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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공 3세손 삼은공 이민각] 三隱公遺訓(삼은공유훈)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6. 22:47

□용재공(慵齋公) 3세손 삼은공(三隱公) 이민각(李民覺)

 

【계대(系代)】 ②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 1世孫 系子 천유당공(天有堂公) 덕연(德淵) → 2世孫 ②금애공(琴厓公) 윤검(胤儉) → 3世孫 삼은공(三隱公) 민각(民覺)

 

 

三隱公遺訓(삼은공유훈)
-民覺(민각) 自訓(자훈)

 

公諱民覺字子先參奉公孫也卜居于咸昌別卜自號三隱晩年手書遺訓誡子孫曰余年滿六十一病支離命在朝暮言念先祖不覺涕零惟我曾祖考慵齋公戊午被禍之後王考參奉公以猶子承嗣則位田墓碣卽當自吾家經營而家業零替迄三世未就可勝痛哉余以禍家餘生僑寓於別卜山中性本迂拙自不能營立爲先之事爲我從弟者亦漂泊江左靡有定居豈有來頭之望乎檢堤山下有至親數三家而苟非主祀之人則亦不可委任先塋爲我子孫者無曰先父兄未遑之事而區畵奉先之道則余雖死而不死矣乾井葛田親山各在遠地而未有位田亦爲雲仍者之遺憂矣吾家淸寒爲世業而詩禮文章則不絶汝等無以貧寒爲患勉修學業勿墜家聲居家則以孝友慈三字爲符爲處世則以忠恕信敬四字爲箴

 


●삼은공유훈(三隱公遺訓) 역문(譯文)
-민각(民覺) 자훈(自訓)

 

공의 휘는 민각(民覺)이요, 자는 자선(子先)이니 참봉공(參奉公) 손자(孫子)라. 함창별복(咸昌別卜)에 살면서 스스로 호를 삼은(三隱)이라 하다. 만년에 손수 유훈(遺訓)을 써서 자손을 경계하여 가로대 내 나이 61이 됐고 병은 길게 끌어 목숨이 조석(朝夕)에 있으니 선조(先祖) 일을 생각하니 눈물이 흐르는 것을 깨닫지 못하도다.
나의 중조고(曾祖考) 용재선생(慵齋先生)이 무오년(戊午年) 화(禍)를 입은 뒤로 조부(祖父) 참봉공(參奉公)이 조카로서 입양(入養)했으니 위토(位土)와 묘전비(墓前碑)는 마땅히 우리 집에서 경영할 것이나 집 형편이 영체(零替)하여 3대를 내려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통탄할 일이로다. 내가 화를 당한 집 여생으로 별복산중(別卜山中)에 숨어 사니 성질이 본래 우졸(迂拙)해서 위선사업(爲先事業)을 경영하지 못했고 나의 종제(從弟)되는 사람도 또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사니 어찌 앞날에 희망을 가지랴. 금계산(金溪山) 아래 지친 두셋 집이 살고 있으나 주사(主祀)할 사람이 아니니 또한 선영(先塋)을 위임(委任)할 수 없으니 나의 자손된 자(者) 선대(先代)에서 못한 일이라. 탓하지 말고 봉선(奉先)할 도리를 계획하면 내 비록 죽는 다 해도 죽음이 아니리라.
건정(乾井)과 갈전(葛田) 친산(親山)은 각각 먼 곳에 있고 위전(位田)이 없으니 자손된 자의 걱정이라. 우리 집은 청백(淸白)하고 빈한(貧寒)한 것이 세업(世業)이고 시례(詩禮)와 문장(文章)이 끊기지 않았으니 너희들은 가난함을 근심하지 말고 학업에 힘을 써서 가성(家聲)을 떨어뜨리지 말며 집에 있을 때는 효도하고 우애하며 사랑의 세 가지 효(孝)·우(友)·자(慈)로 가훈(家訓)을 하고 세상에 나가서는 충성하고 용서하며 신의 있고 공경의 네 글자 충(忠)·서(恕)·신(信)·경(敬)을 명(銘)으로 삼을지니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