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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공 11세손 연암공 이지범] 蓮巖齋記(연암재기)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5. 21:59

□용재공(慵齋公) 11세손 연암공(蓮巖公) 이지범(李之範)

 

【계대(系代)】 ②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 1世孫 系子 천유당공(天有堂公) 덕연(德淵) → 2世孫 ①참봉공(參奉公) 윤공(胤恭) → 3世孫 ③묵우헌공(黙愚軒公) 찬(燦) → 4世孫 ①소묵재공(小黙齋公) 귀실(貴實) → 5世孫 ①중추부사공(中樞府事公) 서(瑞) → 6世孫 ②행포공(杏圃公) 립(立) → 7世孫 ①후송(後松) → 8世孫 ①한우(漢祐) → 9世孫 ②춘식(春植) → 10世孫 상인(尙仁) → 11世孫 연암공(蓮巖公) 지범(之範)

 

 

蓮巖齋記(연암재기)
-完山(완산) 李震宰(이진재) 謹記(근기)

 

醴泉北甘泉西芙蓉山下十里許有坊曰鴻峴泉甘而土肥可飮而耕實月城氏世庄故處士李公諱之範嘗治居第蒔花藥囂囂然自得扁其室曰蓮巖幽居及公之沒而室之廢興相尋累經國家桑瀾之刼當命名之義題詠之什無從考尋五代孫濟民濟商夙夜匪懈憂世級之漸降懼風韻之永墜鳩村起工營建六架宇使從子忠根從侄貞根如終幹事其制不檏不侈有堂有室適喧凉而美輪奐役旣竣胄孫陽燮屬其門父老仁根徵記于不侫百里鄕山未及一造仙庄請捨其山川景物之勝直以所感於中者可乎夫蓮花之君子也出於淤泥而不梁濯淸漣而不夭中通外直不蔓不枝香遠益淸亭亭淨植可遠觀而不可䙝玩馬巖坮舊躅誦說濂翁之愛學之雖未至乃所願則學君子也掲之齋顔顧名思義其遺芬剩馥至今不匱慈孫錫類以追先徽而能裕後圖則其永爲善居室者也顧余老而憊矣無能自力於燕賀之列敢引周先生說以記斯齋人或不以爲僭妄否

 


●연암재기(蓮巖齋記) 역문(譯文)
-완산(完山) 이진재(李震宰) 근기(謹記)

 

예천(醴泉) 북쪽 감천(甘泉) 서면 부용산(芙蓉山) 아래 십리허(十里許)에 홍현(鴻峴)이란 마을이 있으니 물맛을 달고 토지는 비옥하여 가히 살만한 곳이니 실은 월성이씨(月城李氏)의 터전이라. 옛날 처사(處士) 이공(李公) 휘 지범(之範)이 일찍부터 집을 짓고 꽃과 약(藥)을 심어 쾌적하게 살면서 그 집에 연암유거(蓮巖幽居)란 현판을 걸었더니 공이 별세한 후부터 그 집이 폐허가 되고 나라에 변란을 여러차례 겪으니 당시 연암유거(蓮巖幽居)란 뜻과 남긴 문자(文子)도 상고할 길이 없어지니 5대손 제민(濟民)과 제상(濟商)이 자나 깨나 세월의 흐름을 따라 조상의 유풍여운(遺風餘韻)이 영영(永永) 없어질까 근심하여 재목을 모아 6칸 집을 지을 세. 조카 충근(忠根)과 종질(從侄) 정근(貞根)이 공사를 감독게 하니 그 규모가 화려하지는 않으나 방과 마루가 따습고 시원하게 꾸며진지라.
역사(役事)가 끝난 뒤 종손 양섭(陽燮)이 족숙(族叔) 인근(仁根)에 위촉하여 나에게 기문(記文)을 요구하니 백 리 먼 길이라 지은 집을 가보지 못한지라 좌우 산천 경치는 말할 수 없고 심중에 느낀 바를 쓰는 것이 옳을진저. 연꽃이란 진흙 속에 났으나 깨끗하면서 청결하면서 오래 견디며 속은 비었으나 외면은 곧아 넝쿨도 만지고 가지도 안 벌어 멀리서 향기가 더욱 맑고 뚜렷하게 서서 멀리서 볼만하고 헛되이 볼 것이 아니로다. 옛터에서 주렴계(周濂溪) 선생의 연꽃을 사랑하던 일을 생각하니 배워서 비록 따를 수 없으나 군자가 되기를 원함이라. 오늘에 현판을 달고 당시의 의미를 생각하니 그때 남기신 향기가 지금에 새롭다. 현손(玄孫) 후예(後裔)가 조상의 아름다운 유족을 추모하여 후손에게 교훈이 되게 하는 것이 이 집을 잘 계승하는 것이리라. 내가 늙고 병들어 능히 가서 축하하지 못하고 옛날 주선생(周先生)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집의 기문(記文)을 대신하니 너무 참람(僭濫)하지 않을까.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