서당권문후(題鏡光書堂勸文後) -松巖(송암) 權好文(권호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1. 18. 00:02

[松巖集] 題鏡光書堂勸文後
-松巖(송암) 權好文(권호문)


蒼壁山阿古寺基,改營書舍好相期。
鳩材可是千家補,築力休令一簣虧。
嶽麓冠襟懷俊士,武夷絃誦仰賢師。
臨溪共闢藏修地,永使兒孫勉學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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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巖集] 경광서당[주-D001]권문[주-D002] 뒤에 쓰다〔題鏡光書堂勸文後〕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푸른 절벽 산모퉁이 옛날 절터에 / 蒼壁山阿古寺基
서당을 다시 짓기로 서로 기약하였네 / 改營書舍好相期
물자는 온 집에서 보태어 사용하고 / 鳩材可是千家補
집짓는 일은 마무리를 빈틈없이 하게 했네 / 築力休令一簣虧
악록[주-D003]에서 의관 갖춘 이들은 큰 선비를 생각하고 / 嶽麓冠襟懷俊士
무이[주-D004]에서 글 읽는 이들은 훌륭한 스승 우러르네 / 武夷絃誦仰賢師
시냇가에 다 함께 학문하는 장소를 열었으니 / 臨溪共闢藏修地
길이 자손들에게 학문에 힘쓸 줄 알게 하라 / 永使兒孫勉學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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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1] 경광서당(鏡光書堂) :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사천(沙川) 가에 있었던 서당이다. 1570년(선조2)에 권호문이 신내옥(辛乃沃), 남형(南衡), 권덕윤(權德潤) 등과 도모하여 지역의 선비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세웠다. 정광사(定光寺) 폐사지에 지었는데, 규모는 마루와 온돌로 된 중당(中堂)과 동서재를 갖추었다. 《松巖集 卷5 鏡光書堂記》 1662년에 경광정사(鏡光精舍)로 이름을 바꾸어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 경당 장흥효(張興孝), 송소(松巢) 권우(權宇)를 제향하였다. 정당은 숭교당(崇敎堂), 동서재는 박약재(博約齋)와 경의재(敬義齋), 누는 광영루(光影樓)였다. 1687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8년에 복설하였다.
[주-D002] 권문(勸文) : 군중들을 설득하고 깨우치는 글이다. 여기서는 경광서당을 짓기 위하여 모금할 때 지은 글로 보인다.
[주-D003] 악록(嶽麓) : 송(宋)나라 때 4대 서원 중의 하나인 악록서원(嶽麓書院)으로, 호남성(湖南省) 장사시(長沙市) 악록산(嶽麓山) 동쪽 청풍협(淸風峽) 아래에 있다. 송 태조 개보(開寶) 9년(976)에 지었고, 면적이 2만 1천㎢이다. 남송(南宋) 시대 최고의 석학 주희(朱熹)와 장식(張栻)이 중용의 뜻을 놓고 토론을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호남대학 캠퍼스로 쓰고 있다.
[주-D004] 무이(武夷) : 중국 건녕부(建寧府) 숭안현(崇安縣)에 있는 무이산(武夷山)으로, 주희(朱熹)가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지어 강학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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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집(松巖集)은 권호문(權好文)의 文集이다.
○권호문(權好文) 1532(中宗27) ~ 1587(宣祖20).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 청성산인(靑城山人)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황(李滉)의 門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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