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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공 10세손 홍계공 이종혁] 鴻溪公家狀(홍계공가장)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2. 22:51

□판사공(判事公) 10세손 홍계공(鴻溪公) 이종혁(李宗赫)

 

【계대(系代)】 ②판사공(判事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①연천현감공(璉川縣監公) 사강(思剛) → 2世孫 ②연와공(蓮窩公) 말손(末孫) → 3世孫 유경(有慶) → 4世孫 ①선공감공(繕工監公) 순년(舜年) → 5世孫 ②화남공(華南公) 여격(汝格) → 6世孫 系子 동지중추부사공(同知中樞府事公) 춘영(春榮) → 7世孫 ①인담공(林潭公) 희백(希白) → 8世孫 ②쌍오당공(雙梧堂公) 처인(處仁) → 9世孫 ①임덕공(林德公) 동윤(東尹) → 10世孫 ①홍계공(鴻溪公) 종혁(宗赫)

 

 

鴻溪公家狀(홍계공가장)
-曾孫(증손) 承雨(승우) 述(술)

 

公姓李諱宗赫字和仲號鴻溪慶州人羅初有開國功臣諱謁平爲上祖麗季有月城君諱之秀爲遠祖國朝以來簪組襲世八傳有縣監諱汝格寔公五代祖也高祖諱春榮贈右尹曾祖諱希白參奉祖諱處仁號雙梧以德行著也考諱東尹妣全州崔氏瑞來女公生于龍城西林里幼而異凡性賦乎天德治乎人平日修齊之道必以孝爲先事父母孜孜之誠非人所及旣丁外憂哀號盡禮誠克廬墓制闋後忽遇鬱攸之變守藏蕩燼生活艱窶即移于鴻西余改水村奉母夫人誠孝之心彌切彌篤承順而養志供旨而適口菽水無資或漁弋或采樵安貧自適不改顔氏之樂侍側誾如輒恩閔子之行得一美味不先入口如有不安節夙夜靡懈如有恐色終日侍立起敬起孝悅而後退孝親之心及于愛人居常以溫雅正直爲特身孰莫不敬仰士流齊禀累至鄕薦里婦街兒咸稱李孝子家府宰金公某聞聲諮訪致敬而歸饋遺以魚肉米藿之屬有書慰之曰昔聞董生今見李某且近地有占金者以販牛生業也器盛十斤肉來獻公即欲報償占金曰小人亦人也遠慕生員主誠孝之純篤獻玆一時需矣以若報償則何處不賣而至此固辭而去如是者累度公從後送價者亦數矣如彼蜀賤亦感孝之爲貴者固其彝性之所同也其後內艱哀毀踰節盡誠如禮遠近親疎皆賻奠稱頌然則公之實行以孝感天以德服人而拜廟躳自掃庭遇忌務得精潔雖在燕閒之中卑身篤行無不盡善於日用之間爲一世之標準也以 景墓癸卯十月初五日生 正廟辛亥十一月十二日卒葬于金莊鰲山乙坐原配晉州姜氏馹著女生五男一女長諱光運次諱光澤次諱光潤次諱光國次諱光植女適驪州尹致寬光運號松齋以孝友八薦光澤男景達號農隱又以孝行著世世稱三孝者是也松齋農隱二公事蹟俱載譜牒及諸公撰誌中今不必盡詳而公之德蔭振覆于子若孫乎三世一行余非以文墨圖繪但追述先蹟以俟君子之立言而至於內外孫曾玄總五十餘人己略墓誌姑不悉彦

 


●홍계공가장(鴻溪公家狀) 역문(譯文)
-증손(曾孫) 승우(承雨) 술(述)

 

