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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공 11세손 송운공 이용준] 贈通政大夫府君墓碣銘(증통정대부부군묘갈명) 幷序(병서)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5. 22:38

□용재공(慵齋公) 11세손 송운공(松雲公) 이용준(李龍俊)

 

【계대(系代)】 ②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 1世孫 系子 천유당공(天有堂公) 덕연(德淵) → 2世孫 ①참봉공(參奉公) 윤공(胤恭) → 3世孫 ③묵우헌공(黙愚軒公) 찬(燦) → 4世孫 ①소묵재공(小黙齋公) 귀실(貴實) → 5世孫 ①중추부사공(中樞府事公) 서(瑞) → 6世孫 ②행포공(杏圃公) 립(立) → 7世孫 ②해송(海松) → 8世孫 통훈공(通訓公) 영종(榮種) → 9世孫 ②운재공(雲齋公) 시만(時萬) → 10世孫 ②갈운공(葛雲公) 동규(東圭) → 11世孫 ①송운공(松雲公) 용준(龍俊)

 

 

贈通政大夫府君墓碣銘 幷序
(증통정대부부군묘갈명 병서)
-六代孫(육대손) 仁根(인근) 撰(찬)

 

府君諱龍俊字得珠號松雲姓李氏貫慶州新羅佐命功臣謁平爲始祖累傳至諱居明蘇判公爲鼻祖又傳至麗朝月城君金紫光祿大夫封月城君諱之秀爲中祖入我朝翰林 贈贈副提學慵齋先生爲顯祖有諱立字國礎號杏圃通政諱海松諱榮種諱時萬諱東圭字信可號葛雲大邱判官其高曾祖考安東金氏聖昌女其妣也正廟甲辰府君生光武乙丑十月十五日卒葬于北後庚向之原後以族丈橘山相公李裕元薦 贈通政大夫府君天稟英秀才德超倫有長者風鄕黨莫不期需世器而早謝䆠路晦跡鄕里謨耕勸學爲家計孝友敦睦爲門規逍遙自適有山林泉石之勝耕雲釣月之趣潛心究學奬進後裔應有過人者而家運孔否府君下世之後家計零滯文籍蕩然子孫流離四方以來百餘年之間雖未闕春秋香火之奠一片貞珉未遑竪立歲伐年秋省掃之日宣鎬成鎬濟鮮濟角諸氏發議竪碣之事遂終合門中贊意計遂確定命余以顯刻之文愚駭不侫不敢當其任其爲子孫之道難敢固辭欲蒐集遺跡而蕩迭無憑只依平日於父祖傳聞者而略叙數行如右焉配淑人公州李氏澤根女男曰相赫相泰相啓相純相赫男德炯女適晉州姜鍾縉沃川全秀德相泰男鳳炯麟炯定炯女適安東權浩善晉州姜時範義城金道翰相啓男璧炯道炯女適冶城宋相觀丹陽張周顯驪興閔東鎬相純男文炯以下不盡收錄銘曰
否泰有數晦明在時孝友德行今玆略叙一片貞珉百世不朽嗟爾後裔觀感興起

 


●증통정대부부군묘갈명 병서 역문
(贈通政大夫府君墓碣銘 幷序 譯文)
-육대손(六代孫) 인근(仁根) 찬(撰)

 

