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게시판/기◆행장◆비명

[용재공 11세손 연암공 이지범] 蓮巖李公墓碣銘(연암이공묘갈명)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5. 22:07

□용재공(慵齋公) 11세손 연암공(蓮巖公) 이지범(李之範)

 

【계대(系代)】 ②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 1世孫 系子 천유당공(天有堂公) 덕연(德淵) → 2世孫 ①참봉공(參奉公) 윤공(胤恭) → 3世孫 ③묵우헌공(黙愚軒公) 찬(燦) → 4世孫 ①소묵재공(小黙齋公) 귀실(貴實) → 5世孫 ①중추부사공(中樞府事公) 서(瑞) → 6世孫 ②행포공(杏圃公) 립(立) → 7世孫 ①후송(後松) → 8世孫 ①한우(漢祐) → 9世孫 ②춘식(春植) → 10世孫 상인(尙仁) → 11世孫 연암공(蓮巖公) 지범(之範)

 

 

蓮巖李公墓碣銘(연암이공묘갈명)
-傍厚孫(방후손) 仁根(인근) 謹撰(근찬)

 

公姓李氏諱之範字聖建號蓮巖系出慶州新羅開國元勳瓢巖公諱謁平爲鼻祖中世有諱之秀金紫光祿大夫月城君爲中祖燕山時諱宗準號慵齋戊午賢流之首爲顯祖高祖諱後松曾祖諱漢佑祖諱春植考諱尙仁 <以下 省略>

 


●연암이공묘갈명(蓮巖李公墓碣銘) 역문(譯文)
-방후손(傍厚孫) 인근(仁根) 근찬(謹撰)

 

<상략(上略)>
비(妣)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서기 1770년 경인(庚寅)에 공이 탄생하고 1834년 갑오(甲午) 12월 14일에 별세하니 감천(甘泉) 면포동(面浦洞) 농암촌(籠巖村) 뒷산 갑좌(甲坐) 언덕에 안장하다. 공이 나면서 모양이 영준(英俊)하고 재주가 과인(過人)하여 처음 글을 조부에게 배웠는데 그 어릴 때부터 가르침을 엄하게 아니해도 스스로 부지런히 하여 열 살의 나이에 소학(小學)을 다 읽어 문리(文理)가 통하니 일가친척 어른들이 다 기특히 여겨 문호(門戶)를 빛내리라 기약했으니 그때가 경종(景宗), 영조(英祖) 임금 때리라. 당파싸움이 치열하니 남인(南人)은 거의 소외당하기 마련이라 포부를 펴볼 기회가 없어지니 공도 출생할 생각을 않고 산림(山林)에 숨어 살면서 토실(土室) 몇 간을 지어 연암유거(蓮巖幽居)라. 현판을 달고 후생 가르침을 책임으로 하고 농사짓고 글 읽는 것을 병행하며 효도하고 우애하며 검소하고 절약하는 것을 가법(家法)으로 하다.
배(配)는 창원황씨(昌原黃氏) 표국(標國)의 따님이니 부덕(婦德)이 있었다. 4남 3녀를 출생하니 장남에 상두(相斗) 다음에 상우(相遇), 상영(相英)을 출계(出系)하고 상시(相始)요, 따님은 영해(寧海) 박문환(朴文煥)과 단양(丹陽) 장인택(張仁宅), 예천(醴泉) 임규원(林奎遠)에 출가했다. 상두(相斗) 계남(系男)에 진형(晉炯)이요, 상우(相遇) 남에 친형은 백부(伯父) 출계(出系)하고 다음이 관형(觀炯), 정형(鼎炯)이요, 상시(相始) 남에 용형(龍炯)이며 따님은 예천(禮泉) 임규덕(林奎德), 풍산(豊山) 김욱흠(金昱欽)에 출가했고 진형(晉炯) 남에 재화(在和), 재해(在海)는 출하고 재형(在衡)도 출하고 따님은 안동(安東) 권대수(權大銖)에 출가했고 관형(觀炯) 계남(系男)에 재형(在衡)이요, 따님은 안동(安東) 권영수(權永壽)에 출가했고 정형(鼎炯) 남에 재구(在龜)요, 용형(龍炯) 계남(系男)에 재해(在海)다. 나머지는 번거로워 다 수록 못 한다.
살펴보건대 공의 선대 묘소에 다 비문(碑文)이 있는데 공의 묘소에는 비문(碑文)이 없으니 어느 날 공의 5대손 제민(濟民)과 제상(濟商)이 그 주손(胄孫) 양섭(陽燮) 군과 함께 나에게 와서 비문(碑文)을 부탁하니 내가 그 임무를 감당하기 어려우나 그 방손(傍孫)의 처지로 끝내 사양치 못하고 보첩(譜牒)을 상고하고 전일 부형에게 들은 바에 따라 대략 위와 같이 서술한다.
슬프다, 공의 재덕과 학문으로 세상에 쓰여 보지도 못하고 산중에서 늙었으니 어찌 운명의 탓이라 아니하리오. 지난해(1990년) 경오(庚午) 봄에 공이 평일 거처하는 빈터에 여섯 간 집을 짓고 현판은 연암재(蓮巖齋)라 하였으니 공의 6대손 충근(忠根)이와 정근(貞根)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공사를 관장하여 그 규모는 굉장하고 사치스럽지 않으나 족히 숨은 덕(德)을 천명하는 데 손색이 없으니 다행하고 축하할 일이다. 명(銘)왈 효(孝)하고 자애(慈愛)함은 천성을 다했고 덕(德)을 쌓은 곳에 하늘이 경사를 주었다. 숨은 덕(德)을 드러내고 찾아내서 돌에 새겨 증거로 삼노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