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二)/양평공◇이양생

[성종실록] 계성군 이양생의 졸기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1. 13:14
성종실록 215권, 성종 19년 4월 8일 신축 2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계성군 이양생의 졸기


雞城君 李陽生卒。 賜祭、禮葬如例。 陽生, 慶州人, 郡守從直妾子。 初屬壯勇衛, 李施愛之亂, 以卒伍從征有功, 賜精忠敵愾功臣之號。 累遷至嘉善, 封雞城君。 至是卒, 年六十六。 諡襄平, 因事有功 ‘襄’, 治而無眚 ‘平’。 無子, 以嫡兄吉祥之子爲嗣。


계성군(雞城君) 이양생(李陽生)이 졸(卒)하니, 사제(賜祭)와 예장(禮葬)을 예(例)와 같이 하였다. 이양생은 경주인(慶州人)으로, 군수(郡守) 이종직(李從直)의 첩(妾)의 아들이다. 처음에 장용위(壯勇衛)에 속(屬)하였는데,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에 졸오(卒伍)372) 로서 종정(從征)하여 공(功)이 있었으므로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의 호(號)를 하사받았다. 여러 번 옮겨 가선 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으며, 계성군(雞城君)에 봉해졌다.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66세이다. 양평(襄平)이라고 시호(諡號)하니, 일로 인하여 공(功)이 있는 것을 양(襄)이라 하고 다스려서 잘못이 없는 것을 평(平)이라 한다. 아들이 없고, 적형(嫡兄)인 이길상(李吉祥)의 아들 이오(李晤)로써 후사(後嗣)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33책 215권 4장 B면 【국편영인본】 11책 324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가족-가족(家族) / 신분(身分)

[註 372] 졸오(卒伍) : 병졸(兵卒)들의 대오(隊伍).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904008_002



* [참고] 경주이씨 대종보(慶州李氏 大宗譜)에는
계성군(雞城君) 이양생(李陽生)의 子는
호조판서(戶曹判書) 계선군(鷄善君) 이태악(李泰岳), 이금동(李金東)으로 기록(記錄)되어있다.

『아들이 없고, 적형(嫡兄)인 이길상(李吉祥)의 아들 이오(李晤)로써 후사(後嗣)를 삼았다.』는
기록은 대종보에 나와있지 않다.




경주이씨 월성군후 계천군파(慶州李氏 月城君後 鷄川君派) 계통도(系統圖)


25世 종직(從直)──양직(陽直)──승직(繩直)
        계천군파         판서공파        대사헌공파
       (鷄川君派)      (判書公派)      (大司憲公派)
        │
        │
26世 길상(吉祥)─양생(陽生)
        │               │
        │              태악(泰岳)─금동(金東)(27)
        │               │               │
        │               │             일복(日復) (28)
        │               │
        │             숙(橚) (28)
        │
        │
27世 담(聃)─영(聆)─오(䎸)
                    │         │
                    │       사종(嗣宗) (28)
                    │
28世            세양(世良)─세웅(世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