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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광서원 묘우 상량문(鏡光書院廟宇上梁文) -권항(權沆)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1. 16. 22:44

鏡光書院廟宇上樑文 (進士權沆)


永圖後事移廟極吉於新基己多前功立祠增美於舊制遠近改睹大小同懽恭惟我三先生間世之才拔俗之表生當危劇之際砥柱屹於中流志決肥遯之秋初服返於高尙秋霜氣節能進朝著之頹風斧鑕形骸竟貽士林之長痛訓誨誠篤開後學之不開消長圖成發前聖之未發是所謂師表百世俱可以廟食一方尋舊跡於金溪刱香社於玉界揭赫赫寢廟之美有翼有儼擧秩秩籩豆之儀以享以祀庶將眞境之永保其奈事勢之難便簷階接於村籬恐麈囂之猶雜物力?於毫芥慮俎豆之或虧睠惟鏡光之爲堂實是鹿洞之故事山川明媚不啻武夷之奇觀草木蕭森何羡盧阜之勝賞里社之棟宇移建可謂舊貫之是仍精舍之齋堂苟完猶爲刱功之當省計己熟於鄕黨議亦同於儒官別一面之地頭旣不偏而不倚距數里之山頂亦非遠而非高抉千載之神慳協一時之龜兆民非勸而自力是所得於秉彛士不謀而僉同斯固出於悃愊靈風滿壑露全體於雲林瑞氣浮空動休光於泉石如松柏之茂蔚想凝定於風儀若日月之照臨思瀅白於玉色夫旣有景慕之地亦豈無感發之機岳結川融驗動靜於仁智天飛淵躍翫化育於鳶魚人材宜養於賢關聖學可底於道閫開太平之文物奚待五百年之佳期庇聖世之人民不必千萬間之廈屋載陳善頌同擧修樑抛樑東曉色分明海日通因有本心如許白肯敎麈翳到胸中抛樑西屛岳遙連鶴駕齊作聖功夫當勉力莫將明命執昏迷抛樑南淸洛深潭萬像涵若使熏風來舜殿聖功神化可相參抛樑北高高九萬人難測明河未落斗杓高認取吾心中太極抛樑上奎星燦燦人皆仰滿堂衿佩玉學得當時元氣像抛樑下源頭活水流晨夜從知逝者摠如斯進必盈科而不舍伏願上梁之後鉉歌不絶衣鉢相傳皆知向方人自邁於大道有所衿式士咸仰於高山奉香火於春秋見羹牆於陟降感承餘化聿覩正學之彬彬熏沐遺風庶見多士之濟濟

*용눌재집(慵訥齋集, 1911년) > 附錄 > 鏡光書院廟宇上樑文 (進士權沆)


◦경광서원 묘우 상량문(鏡光書院廟宇上梁文) 권항(權沆)

영구(永久)한 뒷일을 생각해서 묘우(廟宇)를 새로운 터로 옮기니 매우 길지(吉地)인 듯하구나.
전공(前功)이 많았으나 사우(祠宇)를 새롭게 세우니 옛 제도(制度)보다 미관(美觀)이 더욱 좋아라.
원근(遠近)에서 다시 볼 수 있어 대소(大小)가 다함께 기쁘구나.
우리 세 선생(三先生)께서는 여러 세대를 통하여 드문 재주요, 세속의 뛰어난 표상(表象)이다.
매우 위태한 시기(時期)에 태어나서 지주(砥柱)처럼 중류(中流)에 우뚝하였고 뜻을 욕심 없이 너그럽게 결정(決定)해서 처음 세운 뜻대로 고상하게 돌아오셨네.
가을의 찬 서리 같은 기절(氣節)은 능(能)히 조정(朝廷)의 쇠퇴한 풍속을 진작시켰으나 엄(嚴)한 형구(形具)에 몸이 어스러지니 사림(士林)이 길이 통탄하누나.
훈회(訓誨)의 성(誠) 독실(篤實)하여 후학(後學)의 깨우치지 못함을 깨우치고, 음양성쇠(陰陽盛衰)의 도(圖)를 그려 전성(前聖)이 발명(發明) 못한 바를 발명(發明)하였네.
이분들은 백세(百世)의 사표(師表)라 할 수 있으므로 모두 한마을 어른이니 한 사당(祠堂)에 모심직하도다.
금계(金溪)의 옛 자취 찾아 옥계(玉界)에 향사(香社)를 세우도다.
환하게 현판(懸板)을 걸고 제전(祭典)의 아름다움 공건하고 익연(翼然)하며 차례차례 변두(籩豆)의 의식(儀式)으로 향례(享禮)를 올리게 되었도다.
진경(眞境)을 영원토록 보존(保存)하려 하나 사세(事勢)의 형편(形便)이 어려우니 어찌할꼬.
첨계(簷階)가 촌리(村籬)와 접(接)했으니 세속의 번잡함이 뒤섞일까 두렵고, 물력(物力)이 작아져서 어느 해 제수(祭需)를 거를까 염려되는구나.
돌이켜 보건대 경광서원(鏡光書堂)이 이루어짐은 실상 녹동(鹿洞)의 고사(故事)와도 같은지라.
산천(山川)이 명미(明媚)하니 무이(武夷)의 기절(奇絶)뿐이 아니고 초목(草木)이 우거졌으니 여부(廬阜)의 숭상(勝賞)이 부러우랴.
이사(里社)의 집을 이건(移建)하니 가위(可謂) 옛 집의 모양 따왔고 정사(精舍)의 재(齋)와 당(堂)이 오히려 완전(完全)하니 창건(創建)의 공(功)을 살펴야 하리.
계획(計劃)이 향당(鄕黨)에서 충분히 논하여졌고 의논(議論)이 유궁(儒宮)에서와 같도다.
일면(一面)의 지두(地頭)에 별구(別區)로 하니 짝지거나 치우침도 없고, 몇 리의 산정(山頂)이니 거리(距離)로도 멀지 않고 높지도 아니하고나.
천 년의 신간(神慳)을 찾아냈으니 일시(一時)의 전복(占卜)도 화협(和協)되도다.
백성(百姓)들은 권(勸)하지 않아도 자력(自力)으로 하니, 이는 병이(秉彛)의 심사요, 사민(士民)은 도모(謀議)하지 않고도 다 함께 하니, 이는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남이라.
신령(神靈)한 바람이 구렁에 가득하니 운림(雲林)의 전체(全體)가 드러나고 상서(祥瑞)로운 기(氣)가 공중(空中)에 뜨니 천석(泉石)의 아름다운 빛이 움직이누나.
송백(松柏)이 울창(鬱蒼)함은 풍절(風節)과 풍의(風儀)를 추상(推想)할 듯하고 일월(日月)과도 같이 영백(瑩白)의 옥색(玉色)을 내려 비치는구나.
저기 경모(景慕)의 곳이 있으니 또한 어찌 감발(感發)의 기미가 없으랴.
산(山)에 맺은 듯 시냇물 융합(融合)하니 인지(仁智)의 동정(動靜)을 징험(徵驗)할 수 있고, 하늘에 독수리 날고 연못에는 고기가 뛰니 화육(化育)의 기상(氣像)이라.
인재(人材)는 반드시 현인(賢人)의 관문(關門)에서 길러내고 성학(聖學)은 가히 도덕(道德)의 문턱에서 이르나니, 태평(太平)의 문물(文物)을 열어감에 어찌 500년이 가기(佳期)를 기다리며 성세(聖世)의 인민(人民)을 가르침에 어찌 천만 칸의 큰 집이라야 하리요.
비로소 노래를 지어 들보를 올리노라.

