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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공 8세손 신암공 이억] 贈兵曹參議旌閭愼庵李公行狀(증병조참의정려신암이공행장)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2. 13:57

□판사공(判事公) 8세손 신암공(愼庵公) 이억(李檍)

 

【계대(系代)】 ②판사공(判事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①연천현감공(璉川縣監公) 사강(思剛) → 2世孫 ①사헌부집의공(司憲府執義公) 계손(季孫) → 3世孫 ①성균진사공(成均進士公) 당(瑭) → 4世孫 의금부도사공(義禁府都事公) 이화(以和) → 5世孫 ③증이조참판공(贈吏曹參判公) 약용(躍龍) → 6世孫 ①금헌공(錦軒公) 희수(希壽) → 7世孫 ①보은현감공(報恩縣監公) 석립(碩立) → 8世孫 ①신암공(愼庵公) 억(檍)

 

 

贈兵曹參議旌閭愼庵李公行狀(증병조참의정려신암이공행장)
-文衡領相(문형영상) 趙斗淳(조두순) 撰(찬)

 

猗我東以海隅偏邦一何多節義大丈夫哉 聖作五百年間其諸赫赫烈烈之照垂方策有非蟸測所可勝擧而今於故贈兵曹參議旌閭李公又見其一也公諱檍字汝樑號愼庵系出慶州高麗三重大匡月城君之秀之裔月城生諱揆官參理諡貞烈貞烈生諱元林僕正僕正生諱蔓實吏判吏判生諱良直司導寺正寺正生諱思剛吏議吏議生諱季孫執義執義生諱瑭進士寔公五代祖也高祖諱以和都事曾祖諱躍龍參奉祖諱希壽郡守考諱碩立縣監妣淑夫人咸平鄭氏世恭女公以 皇明萬曆乙卯三月十一日生幼有器度喜怒不形行止中規矩遊戲無較爭性李友甫六歲大交出外雖夜不食以待得美味海輒奉獻遇新物不敢先嚼稍長狀貌魁偉膂力兼人晨昏克殫其誠溫淸俱適其宜如有湯節則憂形于色左右力圭夜不解帶文章煥爛特其餘事及冠修齊備至閤門整肅敦族撫姻靡不淶洽事長交友一主敬信鄕黨有識咸稱誦之期其鵬程恢恢萬里也公天資不凡施爲磊落對書先究義理恒言不外忠孝朗然有康濟之意燁然有奮揚之氣旁涉兵家潛抱韜略暇日山庭慣習騎射逮丙子年二十二赴會闈見絀以風儀學行見推多負笈相從者與具相公仁垕李兵使義培每有所諮訪二公愛其偉器深有剡用之志矣爲養奉地退修業於德山鄕廬時建虜猖獗直擣畿城李公節度本省以公有忠義薦于朝而檄召之公方食推床而起禀于母夫人曰犬羊逼都 乘輿播越誠臣民共憤之秋也雖未曾身恭階級以簪纓餘蔭奉侍飮啄亦雨露恩造何忍有檄不應坐親其危乎謹當掃淸羣醜早來拜覲夫人許之顧謂其妻曰善養吾母好保孩兒亂靖當即還仍率家僮七十直赴于廣州之雙嶺陣是時王城內陷援兵外阻孤堞受月暈之苦戰士有瓦解之勢公慷慨衝激勵聲罵將佐之逃散者曰 君父受辱主師逼危汝輩偷生尙此安適向鄕山揮淚再拜脫所着藍袍咋指出血書其姓名授從奴德金曰吾今自此訣矣若歸遺我家以識吾死日且待孩兒長成留以示之即丁丑正月初三日也遂彎弓射賊矢盡兵逼公植立不勤以劔摶擊劔爲之折獨所殲腥酋不知其級而身且被幾匈鋒矣遂與主師同隕陣前翌日夜半公所騎馬掛藍袍血書悲鳴門外家人始識公遇害而德金亦踵至俱以其事告之馬亦日夜悲鳴不食而斃鳴呼非公血忠出於至誠何以得此豚魚之孚感耶公之死顧何等節義大丈夫哉戰卒之生還者以其目擊追來口傳語到公效死時事未嘗不嗚咽而贊歎矣當時凶冠放火焚人屍公骸竟未收仍以血書遺衣葬于德山縣外北面金峙酉坐原其後縣人縣監李謹行等百餘人摭實請褒朝論持疑至於行查本道 肅宗壬午始蒙 恩贈兵曹參議仍命旌閭表厥宅里玆豈非秉忠殉國凛然不可奪之節自有終不可掩者哉配贈淑夫人竹山朴氏挺芝女于歸七年遭衣帶之訣不堪終天之痛屢欲自裁上念尊姑下恤孩而隱忍未遂居廬號隕盖六年如一日遇忌日沐浴將事哀懄幾絶旣歿合祔如禮有一男慶昌參奉贈參判男弘肇知樞贈判書弘肇男喜夏府使喜夏繼男彦培郡守彦培男啓宗通德啓宗繼男浚郁宣傳官浚郁男南柱南柱男箕中箕中男春鍵內外旁支總屢百人若夫爲公著述則有海藏申尙書作公旌閭記引黃太史陪臣傳而特正謬宣鬱橘山李相公撰公墓碣銘證李藍浦並褒事而使同功齊休於是乎公之死益炳然明白公之節又有所卓絶者矣所以蔑學淺見之不敢異意立言一切叅考其家狀及諸公實錄而略之然以公素志之蓄積惜其職無見帶時巳不逮倉猝隻騎未展驥步遂使靑萍結綠埋光於萬刼之灰秉筆百戰之下者猶不禁歔欷愴憾况公當日之激憤抱恨倘何如哉噫以公大節九泉之下庶可與斥和諸君子幷轡而遊其無愧也夫贊曰
於赫鍾靈秉忠曰良月城古家雞林流芳器偉齠齕長益炳朗孝友敦敬餘事文章鸞停鵠峙氣宇堂堂追隨名碩獎詡弘量維歲赤鼠魯花東搶湖節馳檄王事靡遑辭母上鞍魁傑棟樑我師不利雙嶺之陽矢盡劔折植立色莊血淋藍袍淚拜家鄕蛇奔豕突疇不荒忙公獨屹然忠壯幷光半夜門外馬鳴哀傷僕夫踵至見說頗詳忠魂倘返血衣于岡鶴髮隕號兒泣婦孀嗚呼公忠大明綱常何以報賞秩顯旌彰何以發揮橘山海藏皇天鑑仁有後蕃昌

