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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공 14세손 추담공 이재적] 秋潭處士月城李公墓碣銘(추담처사월성이공묘갈명) 幷序(병서)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5. 23:42

□용재공(慵齋公) 14세손 추담공(秋潭公) 이재적(李在積)

 

【계대(系代)】 ②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 1世孫 系子 천유당공(天有堂公) 덕연(德淵) → 2世孫 ①참봉공(參奉公) 윤공(胤恭) → 3世孫 ③묵우헌공(黙愚軒公) 찬(燦) → 4世孫 ①소묵재공(小黙齋公) 귀실(貴實) → 5世孫 ①중추부사공(中樞府事公) 서(瑞) → 6世孫 ②행포공(杏圃公) 립(立) → 7世孫 ②해송(海松) → 8世孫 통훈공(通訓公) 영종(榮種) → 9世孫 ②운재공(雲齋公) 시만(時萬) → 10世孫 ②갈운공(葛雲公) 동규(東圭) → 11世孫 ④갈헌공(葛軒公) 치준(致俊) → 12世孫 ①상하(相夏) → 13世孫 系子 모와공(慕窩公) 교형(敎炯) → 14世孫 ②추담공(秋潭公) 재적(在積)

 

 

秋潭處士月城李公墓碣銘 幷序
(추담처사월성이공묘갈명 병서)
-三從曾孫(삼종증손) 仁根(인근) 撰(찬)

 

維我三從曾大夫處士公幽宅在安東豊川面漁潭密加嶝子坐之原而未遑竪碣今其三胤東鎬氏長孫濟元甫惕焉謨伐石表阡而責銘於仁根愚駭淺劣鳥敢當其役然公之謝世不過四十餘載則公之善行美蹟小子耳之目之者多矣敢撮其大者而撰述如左或無誄長阿好之誅耶公諱在積字敬倉號秋潭姓李氏系出慶州以新羅佐命大臣諱謁平爲始祖自後冠冕世襲麗季有諱之秀金紫光祿大夫封月城君是生諱揆官四宰諡貞烈生諱元林判司僕寺事生諱蔓實吏曹判書生諱繩直大司憲以淸白見重生諱時敏俱中生進號琴湖以文章有重望始居永嘉之琴溪村生諱宗準選湖堂官至舍人以佔畢齋門人被戊午禍後贈副提學世稱慵齋先生於公十四代祖高祖諱東圭判官曾祖諱致俊祖諱相夏考諱敎炯俱有德行妣義城金氏鎭澤女高宗癸酉生公于府西河臨里第公天資重厚氣像英俊及長受學于大人公文藝漸就不幸伯公早卒家因零贊奉親之道糊口之策極難遂率大小家眷搬移于豊川之漁潭爲生計故也僅借得數畝桑麻技術營農不休不眠勤儉作業是爲做效能拔貧成饒孝是公之天性奉祀養親各盡其誠諱日臨迫則前三日齊戒不啖酒肉每侍親側灑掃應對奉供甘旨無違無闕志体俱養持身雖儉接賓以豊少時休驗貧困故救貧恤困甚多常恨因貧失學故敎育子孫獎進後學消費全力多有成就積德之家必有餘慶公沒之後子葉孫枝郁郁蕃衍俊秀榮達昌熾門戶方覺天報有驗小子之筆萬不記一晩年與茆山李在湜惺齋李裕泰扐堂李會穆左溪柳時若諸公契好尤善逐日相從吟風詠月優游自適樂我泉石遯世逸民辛巳六月二十二日考終于寢配慶州崔氏永柱女辛巳生甲辰卒墓同原子坐系配龍宮全氏永旭女辛卯生己亥十二月十三日卒生五男二女長豊鎬次尙鎬東鎬卓鎬泰鎬女適南明煥權五祥豊鎬男濟元常鎬男濟龍女適河大暝東鎬男濟博濟弘濟蒼女適李泰沃李圭根卓鎬男濟英濟日濟植泰鎬男濟億女適朴哲秀以下不盡收錄 銘曰
考且友兮盡心率性淸德所積天必錫慶耳目所逮鐫石爲證

