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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공 10세손 가애공 이홍조] 知中樞府事贈戶曹判書嘉崖慶州李公行狀(지중추부사증호조판서가애경주이공행장)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2. 14:19

□판사공(判事公) 10世孫 가애공(嘉崖公) 이홍조(李弘肇)

 

【계대(系代)】 ②판사공(判事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①연천현감공(璉川縣監公) 사강(思剛) → 2世孫 ①사헌부집의공(司憲府執義公) 계손(季孫) → 3世孫 ①성균진사공(成均進士公) 당(瑭) → 4世孫 의금부도사공(義禁府都事公) 이화(以和) → 5世孫 ③증이조참판공(贈吏曹參判公) 약용(躍龍) → 6世孫 ①금헌공(錦軒公) 희수(希壽) → 7世孫 ①보은현감공(報恩縣監公) 석립(碩立) → 8世孫 ①신암공(愼庵公) 억(檍) → 9世孫 증호조참판공(贈戶曹參判公) 경창(慶昌) → 10世孫 ①가애공(嘉崖公) 홍조(弘肇)

 

 

知中樞府事贈戶曹判書嘉崖慶州李公行狀

(지중추부사증호조판서가애경주이공행장)
-五世孫(5세손) 泰炯(태형) 撰(찬)


夫忠孝人之秉彜也孝於親則忠於君忠於君則孝於親本無二致故推孝親之誠及於敬兄惇族推忠君之心及於恤貧賙竆以此推之動容周旋何莫非根於忠孝而出來者耶懷橘扇枕童幼之孝攀墓栢感蓼莪長成之孝也忘身殉國臨亂之忠也濟命涸轍分愛之忠也自吉及今忠孝雙全者能幾希而至若盡善得見於我先公矣公姓李諱弘肇字君遠號嘉崖系出雞林鼻祖諱謁平翊羅祖創業策勳後有諱之秀金紫光祿三重大匡左僕射月城君高麗宗臣入本 朝有花軒公者諱蔓實吏曹判書傳至諱希壽郡守寔公高祖也曾祖諱碩立縣監祖諱檍丙子節臣曾兵曹參議旌閭考諱慶昌參奉曾戶曹參判妣贈貞夫人平壤趙氏僉樞慶哲女生三男公其長也以 顯宗壬寅十二月二十四日生自幼巳有至性纔食食能言每與羣兒遊戯得一美果則輒獻兩親若有不安節則暫不離側夜不寐勸粥飮進然後始强飯根天之誠著於童穉之日是黃香陸績之孝也及長柔色婉容左右就養凡所以悅口養志者無所不庸其極家庭之間純至之行指不榺僂而其所最著者慈闈之病裂指刲股以甦幾絶之命其後失怙悲屺執喪踚制幾至滅性而人或言少抑至情以死生爲念則輒流涕嗚咽哀動傍人及其葬墓在三十餘里之地而朔望省掃不廢寒暑擗踊哀號人不忍聞六年如一鄕黨咸以至孝稱之是事生送死孝親之至也治家稍足傾財喜施出嫁娣妹外居弟姪全養顧護其他宗族惇睦之義方之范魯公無負此友愛之誠也每當大侵之年損私穀恤窮民以濟溝壑之塡動以萬計觀於洪佛子恰以此分憂之忠也兼此孝而友而忠而三者者古所罕有又况材局超衆智略過人任大事決大議無不處變而早歲廢擧絶意進取喫詩書芻秦豢之味樂山水仁智之域惜乎其未有所施至稀年以子侍從之貴陞嘉喜大夫同知中樞府事至耄年以天爵陞嘉義大夫歿後以次子原從勞贈資憲大夫戶曹判書例兼知義禁都摠管噫向使公遭際風雲展其蘊抱聲名溪但止於此哉 英宗甲子九月十七日考終于正寢享年八十三耄耋不愆得其壽也積而能散享其富也盈謙窒亨筮康寧也孝友惇睦德之好也生順歿寧允考終也九五福疇公皆有之亦偉歟某月某日葬于德山郡外也面金峙里新棠山參議公墓兆下酉坐原噫惟公樸古曠淡之姿忠厚退讓之心汎愛仁親之術有古君子遺風餘韻即之者心醉之者懷感淺㴱雖殊名譽無差及其歿也人無知不知又莫不同聲而惜之相吊而悲之至于墓木成拱而人之慕之彌遠而彌木能志也德有而潛光蘊而幽不肖雖欲揄揚何所摭實其辭拙使先祖之德不揚於後其辭溢人又誰肯信之如是者溪以文爲亦不敢辭而不敢復以不肖一二遺聞舊傳贅於其間以速僭佞之罪也實著於其時章甫韋布俱以耳聞目見摭公孝行德誼賙恤之事悉陳于營邑及繡衣之狀而于今幾代尙不能上達事遂寢矣不肖竊懽夫世愈遠而跡愈泯謹次生卒居家爲善之略以子孫相勗噫公之祖考贈參議公忘身殉國如彼烈節尙未蒙易名之典以公根天之大孝終未有綽楔之儀公之子穩城府使赴敵殲魁策勳奮武而猶未顯職之贈可勝惜哉子孫殘劣以若先祖忠孝未能顯揚人無得而知者亦勝通哉配貞夫人南原尹氏內瞻寺直長就甲之女某年生某年卒合祔如禮有五男三女男長諱善夏嘉善大夫慈山府使次諱喜集嘉善大夫穩城府使奮武原從一等功臣女靑松沈得謙士人也子喜成喜福喜輔女迎日鄭習良察訪仁同張懿紹及第武判書鵬翼子也內外宗支曾玄總百餘人

