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게시판/기◆행장◆비명

[용재공 8세손 단헌공 이석필] 嘉善大夫龍驤衛副護軍月城李公墓碣銘(가선대부용양위부호군월성이공묘갈명) 幷序(병서)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5. 16:57

□용재공(慵齋公) 8세손 단헌공(丹軒公) 이석필(李碩弼)

 

【계대(系代)】 ②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 1世孫 系子 천유당공(天有堂公) 덕연(德淵) → 2世孫 ①참봉공(參奉公) 윤공(胤恭) → 3世孫 ①천사공(川沙公) 환(煥) → 4世孫 금역당공(琴易堂公) 복창(復昌) → 5世孫 ③예달(禮達) → 6世孫 ②은운공(隱雲公) 우식(雨植) → 7世孫 ①청담공(淸潭公) 만춘(萬春) → 8世孫 ①단헌공(丹軒公) 석필(碩弼)

 

 

嘉善大夫龍驤衛副護軍月城李公墓碣銘 幷序
(가선대부용양위부호군월성이공묘갈명 병서)
-完山(완산) 李震宰(이진재) 撰(찬)

 

公諱碩弼姓李氏系出慶州上祖諱謁平中世有諱之秀金紫光祿大夫月城君燕山時有諱宗準號慵齋爲戊午賢流之首祖諱雨植考諱萬春僉樞妣仁同張氏公生世獻之家植小康之日淬礪名行成就德器在家則光前而啓後出仕則尊主而庇民業績著于當時謨猷垂諸後代而惜乎其遺風餘韻幷與生卒年月日而遠不可攷譜牒所載只有嘉善大夫龍驤衛副護軍窃惟公之於慵翁間八世則時當 景 英之際黨議傾軋南士之有才學者率栖遑於閒官散秩之間而不得展其有爲之志公雖不觸機牙遭顚擠而其不得颺顯于世固爾也後之求公者當論其世也其葬在花亂洞艮坐配貞夫人沃川全氏同原祔後有二男振和禹和二女金洛鍾申萬慶振和男光秀光瑾禹和男光億餘不盡錄按其先皆有信銘而以公墓道尙闕顯刻泳鎬元根二氏屬是役于不侫顧人輕識謏屢辭而不獲命遂依其來錄而叙述如右盖闕疑而存信寧簡而無繁也銘曰月城之世慵翁之孫欲知公美溯洄醴源誰云澤斬吾見流長煌煌貞珉大夫之藏

 


●가선대부용양위부호군월성이공묘갈명 병서 역문
(嘉善大夫龍驤衛副護軍月城李公墓碣銘 幷序 譯文)
-완산(完山) 이진재(李震宰) 찬(撰)

 

공의 휘는 석필(碩弼)이고 성은 이씨(李氏)니 경주(慶州)가 관향(貫鄕)이다. 상조(上祖)의 휘는 알평(謁平)이요, 중시조(中始祖, 분파조分派祖) 휘에 지수(之秀)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월성군(月城君)이요, 연산(燕山) 때 휘 종준(宗準) 호를 용재(慵齋)라 하는 분이 무오사화(戊午史禍, 1498)의 우두머리다[연루된 것임]. 조의 휘는 우식(雨植)이고 고의 휘는 만춘(萬春)이니 첨추(僉樞)고 비(妣)는 인동장씨(仁同張氏)다.
공이 문학의 집에서 출생 정국(政局)이 잠잠할 때를 만나 이름과 행동을 하면서 깨끗이 하고 덕망과 재목을 성취해 집에 있을 때는 선조를 빛내고 후세를 계도(啓導)하며 벼슬을 할 때는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애호하여 업적이 당시에 드러나고 교훈이 후세에 전했을 것이나 아깝다. 그 유품(遺品)과 행적(行蹟)이 생졸(生卒)과 함께 상고할 길이 없고 보첩(譜牒)에 실린 바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이라고만 했으니 생각건대 공이 용재선생(慵齋先生) 8대손이 되니 그때가 경종(景宗)·영조(英祖)의 때라 당파싸움이 치열하여 남인(南人) 선비에 재학(才學)이 있다 해도 요직에서 밀려나 한직에서만 방황하여 그 포부와 지식을 펴보지도 못했으니 공도 세도가에 아부하지 않은 이상 이름을 날리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라 뒤에 사람들이 공의 영달하지 못한 사유를 알고자 그때의 세상을 의논함이 가하리라. 그 묘소는 화란동(花亂洞) 간좌(艮坐)에 있다.
배(配)는 정부인(貞夫人) 옥천전씨(沃川全氏)니 묘소는 같은 언덕 뒤편에 있다. 2남이 있으니 진화(振和)·우화(禹和)고 두 딸은 김락종(金洛鍾)·신만경(申萬慶)에 출가했고 진화(振和) 아들에 광수(光秀)·광근(光瑾)이요, 우화(禹和) 아들에 광억(光億)이고 나머지 자손은 다 수록 못 한다.
듣건대 선대 묘소에는 다 비명(碑銘)이 있고 공의 묘소에만 아직 새김이 없으니 영호(泳鎬)·원근(元根) 두 사람이 이번에 비명(碑銘)을 나에게 부탁하니 나와 같이 사람이 가볍고 지식이 천박한 것이 부당하다고 사양하나 듣지 않아서 그가 가지고 온 기록에 의거하여 위와 같이 쓰나니 대개 의심나는 것을 빼고 믿을만한 것은 살리며 차라리 간략하게 쓰고 번거로움이 없게 했다. 명(銘)을 써 가로되
월성(月城)의 후예(後裔)요, 용재(慵齋)의 후손이라. 공의 아름다운 것을 알고자 할진대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라. 누가 오랜만에 은택(恩澤)이 끊어진다고 했던고. 나는 길게 흐름을 보았네. 반짝반짝 빛나는 비석이여 대부(大夫)를 묻은 곳이로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