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 32권, 중종 13년 4월 10일 무인 3번째기사 1518년 명 정덕(正德) 13년
이종준이 쓴 고시를 써서 올리라고 전교하고, 함경도 관찰사 이승건의 죄를 묻다
○傳曰: "宗準所題古詩, 欲知之, 其書以上。" 政院啓曰: "戊午十一月, 前義城縣令李宗準, 配富寧, 行至端川 磨谷驛, 書宋 李師中詩于壁上云: ‘孤忠自許衆不與, 獨立敢言人所難。 去國一身輕似葉, 高名千載重於山。 竝遊英俊顔何厚, 未死姦諛骨已寒。 天爲吾皇扶社稷, 肯敎夫子不生還。’ 咸鏡道觀察使李承健, 令端川郡守, 囚鞫宗準, 遂馳啓曰: ‘李宗準與茂豐正 摠同行, 寫詩於壁。 宗準以宗直門徒, 坐罪付處, 猶不懲戒, 假托古詩, 以寓己意, 不可不問。 若自知其罪, 隱諱其情, 刑問何如?’" 傳曰: "李宗準及茂豐正六父子, 死於戊午年事, 予聞其言, 而未知其由也, 其至此極乎! 此詩乃古人所作。 雖非古詩, 而宗準自詠, 亦爲社稷之至意, 極爲嘉美, 有何罪惡? 承健之無狀不可勝道。 其罪則當問大臣而處之。"
전교하기를,
"종준(宗準)이 쓴 고시(古詩)를 알고 싶으니, 써서 올리게 하라."
하니, 정원(政院)이 아뢰기를,
"무오년 11월에 전 의성 현령(義城縣令) 이종준이 부령으로 귀양갈 때, 단천(端川) 마곡역(麻谷驛)에 도착하여 송(宋)나라 이사중(李師中)의 시(詩)를 벽에 써서 걸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孤忠自許衆不與]
외로운 충절을 자임하지만 뭇사람이 따르지 않으니
[獨立敢言人所難]
홀로 나서서 과감히 말하기는 어렵다
[去國一身輕似葉]
고국을 떠나는 이내몸 낙엽처럼 가벼우나
[高名千載重於山]
높은 이름은 천년토록 태산보다 중하리
[竝遊英俊顔何厚]
같이 놀던 영준들아 어찌 그리 얼굴이 두터우냐
[未死姦諛骨已寒]
죽지 않은 간신배들아 모골이 서늘하리라
[天爲吾皇扶社稷]
하늘이 우리 황제 위해 사직을 부지케 할진대
[肯敎夫子不生還]
임으로 하여금 살아 돌아오지 못하게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함경도 관찰사 이승건은 단천 군수(端川郡守)로 하여금 종준을 수국(囚鞫)하게 하고, 이어 치계(馳啓)하기를 ‘이종준이 무풍정(茂豊正) 총(摠)과 동행하며 벽에다 시를 써 붙였습니다. 종준은 김종직(金宗直)의 문도(門徒)로 좌죄(坐罪)되어 부처(付處)059) 되었는데도, 오히려 경계하는 마음이 없이 고시(古詩)를 가탁하여 자신의 뜻을 펴니, 문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자신이 그 죄를 알면서 그 실정을 숨겼다면 형문(刑問)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종준과 무풍정의 6부자가 무오년에 죽은 사실을 내가 듣기는 하였으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는데, 그와 같이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이 시는 고인의 소작이다. 비록 고시가 아니고 종준의 자작이라 하더라도 사직을 위하는 지극한 심정으로 극히 훌륭한 것인데 무슨 죄악이 있단 말인가. 승건의 무상(無狀)한 처사는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그 죄는 대신에게 물어 처단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50장 B면 【국편영인본】 15책 418면
【분류】 어문학-문학(文學) / 사법-탄핵(彈劾)
[註 059] 부처(付處) : 유형(流刑)에 준하는 형벌. 바닷가나 황무지 같은 살기 어려운 곳에 보내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나 한 가족이 모여 살 수는 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304010_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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