 


●지중추부사증호조판서가애경주이공행장 역문

(知中樞府事贈戶曹判書嘉崖慶州李公行狀 譯文)
-5세손(五世孫) 태형(泰炯) 찬(撰)

 

충(忠)과 효(孝)는 인간의 가장 떳떳한 행동이라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나라에도 충성할 것이요,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은 부모에게도 효도할 것이니 충과 효는 본시 두 가지 행동이 아니므로 부모에 효도하는 마음을 미루어 형을 공경하고 친척 간에 돈목하며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을 미루어 가난하고 궁곤한 사람을 돕나니 이로 미루어 볼진대, 충효에 근거를 두지 아니함이 없는지라. 귤(橘)을 품에 싼 거와 베갯머리에 부채질한 것은 어린이에 효도요, 묘소 옆에 잣나무를 붙들고 우는 것과 육아(蓼莪)의 시를 읊으며 부모를 생각하는 것은 장성한 사람의 효도며 자기 몸을 버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난리를 당한 충성이라. 위급한 곳에 목숨을 건져 주는 것은 사랑과 충성을 나눔이라 예로부터 충효가 다 온전하기를 어려운 일이나 온전히 충효를 보전한 사람은 공에 처음 보았도다.
공의 성은 이씨(李氏)요, 휘는 홍조(弘肇)며 자는 군원(君遠)이며 호는 가애(嘉崖)니 경주(慶州)에서 나온 집이다. 시조(始祖)의 휘는 알평(謁平)이니 신라(新羅) 시조(始祖)를 도와 창업공신(創業功臣)이 되었고 뒤에 휘 지수(之秀)가 있으니 금자광록(金紫光祿) 삼중대광(三重大匡) 좌복야(左僕射) 월성군(月城君)에 봉(封)했고 본조(本朝, 조선朝鮮) 때에 화헌공(花軒公) 휘 만실(蔓實)이 있으니 이조판서(吏曹判書)요, 여러 대를 전해서 휘 희수(希壽)는 군수(郡守)니 공의 고조부며 증조의 휘는 석립(碩立)이니 현감(縣監)이요, 조의 휘는 억(檍)이니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사절신(死節臣)으로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정려(旌閭)를 받았고 부의 휘는 경창(慶昌)이니 참봉(參奉)으로 호조참판(戶曹參判)을 받아다. 비(妣)는 증정부인(贈貞夫人) 평양조씨(平壤趙氏)니 첨추(僉樞) 경철(慶哲)의 따님으로 3남을 낳으니 공이 장남이라.
현종(顯宗) 임인(壬寅) 12월 24일에 출생하다. 어릴 때부터 지극한 성품이 있었고 밥 먹을 무렵에 능히 말을 했으며 아이들과 놀다가도 이상한 과일이라도 하나 생기면 양친한테 갖다 드리고 부모가 편치 않으면 곁에 잠시라도 떠나지 않으며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미음을 권하고 미음이 끝나면 억지로 밥을 권하니 하늘에서 타고난 효성은 어릴 때부터 나타나니 이것이 황향(黃香)과 육적(陸績)의 효도라. 장성해서는 낯빛과 얼굴을 부드럽게 하여 봉양하되 입에 맞는 것은 무엇이든 부모 요구에 따르고 가정에서 행한 착한 일들은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으나 특이한 것은 모친의 병환에 손가락을 물어 피를 내어 먹이고 신넙지(허벅지) 살을 베어 부모께 드려 위급한 병환을 살려냈고 돌아가신 후에는 너무 애통하여 사람들이 혹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권하면 더욱 눈물을 흘려 곁에 사람을 감동하게 하더니 장사를 지낸 뒤에 산소가 30리 밖에 있는 데도 초하루 보름(기일忌日)에는 반드시 성묘하되 차고 더운 날씨에 상관없이 산소에 가서 너무너무 슬피 우니, 사람이 차마 못 볼 광경으로 6년을 하루같이 하니 향중(鄕中)이 다 효자라 일컬으니 이것이 부모 생전 사후 자식의 도리를 다함이라.
생활이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없는 사람 구원하기를 좋아하고 출가한 누이동생 조카도 보호하기를 게을리 아니하고 그 밖에 일가친척에도 돈목(敦睦)한 일은 범노공(范魯公)도 이보다 더하지 않으리라. 흉년이 들면 곡식을 풀어 굶어 죽을 사람을 구출한 것이 만(萬)으로 계산하니 부처님과 흡사케 하니 이는 걱정을 논여함이라. 이 효성(孝誠)과 우애(友愛)와 충심(忠心) 세 가지를 겸한 사람은 옛날에도 드문 일인데 항상 재주와 국량이 남보다 뛰어나고 지모(智謀)와 장략(將略)이 보통에 지나니 큰일을 맡기고 큰 의논을 결정하는데 구애되는 일이 없으나 일찍부터 과거에 뜻이 없어 나물 먹고 글 읽으며 산과 물을 즐기는 어짊과 지혜가 있었으나 70이 넘어서 아들의 귀(貴)로 가선대부(嘉喜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고 80이 되어 수직(壽職)으로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으니 사후(死後)에 차자의 공로로 자헌대부(資憲大夫) 호조판서(戶曹判書) 의금부(義禁府) 도총관(都摠管)을 증직(贈職)받다. 공이 일찍 좋은 시절을 만나서 그 역량과 포부를 한번 펴봤으면 그 이름이 어찌 이에 그쳤으리오.