 


●추담처사월성이공묘갈명 병서 역문
(秋潭處士月城李公墓碣銘 幷序 譯文)
-삼종증손(三從曾孫) 인근(仁根) 찬(撰)

 

오직 나의 삼종증대부(三從曾大夫) 처사공(處士公) 묘소가 안동(安東) 풍천면(豊川面) 어담밀가등(漁潭密加嶝) 자좌(子坐) 언덕에 있으나 미처 비(碑)를 못 세웠으니 공의 셋째아들 동호(東鎬) 씨와 장손(長孫) 제원(濟元)이 죄송히 여겨 장차 돌을 다듬어 묘의(墓儀)를 갖출새 명문(銘文)을 인근(仁根)에 꾸짖으니 어리석고 어린 것이 어찌 감히 이일을 감당하리오마는 공이 별세한 지가 40년에 불과하니 공의 착한 행적(行蹟)과 아름답던 자취를 소자(小子)가 보고 들음이 많은지라 그 중에도 큰 것만 골라 아래와 같이 쓰니 혹 어른을 기리고 착한 바에 아첨했다는 꾸지람이나 없을는지 공의 휘는 재적(在積)이요, 자(字)는 경창(敬倉)이며 호(號)는 추담(秋潭)이고 성은 이씨(李氏)니 관향(貫鄕)은 경주(慶州)다.
신라(新羅) 좌명대신(佐命大臣) 휘 알평(謁平)이 시조(始祖)가 되고 뒤로 벼슬이 계승되어 고려말에 휘 지수(之秀)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월성군(月城君)에 봉(封)해졌고 휘 규(揆)를 낳으니 벼슬이 사재(四宰)에 시호(諡號)는 정렬(貞烈)이며 휘 원림(元林)을 낳으니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요, 휘 만실(蔓實)을 낳으니 이조판서(吏曹判書)며 휘 승직(繩直)을 낳으니 대사헌(大司憲)인데 청백(淸白)으로 중망(重望)이 있었으며 휘 시민(時敏)을 낳으니 생원진사(生員進士)에 합격하고 호를 금호(琴湖)라 하니 문장(文章)으로 중망(重望)이 있었으며 처음으로 안동(安東) 금계(琴溪)마을에 살았고 휘 종준(宗準)을 낳으니 호당(湖堂)에 뽑혔고 사인(舍人)에 이르렀다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문인(門人)으로 무오사화(戊午史禍. 1498)를 입은 뒤 부제학(副提學)을 받으니 세상에서 용재선생(慵齋先生)이라 부른다. 공에게는 14대조가 된다. 고조의 휘는 동규(東圭)니 판관(判官)이요, 증조의 휘는 치준(致俊)이며 조의 휘는 상하(相夏)고 부친 휘는 교형(敎炯)이니 모두 덕행(德行)이 있었다. 모친은 의성김씨(義城金氏)니 진택(鎭澤)의 따님이다.
고종(高宗) 계유(癸酉, 1873)에 안동(安東) 하임리(河臨里)에서 공이 나다. 공은 천품(天稟)이 무겁고 기상(氣像)이 영특(英特)하더니 크면서 글을 대인공(大人公, 부친)에 배우니 학문(學文)이 날로 진취하더니 불행하게 백씨공(伯氏公)이 일찍 세상을 뜨고 집안이 가난하여 봉친(奉親) 하는 길과 먹고사는 계책마저 어려워서 가권(家眷)을 데리고 풍천어담(豊川漁潭)으로 옮겨가니 생계를 위함이라. 겨우 몇 마지기 전장(田莊)을 구해 기술적으로 농사를 경영할새. 쉬지도 자지도 않고 부지런히 일한 결과로 가난을 이기고 풍요한 가정이 되었다. 