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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공 5세손 노주공 이순] 通政大夫鷺洲月城李公墓碣銘(통정대부노주월성이공묘갈명) 幷序(병서)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6. 16:25

□용재공(慵齋公) 5세손 노주공(鷺洲公) 이순(李王+享)

 

【계대(系代)】 ②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 1世孫 系子 천유당공(天有堂公) 덕연(德淵) → 2世孫 ①참봉공(參奉公) 윤공(胤恭) → 3世孫 ③묵우헌공(黙愚軒公) 찬(燦) → 4世孫 ①소묵재공(小黙齋公) 귀실(貴實) → 5世孫 ②노주공(鷺洲公) 순(王+享)

 

 

通政大夫鷺洲月城李公墓碣銘 幷序
(통정대부노주월성이공묘갈명 병서)
-延安(연안) 金晉秀(김진수) 撰(찬)

 

故通政鷺洲李公之藏在永嘉之西啼鳳山枕艮原墓前舊碣歲久剝沏字書漫漶後孫諸氏常爲之憂而合謀伐石以表顯刻之計使族人濟雄濟特濬龍三君賣世寶一冊來余示請銘詩顧以耄廢不諓惡能當是役以事係爲先要請甚勤義不可以固拒者按公諱字鳳昊李氏貫慶州鷺洲其號也以新羅佐命功臣諱謁平爲肇祖在麗世襲冠冕有諱之秀金紫光祿大夫月城君生諱揆四宰諡貞烈生諱元林判司僕寺事生諱蔓實入我 朝吏曹判書生諱繩直大司憲慶尙道觀察使以淸白見重於朝生諱時敏擢生進兩試號琴湖以淸望名朝於世生諱宗準弘文校理贈副提學以畢門高弟被戊午禍世稱慵齋先生享鏡光書院栢麓社無嗣以弟訓導諱公準子諱德淵嗣之參奉於公爲高祖曾祖諱胤恭參奉祖諱燦壽職嘉善號黙愚軒修學篤行考諱貴實壽通政妣淑夫人安東金氏儉女公以萬曆丁酉生壽通政顯廟癸亥卒享年八十七配安東權氏銀根女墓與公上下封有一男氣得壽嘉善嘉善男遄通政通政男漢杰男時茂餘不錄於乎公之世旣遠矣且經㥘禍餘地雲仍分散文蹟蕩佚當時訥齋先生己有憂歎矧乎藐末蔑識何據而稱述公事行也哉然窃想念公之家絶意世道良有以也而天之所施於仁者必壽之理授公上下連五世而有優老典此實天爵世然來世也是略次而爲之銘銘曰
彝德所在天人共惜甞懲禍綱深藏遐僻不賢于世天胡不爵昭昭覆鑑降地彝澤五世壽秩幾稀今昔黃冠緋玉連綿輝赫爰推厥由仁善可想節彼啼鳳雙釼上下秋珉石遺芳表暢

 


●통정대부노주월성이공묘갈명 병서 역문
(通政大夫鷺洲月城李公墓碣銘 幷序 譯文)
-연안(延安) 김진수(金晉秀) 찬(撰)

 