영조(英祖) 갑자(甲子) 9월 17일에 졸하니 향년(享年)이 83이라. 8, 90을 건강하니 그 수(壽)를 얻었고 재산은 모아서 흩었으니 그 부(富)도 누렸고 부귀해도 교만치 않으니 강녕(康寧)함이고 효우(孝友)하고 돈목(敦睦)하니 덕(德)을 좋아함이요. 순하게 살고 편이 죽으니 고종명(考終命)을 한지라 이 오복(五福)*) 을 공이 다 누렸으니 어찌 위대하지 않으리오. 어느 날에 덕산군(德山郡) 외야면(外也面) 금치리(金峙里) 신당산(新棠山) 참의공(參議公) 묘소 아래에 유좌(酉坐)로 장사지내다. 공은 옛 순박하고 아담한 풍자와 충후(忠厚)하고 겸양한 심정이며 널리 사랑하고 친애하는 행동이 옛 군자(君子)의 유풍(遺風)이 있어 곁에 가면 마음부터 취하고 들으면 느낌부터 새로우니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명예는 차등이 없는지라, 몰세(沒世) 후 알든 모르든 간에 다 아껴야 했고 문상하고 슬퍼해서 묘에선 나무가 굵어 아름이 되고 사람들이 사모하는 것은 능히 잊을 수가 없음이라. 덕(德)은 잠잠한 속에서 기르고 빛은 고요한 속에 쌓나니 나 같은 것이 좀 더 찬양코자 하나 어찌 그 실상을 캐리요. 그 말이 옹졸하면 선조(先祖)의 높은 덕이 후세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요. 그 말이 너무 과장하면 누가 믿으리오. 이런 입장에서 어찌 글로 쓸 수 있으며 말로 할 수 있으랴. 불초(不肖)한 이 사람이 한두 가지 전하는 말을 인용하여 참람(僭濫)하고 아첨(阿諂)한 죄나 면할까 한다. 사실을 지을 그 당시에도 장보위포(章甫韋布)가 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을 위주로 공의 효행(孝行)과 덕(德)으로 남을 구휼(救恤)한 일을 기록하여 감영(監營)과 수의사도(繡衣使道)에 올린 장제가 지금까지 몇 대를 내려오면서 위에까지 올라가지도 않고 일이 희미해지니 내가 생각건대 대가 멀어질수록 자취는 더욱 암흑 속에 빠질까 두려워해서 생전 사후 착한 일 대강을 적어 자손들이 서로 노력하기를 바란다. 공의 조부 참의공(參議公)이 내 몸을 던져 나라를 위함이 저같이 열열(烈烈)하나 아직 큰 은전(恩典)을 받지 못하였으니 공과 같은 출천대효(出天大孝)로도 끝내 흡족한 은전이 없었고 공의 아들 온성부사(穩城府使)가 적과 싸워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책훈(策勳)되고도 현직이 희미하니 아깝지 아니한가. 자손이 한미(寒微)하여 선조(先祖)의 충효를 드러내 밝히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 또한 통석한 일이로다.
배(配)는 정부인(貞夫人) 남원윤씨(南原尹氏)니 내섬시직장(內瞻寺直長) 취갑(就甲)의 따님이다. 생사(生死) 연월일은 모르고 공의 묘와 합폄(合窆)이다. 5남 3녀가 있으니 장남에 희하(善夏)니 가선대부(嘉善大夫) 자산부사(慈山府使)요, 다음 아들은 희집(喜集)이니 가선대부(嘉善大夫) 온성부사(穩城府使) 문무원종(奮武原從) 일등공신(一等功臣)이요, 딸은 사인(士人) 청송(靑松) 심득겸(沈得謙)에 출가했고 다음 아들은 희성(喜成)·희복(喜福)·희보(喜輔)요, 딸은 찰방(察訪) 영일(迎日) 정습양(鄭習良)과 급제(及第) 인동(仁同) 장의소(張懿紹)에게 출가하니 판서(判書) 붕익(鵬翼)의 아들이다. 안팎 증손·현손이 백여인(百餘人)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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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복(五福) : 유교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의 복. 곧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貴)와 자손중다(子孫衆多)를 꼽기도 한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