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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인공(三角山人公) 이홍진(李弘震) 찬(贊)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3. 12:13

□삼각산인공(三角山人公) 이홍진(李弘震)

○字는 언기(彦起)요, 號는 삼각산인(三角山人)이라 官은 서사참봉(筮仕參奉)인데 광해조(光海朝)때를 만나 삼각산(三角山) 조계동(曹溪洞)에 은거(隱居)하야 사문불출독서(社門不出讀書)로 소일하고 과학(科學)길에 나가지 아니하다. 인조(仁祖)께서 왕위(王位)에 오르기전(前) 상친(相親)하던 중 인조(仁祖) 개기후(改紀後)에 수차(數次) 부름을 받고서도 나가지 아니하니 세인(世人)이 삼각산은사(三角山隱士)라 칭(稱)하였다. ○墓는 해등촌(海等村) 인좌(寅坐).
○配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참의(參議) 붕(鵬)의 女. 규(圭) 1男. ○墓는 논산군(論山郡) 연산면(連山面) 덕암리(德岩里) 도고머리에 있음.
○配는 여산송씨(礪山宋氏) 현감(縣監) 시철(時哲)의 女. ○墓는 해등촌(海等村) 공묘하(公墓下) 갑좌(甲坐). *1987년 경주이씨(慶州李氏) 대종보(大宗譜)



三角山人贊(삼각산인찬)
–族孫(족손) 昌雨(창우) 撰(찬)

余嘗聞夫嚴陵兮漢光武之故人辭簪笏於諫院去畊釣於當春擧皆稱曰陳搏周世宗之處士休丹鳯於舍來被白雲於留住二子奚獨專美百世下而復睹三角山中別業筮嘉遯者其誰系月城之華胄近終南之佳處高尙志而不事山風蠱於上九 先王昔其潛邸猥枉屈而親諮洊雷肆而談經明离席而圍碁迨神龍之御天屢徵辟而不起際唐虞之朋揚慕巢許之終隱蒼葭水而伊人白駒谷而嘉賓題田君之舊宅盡魏公之幽居 天恩重於錫土加五里於十里浥花墨於 睿筆漕溪瀑布四字配喬嶽而永存邦所瞻而仰止垂一頂而作針傳萬口而爲碑願昆仍之克肖引繩繩而繼繼嗟莫狀於丹靑愧文拙而辭蕪

*慶州李氏鼎珉錄 v2 (泰炯 編輯)


●삼각산인찬(三角山人贊) 역문(譯文)
   -족손(族孫) 창우(昌雨) 찬(撰)

일찍이 들으니 엄자릉(嚴子陵)은 한광무(漢光武) 임금의 옛 친구로 벼슬을 마다하고 부춘산(當春山)에서 밭을 갈았고 진박(陳搏)은 주세종(周世宗) 때 선비로 벼슬로 사양하고 구름 아래 숨었으니 이 두 사람만 천고(千古)에 아름답다 하라. 다시 삼각산중(三角山中) 이런 분을 다시 보게 되니 그가 뉘신던고 월성이씨(月城李氏) 빛나는 자손으로 뜻을 높이 숭상하여 굽힐 줄 모르니 선왕이 옛 잠저(潛邸, 임금되기 전에 살던 집)에서 친히 오시어 문답하시고 때로는 바둑까지 두셨으니 용이 하늘에 오른 격이라. 여러 차례 불러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으니 요순(堯舜) 때 소부(巢父) 허유(許由)와 방불한지라 나라님의 은혜 토지까지 주시니 십리(十里)에서 오리(五里)를 더하였고 조계폭포(漕溪瀑布)란 네 글자는 임금님의 친필이라 산보다 더 높은 은전 세상 사람 입을 통해 전해오니 어진 자손 대를 이어 조상에 누가 되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