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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공 4세손 소묵재공 이귀실] 通政大夫小黙齋李公墓碣銘(통정대부소묵재이공묘갈명) 幷序(병서)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5. 18:01

□용재공(慵齋公) 4세손 소묵재공(小黙齋公) 이귀실(李貴實)

 

【계대(系代)】 ②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 1世孫 系子 천유당공(天有堂公) 덕연(德淵) → 2世孫 ①참봉공(參奉公) 윤공(胤恭) → 3世孫 ③묵우헌공(黙愚軒公) 찬(燦) → 4世孫 ①소묵재공(小黙齋公) 귀실(貴實)

 

 

通政大夫小黙齋李公墓碣銘 幷序
(통정대부소묵재이공묘갈명 병서)
-傍后孫(방후손) 俊鎬(준호) 撰(찬)

 

花山邑治之西啼鳳山枕艮原有宰如而封者故通政大夫小黙齋李公之墓也日其鬯孫崙鎬偕其族人在錫甫貴銘於俊鎬曰府君之世遠矣舊有短碣而歲月滋久記蹟磨泐此實爲吾雲仍者歷世之恨也今始改竪而文獻杞宋狀本未備願惠一言以賁隧道子而無諾吾祖事行終歸湮沒乎顧此耗廢不敢當是寄而且生於幾百載之下未及傳聞其萬一者豈可以臆揣妄說犯謬罔之罪累辭不獲作而起曰韙矣諸氏之是擧也尊祖述先本孝悌之道也今何以世之遠近爲喩哉按公諱貴實字魯聖號小黙齋姓李貫慶州新羅佐命大臣諱謁平爲肇祖至麗季有諱之秀金紫光祿大夫封月城君生諱揆官四宰諡貞烈生諱元林判司僕寺事生諱蔓實吏曹判書生諱繩直大司憲淸白見重於朝生諱時敏俱中生進號琴溪生諱宗準選湖堂以佔畢高弟被戊午禍世稱慵齋先生寔公高祖曾祖諱德淵參奉祖諱胤恭參奉考諱燦嘉善號黙愚軒妣慶州金氏以隆慶壬申某月日生公幼而岐嶷頗有荊門璠璵之氣及長神采秀朗氣宇峻潔若將抱需世經綸之志而深懲乎戊癸禍網之荐仍杜門退縮隨分自靜以小黙自署者乃不違先公之遺志也以顯廟辛丑某月日卒享年九十以是年某月日葬于啼鳳山艮坐原配安東金氏儉女有婦德墓同原生二男長瑞嘉善次王+享通政瑞男繼禧立通政王+享男氣得壽嘉善餘不盡錄係之以銘銘曰
蘊而莫展命之嗇也滿而不溢行之卓也求諸己而不求諸人歛其華而保養其眞無愧爲古君子之倫乃緋乃玉寵命赫黙可驗仁壽福善之天于彼鳳麓櫝玉埋塵我撮其大恭銘貞珉


●통정대부소묵재이공묘갈명 병서 역문
(通政大夫小黙齋李公墓碣銘 幷序 譯文)
-방후손(傍后孫) 준호(俊鎬) 찬(撰)

 