부군(府君)의 휘는 용준(龍俊)이요, 자는 득주(得珠)며 호는 송운(松雲)이고 성은 경주이씨(慶州李氏)니 신라(新羅) 좌명공신(佐命功臣) 휘 알평(謁平)을 시조(始祖)1) 로 차차 전하여 신라말 소판공(蘇判公) 거명(居明)이 비조(鼻祖2) , 중시조中始祖3) 임)가 되며 고려조(高麗朝)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월성군(月城君) 휘 지수(之秀)가 중시조(中始祖, 분파조分派祖)가 되며 아조(我朝, 조선朝鮮)에 들어와서 사인(舍人) 한림(翰林) 증(贈) 부제학(副提學) 용재선생(慵齋先生)이 현조(顯祖)가 된다. 휘 입(立) 자는 국초(國礎)요, 호는 행포(杏圃) 증통정(贈通政)의 5대조이고 휘 해송(海松)·휘 영종(榮種)·휘 시만(時萬)·휘 동규(東圭) 자는 신가(信可) 호는 갈운(葛雲)이며 대구판관(大邱判官)이 고조·증조·조부·부친이 되고 안동김씨(安東金氏) 성창(聖昌)의 따님이 모친으로 정묘(正廟) 갑진(甲辰)에 부군(府君)이 나셨고 광무(光武) 을축(乙丑) 10월 15일에 별세하시니 북후면(北後面) 랑실(浪實) 경향(庚向)의 언덕에 안장했다. 뒤에 영의정(領議政)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씨 추천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벼슬에 추증된다.
부군(府君)은 천품(天稟)이 영걸(英傑)하시고 재덕(才德)을 겸비하여 군자(君子)의 풍채를 갖추니 향당(鄕黨)을 입을 모아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 일컬으나 부군(府君)은 일찍부터 벼슬길에는 뜻이 없어 향리(鄕里)에 묻혀서 글 읽기와 밭 가는 것으로 가계(家計)를 삼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동기간에 우애하며 친척 간에 화목함을 문규(門規)로 삼아 산수의 경치와 풍월을 즐기시고 학문을 연구하여 후진(後進)을 가르치심이 보통에 지남이 있었건만 가운(家運)이 비색(否塞)하여 부군(府君) 별세 후로 화액(禍厄)이 겹쳐 문적(文籍)은 유실되고 자손은 사방으로 흩어져 산 지 백여 년간에 비록 춘추향화(春秋香火)는 끊이지 않았으나 한 폭 비석도 세우지 못하였더니 1980년 가을 묘사(墓祀) 때 선호(宣鎬)·성호(成鎬)·제선(濟鮮)·제각(濟角) 등 문부로 여러분이 비(碑)를 세울 공론을 제의하여 문중(門中) 찬의(贊意)를 얻고 계획이 확정되니 인근(仁根)에게 비명(碑銘) 지을 것을 명령하여 어리석고 연천한 것이 그 소임에 감당할 수 없음을 아나 자손(子孫)된 도리로 사양할 수 없어 유적(遺跡)을 수집하고 전일 부조(父祖)께 들은 바를 참고로 대략만 기록한다.
배(配)는 숙인(淑人) 공주이씨(公州李氏)니 택근(澤根)의 따님이요, 아들 4형제를 두었다. 상혁(相赫)·상태(相泰)·상계(相啓)·상순(相純)이요, 손자에 덕형(德炯)과 손녀는 진주(晉州) 강종진(姜鍾縉)·옥천(沃川) 전수덕(全秀德)에 출가하니 상혁(相赫)의 소생(所生)이요, 봉형(鳳炯)·인형(麟炯)·정형(定炯)과 안동(安東) 권호선(權浩善)·진주(晉州) 강시범(姜時範)·의성(義城) 김도한(金道翰)에 출가한 손녀는 상태(相泰)의 소생(所生)이며 벽형(璧炯)·도형(道炯)과 야성(冶城) 송상관(宋相觀)·단양(丹陽) 장주현(張周顯)·여흥(驪興) 민동호(閔東鎬)에 출가한 손녀는 상계(相啓)의 소생(所生)이며 문형(文炯)은 상순(相純)의 소생(所生)이다. 현손·증손 이하는 다 수록지 못한다. 명(銘)에 가로대
비색(否塞)하고 형태(形態) 함이 운(運)에 있고 어둡고 밝음이 때가 있다. 효우(孝友)와 덕행(德行)이 지금에 기록되니 한 폭 비석이 백세(百世)에 썩지 않으리. 슬프다, 후예(後裔)들아! 보고 감동하여 일어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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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조(始祖) : 제일 처음의 선조(先祖)로서 첫 번째 조상을 말한다.
2) 비조(鼻祖) : 시조 이전의 선계조상(先系祖上) 중 가장 윗사람을 일컫는다. 시조(始祖) 이전의 선계(先系)가 없을 때는 시조(始祖)를 비조(鼻祖)라고도 한다.
3) 중시조(中始祖) : 시조 이하에 쇠퇴(衰退)한 가문을 일으켜 세운 조상으로, 모든 중종(中宗)의 공론에 따라 정하여 추존(推尊)하는 조상을 말한다. 중조(中祖)라고도 한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