공은 성은 이씨(李氏)요, 휘는 종혁(宗赫)이며 자는 화중(和仲)이요, 호는 홍계(鴻溪)니 경주인(慶州人)이라. 신라(新羅) 개국공신(開國功臣) 휘 알평(謁平)이 시조(始祖)가 되고 고려(高麗) 말에 월성군(月城君) 휘 지수(之秀)가 원조(遠祖)가 된다.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대대로 끊어지지 않으니 여덟 번 전(傳)해 현감(縣監) 휘 여격(汝格)이 공의 5대조가 되고 고조의 휘는 춘영(春榮)이니 증우윤(贈右尹)이요, 증조의 휘는 희백(希白)이니 참봉(參奉)이고 조의 휘는 처인(處仁)이며 호는 쌍오(雙梧)니 덕행(德行)으로 세상에 드러났고 고의 휘는 동윤(東尹)이요, 비(妣)는 전주최씨(全州崔氏) 서래(瑞來)의 따님으로 용성(龍城) 서림리(西林里)에서 공을 낳으시다.
공은 어릴 적부터 윗사람과 달라 하늘이 낸 착한 성품과 사람에 입힌 후한 인덕으로 몸을 닦고 집을 다스리는데 반드시 효(孝)로 근본으로 삼아 부모를 섬기는데 쏟은 정성은 다른 사람의 따를 바가 아니듯이 부친상을 당하여 예(禮)에 넘치게 애통하고 시묘(侍墓)도 정성으로 끝마치고 복(服)을 벗은 뒤 우연히 불우지변(不虞之變)을 당하여 가장 지물이 잿더미가 되니 생활이 날로 어려워 홍서(鴻西) 땅으로 이사하여 모친을 봉양하는데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유순하게 뜻을 착실히 받들고 입에 맞는 음식을 대접하자니 집이 가난하여 살 수가 없어서 냇가에 가서 고기를 잡고 산에 가서 사냥도 하여 봉양을 게을리 않고 가난을 능히 극복하여 안씨(安氏)의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며 화한 태도로 부모님 곁을 모실세 민자(閔子)의 효행을 생각하고 좋은 음식이 생기면 먼저 먹는 일이 없었고 병환이 나시면 밤낮으로 정성껏 시병(侍病)하고 부모님이 성낸 기색이 보이면 종일 곁에 모시고 가서 공경과 효성을 다하여 즐기시는 것을 보고 물러나며 부모에 효도하는 마음을 타인에게 미루어 사랑하고 거(居)할 때는 항상 온아하고 정직으로 몸을 가지니 뉘 공경하고 흠향하지 않으리오.
사류(士流)와 유림(儒林)에서 일제히 효자로 추천하니 남녀노소 없이 모두가 효자라 부르니 부사(府使) 김공(金公) 모씨(某氏)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예대(禮待)를 하고 돌아가서 고기와 쌀과 미역을 보내주고 편지를 주어 일으되, ‘옛날에 동생(董生)의 효를 들었으니 이제 이 효자를 보았다’ 했고 점금(占金)이란 사람이 있어 소고기 파는 것으로 업을 하더니 소고기 열 근을 가져왔거늘 소고깃값을 보상코자 하니 점금(占金)이 이르되 ‘소인도 사람이라 생원(生員)님의 효성에 감동되어 약간의 고기를 드렸거늘 만일 값을 받는다면 그 고기를 어디 가서 못 팔아서 여기 가져왔으리까’ 하고 사양하고 고기를 여러 번 하니 공이 값을 보내주기도 몇 차례나 했다. 저와 같은 천민(賤民)도 효도의 귀중한 것을 아니 성품이 타고난 것은 귀천이 일반이라 그 뒤 모친의 상을 당하여 성의 다하여 예절에 맞도록 하니 원근(遠近)에 사는 친척들이 모두 칭송이 자자하니 공의 실행은 효성으로 하늘을 감동하게 했고 덕행으로 세상 사람을 감복시킴이로다. 사당에도 몸소 청소하고 제삿날을 당하면 정결하고 엄숙함을 당하니 한세상 표준인물로 되었다. 경종(景宗) 계묘(癸卯) 10월 초 5일 출생하여 정조(正祖) 신해(辛亥) 11월 12일에 졸하니 금장오산(金莊鰲山) 을좌(乙坐)에 장사지내다.
배(配)는 진주강씨(晉州姜氏) 일저(馹著)의 따님이니 5남 1녀를 두다. 장남에 휘는 광운(光運)이요, 둘째는 광택(光澤)이며 셋째는 광윤(光潤)이고 넷째는 광국(光國)이고 다섯째는 광식(光植)이며 딸은 여주(驪州) 윤치관(尹致寬)에 출가했다. 광운(光運)의 호는 송재(松齋)니 효우(孝友)로 추천을 받았고 광택(光澤)의 남 경달(景達)은 호가 농은(農隱)이니 또 효행(孝行)으로 세상에 알렸으니 세상에서 삼효자(三孝者)라 칭한 것이 이분들을 말함이다. 송재공(松齋公)·농은공(農隱公) 두 분의 사적(事蹟)이 보첩(譜牒)과 제공(諸公)들의 지은 글 속에 들어있으니 이제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는 없으나 공의 음덕(蔭德)이 자손에까지 미처 삼대효행(三代孝行)을 내가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요. 다만, 선적(先蹟)을 기록하여 후일 군자(君子)의 증언을 기다리고 내외(內外) 증현손(曾玄孫)이 50여 인으로 공의 묘지에 대략 기록되었으므로 여기는 다 기록지 않는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