옛 통정(通政) 노주(鷺洲) 이공(李公)의 묘소가 영가(永嘉, 안동安東) 서쪽 제봉산(啼鳳山) 언덕 간좌(艮坐) 자리에 있다. 묘 앞에 옛날 세운 비석이 세월이 오래됨에 글자가 헤어지니 후손들이 항상 근심하던 나머지 다시 세우기로 합의하고 족인(族人) 제웅(濟雄)·제특(濟特)·준룡(濬龍) 세 사람이 세보(世譜) 한 권을 가지고 나에게 와서 비에 새길 명시(銘詩)를 청하거늘 돌아보건대 나와 같은 늙은 폐물이 어찌 이일을 감당하리오마는 이일이 위선 사업이고 또 청함이 너무 간절하여 의리상 너무 사양할 수만도 없어 쓰노니 공의 휘는 순()이고 자는 봉호(鳳昊)며 경주이씨(慶州李氏)고 노주(鷺洲)는 그 호다.
신라(新羅) 좌명공신(佐命功臣) 휘 알평(謁平)으로 시조(始祖)를 삼고 고려 때 대로 벼슬이 계승되어 휘 지수(之秀)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월성군(月城君)이고 휘 규(揆)를 낳으니 사재(四宰)에 시호(諡號)는 정렬(貞烈)이며 이 분이 휘 원림(元林)을 낳으니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요, 이 분이 휘 만실(蔓實)을 낳으니 아조(我朝, 조선朝鮮)에서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냈고 휘 승직(繩直)을 출생하니 대사헌(大司憲)에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지냈으니 청백(淸白)함으로 조정에서 중용되었고 휘 시민(時敏)을 출생하니 생원진사(生員進士) 양시(兩試)에 합격하고 호는 금호(琴溪)이고 당시 청백(淸白)하고 명망(名望)이 높았다.
휘 종준(宗準)을 출생하니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에 부제학(副提學)을 받았으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문인(門人)으로 무오사화(戊午史禍, 1498)를 입었으니 세상이 용재선생(慵齋先生)이라 부른다. 경광서원(鏡光書院)·백록리사(栢麓里社)에 배향되었으나 아들이 없어서 동생 훈도공(訓導公) 휘 공준(公準)의 아들 휘 덕연(德淵)으로 을 양자(養子)를 하니 덕연(德淵)은 참봉(參奉)이다. 공에게는 고조가 되고 증조의 휘는 윤공(胤恭)이니 참봉(參奉)이고 조의 휘는 찬(燦)이니 수직가선(壽職嘉善)에 호는 묵우헌(黙愚軒)이니 학문을 닦고 행검을 돈독히 하다. 고의 휘는 귀실(貴實)이니 수직통정(壽職通政)이고 비(妣)는 숙부인(淑夫人) 안동김씨(安東金氏) 검(儉)의 따님이다.
공이 만력(萬曆) 정유년(丁酉年, 1597년)에 출생하여 수직통정(壽職通政)으로 현묘(顯廟) 계해년(癸亥年, 1683년)에 별세하니 향년(享年)이 87세라. 배(配)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은근(銀根)의 따님이니 묘소는 공의 묘소와 상하분(上下墳)이다. 1남이 있으니 기득(氣得)이니 가선(嘉善)이요, 기득(嘉善) 아들에 천(遄)이니 통정(通政)이고 천(遄)의 아들에 한걸(漢杰)이요, 한걸(漢杰) 아들에 시무(時茂)니 나머지 자손은 다 수록못한다.
슬프다, 공의 살던 세상은 멀고 또 화(禍)를 겪은 나머지라 자손은 흩어지고 문적(文蹟)이 없어지니 당시 눌재선생(訥齋先生)이 이미 탄식한 바 있으니 하물며 나 같은 천식(淺識)이 어찌 감히 공의 일을 쓰리오마는 생각건대 공의 집이 세상과 인연을 끊는 것은 있음 직하나 하늘이 어진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반듯이 수명을 길이 주나니 5대를 연속해서 상수(上壽)를 하고 수직(壽職)을 받으니 이는 하늘이 줌이라. 후세를 위하여 간략하게 쓰고 이어서 명(銘)을 지으니 명(銘)에 가로대 떳떳한 덕(德)이 있는 바에는 하늘과 사람이 함께 아끼느니 일진 화액(禍厄)에 놀란 터라 멀고 궁벽한 곳에 자취를 갈무렸도다.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니 하늘이 어찌 무심하랴. 거울같이 밝게 보시고 은택(恩澤)이 내리셨도다. 5대를 연속 수직(壽職)을 받으니 고금에 드문 일이라. 누런 갓과 붉은 옥띠는 빛이 찬란하도다. 그 유래를 미루어보니 어질고 착함을 가히 알리로다. 저 제봉산(啼鳳山)에는 상하분(上下墳)이 뚜렷하네. 천추(千秋)에 전할 이 비석은 꽃다운 이름 오래 전하리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