抛樑東曉色分明海日通因有本心如許白肯敎麈翳到胸中
얼씨구 들보를 동(東)으로 올리니
새벽 빛 밝아 오니 바다에서 해가 뜨는 듯,
본심(本心)이 저와 같이 흰 빛으로 인(因)함이니
티끌에 가림이 없이 마음속에 이르도록 즐겨 가르치리.

抛樑西屛岳遙連鶴駕齊作聖功夫當勉力莫將明命執昏迷
얼씨구 들보를 서(西)로 올리니
병풍(屛風)처럼 높은 뫼가 멀리 학가산(鶴駕山)과 잇닿아 있구나.
성현(聖賢)의 경지(境地)를 공부(功夫)하는 데 마땅히 힘써야 하거늘
하늘에서 내린 품성(稟性) 혼미(昏迷)함을 갖지 말라.

抛樑南淸洛深潭萬像涵若使熏風來舜殿聖功神化可相參
얼씨구 들보를 남(南)으로 올리니
맑은 낙강(洛江) 깊은 소에 삼라만상(森羅萬象) 잠겼어라.
훈훈한 바람이 이르러 순(舜)임금 궁전(宮殿)으로 불게 되면,
성인(聖人)의 공(功)과 신명(神明)의 감화(感化) 서로 함께하리라.

抛樑北高高九萬人難測明河未落斗杓高認取吾心中太極
얼씨구 들보를 북(北)으로 올리니
높고 높은 구만리(九萬里) 인간(人間)은 헤아리기 어려울세.
은하수(銀河水) 떨어지지 않고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자루 높은데
내 마음에 태극성(太極星)이 자리 잡은 듯하네.

抛樑上奎星燦燦人皆仰滿堂衿佩玉學得當時元氣像
얼씨구 들보를 위로 올리니
문장성(文章星)이 반짝반짝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마루에 가득한 학생(學生)들 패옥(佩玉) 소리 쟁쟁하고
배움을 얻을 당시 원래(元來)의 기상(氣像)일세.

抛樑下源頭活水流晨夜從知逝者摠如斯進必盈科而不舍
얼씨구 들보를 아래로 올리니
강(江)머리 활발(活潑)한 물결 주야에 흐르나니,
흘러가는 것 모두가 보고서 알리니
나아감도 영과(盈科)를 해야 그만두지 못하나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상량(上樑)한 후(後)에 현송(絃誦)의 소리 끊이지 아니하고 서로 전수(傳受)하여 모두가 향방(向方)을 알매 사람은 자연(自然)히 대도(大道)로 나아가고 본보기로 삼을 곳 있으매 선비들은 고산을 우러르듯 춘추(春秋)에 향화(香火)를 받들어서 신명(神明)이 내려오심을 볼레라.
감동(感動)하고 동화(同化)되어 정학(正學)의 훌륭함을 마침내 보는 듯, 유풍(遺風)에 훈도(薰陶)되어 여러 선비가 모두 뛰어나 끊어짐이 없어라.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
http://www.toegye.ne.kr/vein/lecturehall/kyoungkwang_3.htm

*유교넷. 한국국학진흥원. 경광서원(鏡光書院) 원문자료
http://www.ugyo.net/tu/rin/ruins.jsp?sSiteCode=ansb007&sMenuTyp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