화산(花山, 안동安東) 서쪽 제봉산(啼鳳山) 간좌(艮坐)의 언덕에 넉자 높이 봉한 것이 옛 통정대부(通政大夫) 소묵재공(小黙齋公)의 묘소라. 하룻날 그 봉사손(奉祀孫) 윤호(崙鎬) 그 일가 사람 재석(在錫)으로 더불어 준호(俊鎬)에게 비명(碑銘)을 위촉해 가로대 부군(府君)이 가신지 먼 세월이 지났고 옛날에 세웠던 비(碑)는 세월에 따라 기록한 글자가 에어지고 깎여서 볼 수가 없으니 이것이 실상 우리 자손 된 자의 역대(歷代)로 한(恨)이 되어 인제 와서 비를 고치자니 문헌(文獻)을 알아볼 수 없고 가장(家狀)에도 갖춤이 없으니 원컨대 한 말씀 주면 묘도(墓道)를 빛낼 터이나 만일 승낙지 않으면 선조의 행적이 없어진다고 하니 돌아보건대 나 같은 폐물이 감히 이 부탁을 감당할 수 없으며 또한 몇백 년 뒤에 난 내가 만분의 일도 알지 못하니 어찌 억측해서 망녕되게 말을 하여 속이고 거짓말을 한 죄를 범하리오. 여러 번 사양해도 들어주지 않기로 쓰노니 아름답다. 제씨의 이번 일이여! 조상을 높이고 선대를 위하는 것이 본시 효제(孝悌)의 도리라 이제 어찌 대수의 멀고 가까움을 의논하리오.
공의 휘는 귀실(貴實)이고 자는 노성(魯聖)이며 호는 소묵재(小黙齋)니 경주이씨(慶州李氏)다. 신라(新羅) 좌명대신(佐命大臣) 휘 알평(謁平)이 시조가 되고 고려말에 이르러 휘 지수(之秀)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월성군(月城君)에 봉했고 휘 규(揆)를 출생하니 벼슬이 사재(四宰)에 시호는 정렬(貞烈)이며 휘 원림(元林)을 출생하니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요, 휘 만실(蔓實)을 생하니 이조판서(吏曹判書)며 휘 승직(繩直)을 생하니 대사헌(大司憲)을 지냈으니 청백(淸白)함으로 조정에 중용되었고 휘 시민(時敏)을 생하니 생원(生員) 진사(進士)에 합격했고 호는 금호(琴溪)다. 이분이 휘 종준(宗準)을 생하니 호당(湖堂)에 뽑혔고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門人)으로 무오사화(戊午史禍, 1498)를 입으니 세상에서 용재선생(慵齋先生)이라 부르니 공에게는 고조가 된다. 증조의 휘는 덕연(德淵)이니 참봉(參奉)이요, 조의 휘는 윤공(胤恭)이니 참봉(參奉)이고 부친 휘는 찬(燦)이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호는 묵우헌(黙愚軒)이고 비(妣)는 경주김씨(慶州金氏)니 융경(隆慶) 임신년(壬申年, 1572년)에 공을 낳으셨다.
공이 어려서 기품(氣稟)이 기이하여 장차 문호(門戶)를 일으킬 조짐이 있더니 장성하면서 정신이 명랑하고 도량이 결백하여 세상에 쓰일 경륜(經綸)을 가졌으나 무오(戊午)·계유(癸酉)의 화가 거듭 있을까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추려 분수에 따라 고요히 지내며 소묵(小黙)으로 호를 한 것은 선친(先親, 묵우헌黙愚軒)의 뜻을 어기지 않음이라. 현묘(顯廟) 신축년(辛丑年, 1661년)에 별세하니 향년이 90이라. 제봉산(啼鳳山) 간좌(艮坐) 언덕에 안장하다.
배(配)는 안동김씨(安東金氏) 검(儉)의 따님이다. 부덕(婦德)이 있었다. 묘는 같은 언덕에 있다. 2남을 낳으니 장남에 서(瑞) 가선(嘉善)이요, 다음이 순(王+享)이니 통정(通政)이며 서(瑞)의 아들에 계희(繼禧)며 입(立)이니 통정(通政)이고 순(王+享)의 아들에 기득(氣得)이니 수직가선(壽職嘉善)이다. 나머지는 다 수록 못 하고 이어 명(銘)을 쓰니 명(銘)에 가로대
속에 쌓아놓고 펴지 못한 것은 운명의 비색(否塞)함이요, 가득 차도 넘치지 않는 것은 행동이 탁월함이라 잘못이 있을 때는 내 몸에 구하고 남에게 탓하지 않으며 그 화려한 것은 갈무리고 전진(天眞)을 기르니 옛날 군자(君子)에 부끄럼이 없도다. 붉은 띠에 옥관자(玉貫子)는 나라님의 사랑이 혁혁(赫赫)하도다. 어진 자에게 수(壽)를 주고 착한 자에게 복(福)을 주는 하늘이 증험(證驗)함이로다. 저 제봉산(啼鳳山) 기슭에는 옥(玉)이 티끌에 묻었도다. 내가 그 큰 것을 가려서 비(碑)에 새기노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