천성이 효성을 타고난지라 제사를 받들고 어버이를 섬기는데 능히 그 정성을 다해서 제삿날이 다가오면 3일 전에 재계하여 술과 고기를 입에 넣지 않았고 매양 어버이 곁을 모시고 있어 쇄소응대(灑掃應對)1) 와 음식지절(飮食之節)2) 을 어김도 없었고 빠지는 일도 없어 마음과 몸을 함께 봉양했으며 내 몸가짐이 비록 검소하나 빈객(賓客)을 대접함은 항상 풍족하게 했고 젊을 때부터 가난한 설움을 체험하였기로 남의 가난과 곤란을 구휼(救恤)함이 많았으며 가난으로 인해 학문을 마음껏 배우지 못함을 한탄하여 자녀교육과 남의 후진 교육을 위하여 전력을 기울여서 자타 간에 성취함이 많아 남에게 찬성도 많이 받았다. 적선(積善)한 집에 남은 경사가 있다 하더니 공이 별세 뒤에 아들 손자가 번성하고 다들 준수하고 영달하여 문호(門戶)를 빛내게 되니 하늘의 보복 영험이 있음을 알 지라. 소자(小子)의 글 씀이 만분의 일도 기록 못 한다.
만년(晩年)에 묘산(茆山) 이재식(李在湜), 성재(惺齋) 이유태(李裕泰), 늑당(扐堂) 이회목(李會穆), 좌계(左溪) 류시약(柳時若) 제공(諸公)과 사귐이 더욱 두터워 축일상종(逐日相從)3) 하여 달 아래서 읊고 바람에 희롱하며 마음에 맞도록 넉넉히 놀아 나의 천석(泉石)을 즐기니 세상에 숨은 편한 백성이더니 신사(辛巳. 1941) 6월 22일 정침(正寢)에서 세상을 뜨시다.
배(配)는 경주최씨(慶州崔氏) 영주(永柱)의 따님이니 신사(辛巳)에 나고 갑진(甲辰, 1904) 4월 5일에 졸하니 묘소는 같은 언덕 자좌(子坐)이고 다음 배[繼配]는 용궁전씨(龍宮全氏) 영욱(永旭)의 따님이니 신묘(辛卯, 1891)에 출생하고 기해(己亥, 1959) 12월 13일에 졸하니 묘소는 동원 간좌(艮坐)다. 5남 2녀를 낳으니 장남에 풍호(豊鎬)고 다음이 상호(尙鎬)·동호(東鎬)·탁호(卓鎬)·태호(泰鎬)이고 두 따님은 남명환(南明煥)·권오상(權五祥)에 출가했고 풍호(豊鎬) 아들이 제원(濟元), 상호(尙鎬) 아들에 제용(濟龍), 딸은 하대명(河大暝)에 출가했으며 동호(東鎬) 아들에 제박(濟博)·제홍(濟弘)·제창(濟蒼)이고 딸은 이태옥(李泰沃)·이규근(李圭根)에 출가했고 탁호(卓鎬) 아들에 제영(濟英)·제일(濟日)·제식(濟植)이며 태호(泰鎬) 아들에 제억(濟億)이고 딸은 박철수(朴哲秀)에게 출가했다. 새겨 가로대
효도(孝道)하고 또 우애(友愛)하니 마음을 다하여 성품(性稟)을 따랐고 맑은 덕(德)을 쌓은 곳에 하늘이 반드시 경사를 주었도다. 보고 들은 것을 돌에 새겨 후일에 증거로 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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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쇄소응대(灑掃應對) : 물을 뿌려 쓸고 응대한다는 뜻으로, 집 안팎을 깨끗이 거두고 웃어른의 부름이나 물음에 응하여 상대함을 이르는 말.
2) 음식지절(飮食之節) : 소학(小學) 경신(敬信)에 음식을 먹을 때 지켜야 하는 예(禮).
3) 축일상종(逐日相從) : 날마다 서로 어울려 놂.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