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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공 10세손 운계공 이광조] 嘉善大夫贈左承旨雲溪李公墓碣銘(가선대부증좌승지운계이공묘갈명) 幷序(병서)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5. 17:16

□용재공(慵齋公) 10세손 운계공(雲溪公) 이광조(李光朝)

 

【계대(系代)】 ②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 1世孫 系子 천유당공(天有堂公) 덕연(德淵) → 2世孫 ①참봉공(參奉公) 윤공(胤恭) → 3世孫 ①천사공(川沙公) 환(煥) → 4世孫 금역당공(琴易堂公) 복창(復昌) → 5世孫 ③예달(禮達) → 6世孫 ②은운공(隱雲公) 우식(雨植) → 7世孫 ①청담공(淸潭公) 만춘(萬春) → 8世孫 ②석형(碩馨) → 9世孫 만재공(晩齋公) 복화(馥和) → 10世孫 ①운계공(雲溪公) 광조(光朝)

 

 

嘉善大夫贈左承旨雲溪李公墓碣銘 幷序
(가선대부증좌승지운계이공묘갈명 병서)
-永嘉(영가) 權璛(권숙) 謹撰(근찬)

 

榮川之北十里許花亂之西癸坐原有皐如四天之封寔故嘉善大夫 贈左承旨雲溪李公巾屨之藏也公之後孫濟博濟遠二君其族父成鎬氏所述遺事一通訪余於漠城寓舍責不侫而顯刻之文終於栢社誼有所不敢辭者謹按收而叙之曰公諱光朝字華重雲溪其號也慶州其貫也生丙戌壬辰卒享年七十六公自幼姿相異凡長益專心於學文文章博洽著述具挌文人名士之來觀者莫不嘆賞焉新羅佐命功臣諱謁平爲鼻祖高麗月城君金紫光祿大夫三重大匡諱之秀享津陽書院爲中祖有諱揆四宰諡貞烈配享忠惠王廟庭有諱元林判司僕寺事有諱蔓實號花軒承政院左承旨兼漢城判尹至吏曹判書有諱繩直行慶尙道觀察使至大司憲淸白重望有諱時敏成均生員號琴湖有士望入我朝諱宗準文校理 贈副提學以佔畢門徒被戊午禍世稱慵齋先生享鏡光院栢麓社周岡壇所爲顯祖於公爲十代祖也有諱雨植號雲溪左通禮諱萬春號淸潭僉樞有學行有諱碩馨號丹軒有諱馥和號晩齋司僕寺正其高曾祖考慶州崔氏成梁女其妣也配貞夫人慶州崔氏基碩女配貞夫人義城金氏應燦女生三男六女長男周璧次周政次周閈出系光億后女適黃中喆昌原人金命錫慶州人禹時龜丹陽人劉聖運江陵人金時鍊安東人權相夏安東人璧男相麟相容政男相哲相表相明相牧閈男相宅相九相協相眞相虎相明餘不盡錄系之而銘曰居官不驕槩所未易處家篤友亦行難事凡今之人孰知斯義我銘于石用告有位

 

歲己巳淸明節 永嘉 權璛 謹撰

 


●가선대부증좌승지운계이공묘갈명 병서 역문
(嘉善大夫贈左承旨雲溪李公墓碣銘 幷序 譯文)
-영가(永嘉) 권숙(權璛) 근찬(謹撰)

 

