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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공 10세손 갈운공 이동규] 通訓大夫大邱判官月城李公墓碣銘(통훈대부대구판관월성이공묘갈명) 幷序(병서)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5. 22:25

□용재공(慵齋公) 10세손 갈운공(葛雲公) 이동규(李東圭)

 

【계대(系代)】 ②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 1世孫 系子 천유당공(天有堂公) 덕연(德淵) → 2世孫 ①참봉공(參奉公) 윤공(胤恭) → 3世孫 ③묵우헌공(黙愚軒公) 찬(燦) → 4世孫 ①소묵재공(小黙齋公) 귀실(貴實) → 5世孫 ①중추부사공(中樞府事公) 서(瑞) → 6世孫 ②행포공(杏圃公) 립(立) → 7世孫 ②해송(海松) → 8世孫 통훈공(通訓公) 영종(榮種) → 9世孫 ②운재공(雲齋公) 시만(時萬) → 10世孫 ②갈운공(葛雲公) 동규(東圭)

 

通訓大夫大邱判官月城李公墓碣銘 幷序
(통훈대부대구판관월성이공묘갈명 병서)
-豊山(풍산) 柳賢佑(유현우) 撰(찬)

 

安東治西啼鳳山癸坐原有故通訓大夫大邱判官慶州李公諱東圭字信可號葛雲蓋楸檟己老而今者後孫龍燮淵旭得鎬濟仁等與諸宗合謨而將碣焉携其家乘來索顯刻之文於余余雖不文不敢固辭遂按以叙之曰公以新羅佐命功臣謁平爲肇祖高麗月城君之秀爲中祖諱揆四宰諡貞烈入李朝有諱繩直慶尙道觀察使大司憲諱時敏號琴湖諱宗準文科舍人以佔畢齋門人被戊午禍 贈副提學卽慵齋先生爲顯祖三傳而諱燦號黙愚軒嘉善五傳而諱海松於公爲曾祖祖諱榮種通訓考諱時萬贈工曹參議號雲齋妣慶州鄭氏泰仁女以英廟乙酉生公自幼姿相異凡兒長益專心於學問文章博洽著述具格文人名士之來觀者莫不嘆賞焉又至孝於兩親暫不離側昏省應對一如平常又與昆季友愛尤篤大人公甞奇之曰吾家之所望在此兒云後以孝貞公吏曹判書李錫奎薦 拜司果至判官致仕純廟癸未十月二十四日考終配淑人安東金氏聖昌女墓南先外下里上加峴乙坐原有四男龍俊通政號松雲光俊甲俊致俊號葛軒龍俊男相赫相泰相啓相純女李章憲光俊男相中號農圃相懿折衝將軍出相聖相禹女金忠漢金樂庸安基穆李敏容甲俊男相振相就相逸通政相璣相鍾致俊男相夏相魯相顥相規相謨女林奎達餘不錄繼爲銘曰猗歟月城東方巨閥家傳忠孝世襲簪笏爰曁慵爺丁時臲卼禍延黨籍名則不滅公承厥緖夙夜懔慄五馬南省民蒙賬恤彼鳳之麓堂爺欝結銘以載石永言不抹

 


●통훈대부대구판관월성이공묘갈명 병서 역문
(通訓大夫大邱判官月城李公墓碣銘) 幷序 譯文)
-풍산(豊山) 유현우(柳賢佑) 찬(撰)

 

