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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공 8세손 쌍오당공 이처인] 雙梧李公傳(쌍오이공전)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2. 22:18

□판사공(判事公) 8세손 쌍오당공(雙梧堂公) 이처인(李處仁)

 

【계대(系代)】 ②판사공(判事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①연천현감공(璉川縣監公) 사강(思剛) → 2世孫 ②연와공(蓮窩公) 말손(末孫) → 3世孫 유경(有慶) → 4世孫 ①선공감공(繕工監公) 순년(舜年) → 5世孫 ②화남공(華南公) 여격(汝格) → 6世孫 系子 동지중추부사공(同知中樞府事公) 춘영(春榮) → 7世孫 ①인담공(林潭公) 희백(希白) → 8世孫 ②쌍오당공(雙梧堂公) 처인(處仁)

 

 

雙梧李公傳(쌍오이공전)
–工判(공판) 朴承揮(박승휘) 撰(찬)


公姓李諱處仁字義汝號雙梧貫慶州即湖南帶方人也公生而異凡風骨俊爽天禀端雅年在妙幼志于經學巳通大義孝友惇睦誠信之節靡不盡善而事親也誠孝備至耳目之好心志之樂必爲之致事兄也輒得玩好不待言而先進無一毫吝惜之意手植二梧自比於棣之華竹之親則弘量博識非人人所及而鄕中雅望之士見而皆奇之及長遊於權華山門與一時名流講究相推確然自守威武不能屈其操勢利不能動其心聲譽籍甚貴人碩儒輻湊于門非公志也公之志操如是節儉而按人之道常作謹愼之於婢僕必使寬桑之風後及考妣之憂前後居廬哀毀踰節不違禮制俾切終身之慕聞者莫不愓然而感肅然而式焉制闋遽然闢一書室于園林外水石之間䂃然不滓恬然靜坐義理必究乎經文意會輒發於會輒發於自樂遯世無憫享年五十六而終士流臨喪如期功年童走卒皆曰賢者逝矣以至乎食不肉春不杵農不謳嗚呼呼君子服人之德何其盛也其生也一鄕尊之其歿也一鄕哀之因其外可想其中也夫其先則三韓大臣諱謁平之后本朝 吏判諱蔓實之九世孫參奉諱希白之子也公之五世孫承雨素有面雅故謹志其所聞如此

 


●쌍오이공전(雙梧李公傳) 역문(譯文)
-공판(工判) 박승휘(朴承揮) 찬(撰)

 

공의 성은 이씨(李氏)요, 휘는 처인(處仁)이며 자는 의여(義汝)요, 호는 쌍오(雙梧)며 관은 경주(慶州)니 호남(湖南) 대방(帶方) 사람이라. 공이 나면서 범인(凡人)과 달라 풍골(風骨)이 준수하고 천품(天稟)이 단정하여 어린 나이에 벌써 경서(經書)에 열심히 하여 큰 뜻을 통했고 효도하고 우애하며 돈독하고 화목하여 성실하고 믿음이 하나고 빠짐이 없어 어버이 섬기는데 정성과 효성이 극진하여 눈과 귀에 좋은 것과 마음과 뜻에 즐거움은 반드시 해드렸으며 형을 섬기는 데도 좋은 것을 얻으면 먼저 형에 바쳐서 애석해하는 마음이 없었고 손수 오동나무 두 그루를 심어 놓고 아가위나무의 화려함과 대나무가 친밀한데 비유하며 국량이 넓고 학식이 넓어 사람이 따를 수 없으니 향중(鄕中)에서 기특하게 생각했다.
장성하면서 권화산(權華山, 권집權潗) 문하(門下)에 놀아 한때 명현(名賢)들과 묻고 연구하여 확실한 것을 지켜 무력으로도 그 지조(志操)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권리로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여 찬성하는 소리가 자자하니 귀인(貴人)과 석유(碩儒)들이 문전(門前)에 끊이지 않은 것은 공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공의 지조(志操)가 절검(節儉)하고 사람을 상대함에 항상 근신하여 하인들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너그럽고 부드러운 처사를 취했다. 뒷날 부모의 상을 당하여 장시일 여막(廬幕)살이를 하면서 슬퍼함이 정도에 넘치고 모든 행동이 절에 어긋남이 없이 종신토록 양친을 애모하니 보고 듣는 사람이 감동 아니함이 없어 본받기를 희망했다.
부모거상(父母居喪)을 마치고 복(服)을 벗은 뒤 집 몇 칸을 수석(水石) 좋은 곳에 짓고 꿀에 몸을 더럽히지 않고 고요히 앉아서 글 속에서 의리를 연구하고 뜻을 노래하고 읊조리는데 발작하여 세상을 등지고 살아도 항상 즐겁고 민망함이 없이 56세를 살다 별세하니 유림(儒林) 사류(士流)가 모두 상문(喪問)하고 어린아이들도 어진이 갔다고 슬퍼하여 한때 고기를 먹지 않으며 방아 찧는 소리를 내지 않고 농부도 노래하지 않으니 군자(君子)가 사람을 복종시키는 심덕(心德)이 어이 그리 대단한고. 그 삶에 일향(一鄕)이 존경하고 그 죽음에 일향(一鄕)이 슬퍼하니 그 표정을 봐서 그 내정을 짐작할진대 그 조상은 신라대신(新羅大臣) 알평(諱謁平)의 후손이요, 본조(本朝, 조선朝鮮)에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낸 만실(蔓實)의 9세손이며 참봉(參奉) 희백(希白)의 아들이다. 공의 5세손 승우(承雨)와는 아는 사이이므로 그 들은 바를 위와 같이 기록하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