영천(榮川)의 북쪽 10리쯤 되는 곳 화란(花亂)의 서쪽 계유(癸坐) 언덕에 고(皐)가 4척의 봉(封)한 것 같은 것이 있으니 이는 옛 가선대부(嘉善大夫) 좌승지(左承旨)를 증(贈)한 운계이공(雲溪李公)의 건구(巾屨)가 간직된 곳이다. 공의 후손인 제박(濟博)·제원(濟遠) 이군(二君)이 그 족부(族父) 성호(成鎬) 씨의 지은바 유사(遺事) 1통을 가지고 나를 막성우사(漠城寓舍)로 찾아와서 비명(碑銘)을 부탁하니 인연이 백사(栢社)에 있으니 의(誼)가 감히 사양하지 못한 바가 있는지라. 삼가 안찰(按察)하여 거두에 펴 이르기를 공의 휘는 광조(光朝)요, 자는 화중(華重)이요, 운계(雲溪)는 그 호라. 경주(慶州)가 그 관향(貫鄕)이니 병술년(丙戌年)에 낳아서 임진년(壬辰年)에 졸하시니 향년(享年)이 76이시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모양과 상(相)이 뭇사람과 다르더니 자람에 더욱 학문(學文)에 전심하여 문장(文章)이 박흡(博洽)하고 저술(著述)이 구격(具格)하여 문인(文人)이나 문사(文士)가 찾아와서 탄식하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신라(新羅)의 좌명공신(佐命功臣)인 휘 알평(謁平)은 비조(鼻祖)가 되고 고려(高麗) 월성군(月城君)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삼중대광(三重大匡) 휘 지수(之秀)는 진양서원(津陽書院)에 제향(祭享)을 올리니 중조(中祖, 분파조分派祖)가 되며 휘는 규(揆) 사재(四宰)요, 시호(諡號)는 정렬(貞烈)이란 어른은 충혜왕묘정(忠惠王廟庭)에 배향(配享)되어 있고 휘 원림(元林)은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요. 휘는 만실(蔓實)이요, 호는 화헌(花軒)이란 어른은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한성판윤(漢城判尹)을 겸하여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고 휘는 승직(繩直)이요, 행직(行職)이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지내고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러 청백(淸白)하여 물망이 높은 어른도 있었으며 휘는 시민(時敏)이요,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을 지낸 호가 금호(琴湖)라는 어른은 선비의 물망에 오르더니 아조(我朝, 조선朝鮮)에 들어와 휘 종준(宗準)이요, 문과(文科) 교리(校理)를 지내어 부제학(副提學)의 증직(贈職)을 제수한 어른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도(門徒)로써 무오(戊午, 1498)의 화(禍)를 입으니 세상에서 용재선생(慵齋先生)이라 일컬으니 경광서원(鏡光書院)·백록리사(栢麓里社)·주강단소(周岡壇所)에 배향(配享)되니 현조(顯祖)가 되는바 공의 10대조가 되고 휘는 우식(雨植)이요, 호는 운계(雲溪)이란 어른은 좌통례(左通禮)요. 휘는 만춘(萬春)이요, 호는 청담(淸潭)이란 어른은 첨추(僉樞)로 학행(學行)이 있었으며 휘는 석형(碩馨)이요, 호는 단헌(丹軒)이란 어른이며 휘는 복화(馥和)요, 호는 만재(晩齋)라는 어른은 사복시정(司僕寺正)이니 그 고조와 증조고가 되고 경주최씨(慶州崔氏) 성량(成梁)의 따님은 그 비위(妣位)가 되며 배위(配位)인 정부인(貞夫人) 경주최씨(慶州崔氏) 기석(基碩)의 따님이요. 배위(配位)인 정부인(貞夫人) 의성김씨(義城金氏) 응찬(應燦)의 따님이니 3남과 6녀를 낳았다.
장남은 주벽(周璧)이요, 차는 주정(周政)이요, 차는 주한(周閈)이니 광억(光億)이란 어른에게 입후(入后)를 하고 따님은 황중철(黃中喆) 창원인(昌原人)과 김명석(金命錫) 경주인(慶州人)과 우시귀(禹時龜) 단양인(丹陽人)과 유성운(劉聖運) 강릉인(江陵人)과 김시연(金時鍊) 안동인(安東人)과 권상하(權相夏) 안동인(安東人)에게 출가(出嫁)하였다. 주벽(周璧)의 아들은 상린(相麟)·상용(相容)이고 주정(周政)의 아들은 상철(相哲)·상표(相表)·상명(相明)·상목(相牧)이고 주한(周閈)의 아들은 상택(相宅)·상구(相九)·상협(相協)·상진(相眞)·상호(相虎)·상명(相明)이요.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못하고 명(銘)하여 가로대
벼슬에 있어서 교만(驕慢)하지 않은 것이 대개 쉽지 못하고 집에 처하여 독실(篤實)히 우애(友愛)하는 것이 또한 행(行)하기 어려운지라. 무릇 이제 사람은 누가 이 의(義)를 아는가? 내가 돌에 명(銘)하여서 위(位) 있는 이에게 고하노라.

 

세(歲) 기사(己巳) 청명절(淸明節)에 영가(永嘉) 권숙(權璛)는 근찬(謹撰)하고
족후손(族後孫) 근서(謹書)하노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