 

 

續記(속기)

 

農隱即我先考也嘗謂小子曰王考鴻溪公之德孝寔賦乎天伯考松齋公又以孝友著聞這這實蹟擧槩悉汝汝其不忘無忝先德余自齠齔尤感我先考眷眷之誠而性且節儉孝友敦睦寬仁愛恤乃平日持心也十數年慈患祈壇竭誠用藥調方無不備至有孚於感天至誠而及其諸叔父三喪自力盡誠不違禮制撫育羣從竟至成立此皆孝思維則也嗚呼痛哉昔在丙寅秋八月襄奉時縉紳及章甫吊而哭曰孝子也詞而奠曰孝子也誄而哀曰孝子也世之稱三孝亶其然乎余雖不肖豈以遺聞傳言敢贅其開以遠僭妄耶謹構數行以示來許

 


●속기(續記) 역문(譯文)

 

농은(農隱)은 나의 선친이라 일찍 나에게 말씀히시기를 조부 홍계공(鴻溪公)의 덕(德)과 효(孝)는 하늘이 내셨고 백부 송재공(松齋公)이 또 효우(孝友)로 드러나서 그 실적(實蹟)을 너에게 알리니 너는 잊지 말고 선대의 음덕(蔭德)을 손상하지 말라 하셨으니 내 어릴 적부터 나의 부친께서 선대에 대한 정성에 감복했고 또한, 성품이 검소하고 절약하며 효우(孝友) 돈독(敦篤) 관인(寬仁) 애휼(愛恤)은 평소 마음가짐이라. 수십 년 모친 병환에 단(壇)을 모야 완쾌를 기원하고 약을 쓰는 대로 좋은 약을 다 구비하니 효성은 하늘로 감동했고 삼촌들 삼년상(三年喪)에도 정성을 다하여 예법에 어긋남이 없고 여러 종반(宗班)을 정성껏 무육(撫育)하여 다 성취했으니 이것이 다 효에서 우러난 일이라.
슬프다, 병인(丙寅) 8월 장사(葬事) 때 진신(縉紳) 군자(君子)들이 문상하고 울면서 가로대, 효자(孝子)라 하였고 제문(祭文)을 지어 치전(致奠) 하는 사람들도 효자라고 사람마다 칭송하니 내 비록 불민(不敏)하나 어찌 들음만 가지고 망언 된 글을 쓰리오, 삼가 두어줄 기록하여 후인(後人)에게 보이노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