안동읍(安東邑) 서쪽 제봉산(啼鳳山) 계좌(癸坐) 언덕에 옛 통훈대부(通訓大夫) 대구판관(大邱判官) 월성이공(月城李公) 휘는 동규(東圭) 자는 신가(信可) 호는 갈운(葛雲)의 묘소가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위 이제 그 후손 용섭(龍燮)·연욱(淵旭)·득호(得鎬)·재인(濟仁) 등이 모든 일가와 합의하여 비(碑)를 세우기로 하고 가승(家乘)을 가지고 나에게 와서 비(碑)에 새길 글을 부탁하니 내가 비록 글은 못 하나 굳이 사양치 못하고 붓을 드니 공은 신라(新羅) 좌명공신(佐命功臣) 휘 알평(謁平)이 시조(始祖)가 되고 고려 때 월성군(月城君) 지수(之秀)가 중조(中祖, 분파조分派祖)이며 휘 규(揆)는 사재(四宰) 벼슬에 시호(諡號)는 정렬(貞烈)이고 조선(朝鮮)에 들어와서 휘 승직(繩直)은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거쳐 대사헌(大司憲)을 지냈으며 휘 시민(時敏) 호는 금호(琴溪)고 휘 종준(宗準)은 문과(文科) 사인(舍人)인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문인(門人)으로 무오(戊午, 1498) 화(禍)를 입었고 뒤에 부제학(副提學)을 증직(贈職) 받으니 이분이 용재선생(慵齋先生)이며 현조(顯祖)이다, 세 번 내려와서 휘 찬(燦)이요, 호는 묵우헌(黙愚軒)인데 가선(嘉善)이요. 또 세 번 내려와서 휘 해송(海松) 휘 영종(榮種)은 통훈(通訓)이며 휘 시만(時萬)은 공조참의(工曹參議)고 호는 운재(雲齋)니 공의 증조·조부·부친이 된다.
모친은 경주정시(慶州鄭氏) 태인(泰仁)의 따님으로 영묘(英廟) 을유(乙酉)에 공이 낳다. 공이 어릴 때부터 자질이 범인(凡人)과 다르고, 장성하면서 더욱 학문에 잠심(潛心)하여 문장(文章)과 저술(著述)이 능란하니 보는 자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또 효성이 지극하여 양친 곁을 떠나지 않고 혼정신성(昏定晨省)1) 과 쇄소응대(灑掃應對)2) 를 하루같이 하고 또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니 대인(大人, 부친)께서 항상 기특히 여겨 우리 집 희망은 이 아이에게 있다고 하더니 뒤에 이조판서(吏曹判書) 효정공(孝貞公) 이석규(李錫奎) 씨 추천으로 사과(司果)에 배명(拜命)하여 판관(判官)에 이르렀다. 순묘(純廟) 계미년(癸未年) 10월 24일에 별세했다.
배(配)는 숙인(淑人) 안동김씨(安東金氏)니 성창(聖昌)의 따님이다. 묘소는 남선면(南先面) 외하리(外下里) 상가현(上加峴) 을좌(乙坐)다. 4남이 있으니 용준(龍俊)은 통정(通政)이요, 호는 송운(松雲)이며 광준(光俊)·갑준(甲俊)·치준(致俊)이니 호는 갈헌(葛軒)이다. 용준(龍俊) 아들에 상혁(相赫)·상태(相泰)·상계(相啓)·상순(相純)이고 따님은 지장헌(李章憲)에 출가했고 광준(光俊) 아들에 상중(相中) 호는 농포(農圃)고 상의(相懿)는 절충장군(折衝將軍)인데 출계(出系)했고 상성(相聖)·상우(相禹)고 따님은 김충환(金忠漢)·김락용(金樂庸)·안기목(安基穆)·이민용(李敏容)에 출가했고 갑준(甲俊) 아들에 상진(相振)·상취(相就)·상일(相逸)이니 통정(通政)이고 상기(相璣)·상종(相鍾)이며 치준(致俊) 아들에 상하(相夏)·상로(相魯)·상호(相顥)·상규(相規)·상모(相謨)고 따님은 임규달(林奎達)에 출가했다. 나머지 자손은 다 수록하지 못하다. 명(銘)에 가로대
월성이씨(月城李氏)는 동방(東方)에서 큰 문벌(門閥)이다. 집에서는 충효를 전수했고 대로는 벼슬이 계속되다 용재공(慵齋公)에 이르러 화액(禍厄)을 당했으니 화액(禍厄)은 당파(黨派)에 미쳤으나 이름은 영구히 남으리. 공이 그 뒤를 이으니 조모(朝暮)로 조심했다. 성의로 치민(治民)하니 구휼(救恤)함을 입혔도다. 제봉산록(啼鳳山麓)이여, 정기(精氣)가 어렸도다. 돌에다 새겨두니 길이길이 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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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정신성(昏定晨省) : 밤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이른 아침에는 부모의 밤새 안부를 묻는다는 뜻으로, 부모를 잘 섬기고 효성을 다함을 이르는 말.
2) 쇄소응대(灑掃應對) : 물을 뿌려 쓸고 응대한다는 뜻으로, 집 안팎을 깨끗이 거두고 웃어른의 부름이나 물음에 응하여 상대함을 이르는 말.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