 


●증병조참의정려신암이공행장(贈兵曹參議旌閭愼庵李公行狀) 역문(譯文)
-문형영상(文衡領相) 조두순(趙斗淳) 찬(撰)

 

우리 동방(東方)은 바다 한 구역 적은 나라로 어찌 절의(節義)를 지킨 대장부(大丈夫)가 그리도 많은가. 개국(開國) 5백 년 동안 열열(烈烈)하고 혁혁(赫赫)한 방책이 나에 조그마한 소견으로 다 말할 수 없으나 이제 증병조참의(贈兵曹參議) 정려이공(旌閭李公)에 또 하나 보았도다. 공의 휘는 억(檍)이요, 자는 여량(汝樑)이며 호는 신암(愼庵)이니 경주이씨(慶州李氏)다. 고려(高麗) 삼중대광(三重大匡) 월성군(月城君) 지수(之秀)의 후손이요, 휘 규(揆)를 생하니 참리(參理)에 시(諡)는 정렬(貞烈)이고 정렬(貞烈)이 휘 원림(元林) 생하니 복정(僕正)이요, 복정(僕正)이 휘 만실(蔓實)을 생하니 관 이판(吏判), 이판(吏判)이 생 양직(良直)하니 시도시정(司導寺正)이요, 시정(寺正)이 생 사강(思剛)하니 이의(吏議)요. 이의(吏議)가 생 계손(季孫)하니 집의(執義)요, 집의(執義)가 생 휘 당(瑭)하니 진사(進士)니 공의 5대조라. 고조의 휘는 이화(以和)니 도사(都事)요, 증조의 휘는 약용(躍龍)이니 참봉(參奉)이요. 조의 휘는 희수(希壽)니 군수(郡守)요, 고의 휘는 석림(碩立)이니 현감(縣監)이요, 비(妣)는 숙부인(淑夫人) 함평정씨(咸平鄭氏) 세공(世恭)의 따님이다.
공의 황명(皇明) 만력(萬曆) 을묘(乙卯) 3월 11일에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어 희로(喜怒)가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며 행동이 규율에 맞으며 성품이 효성 있고 우애 있어 나이 겨우 6세 때 조부께서 출타하면 비록 밤이 돼도 조식을 들지 않으며 기다리고 아름다운 음식과 새로 난 것을 보면 감히 먼저 입에 넣지 않으며 장성함에 의표(儀表)가 당당하고 힘이 과인(過人)하며 혼정신성(昏定晨省)1) 을 정성껏 하고 동온하정(冬溫夏凊)2) 에 그 편의를 다하며 부모가 병환이 있으면 근심이 만면하여 약을 썰고 밤에도 옷과 띠를 풀지 아니하고 문장(文章)도 훌륭하나 예사로 알더라. 어른이 되니 수신제가(修身齊家)에 빈틈이 없고 연아 친척 간에 돈독하고 우애하며 어른을 섬기고 벗을 사귀는데 공경함과 믿음을 위주로 하니 지방 유식한 이들은 다 칭찬하여 넓고 넓은 앞길이 붕정만리(鵬程萬里)3) 과 같다 하더라. 타고난 천품(天稟)이 비범하여서 하는 일이 정당하고 책을 대하면 의리부터 연구하고 말마다 충효를 일컬으니 세상을 건질 큰 뜻을 두고 병서(兵書)를 익혀 도략(韜略)을 품었고 여가마다 말 타고 활쏘기를 연습하더니 병자년(丙子年) 22세에 모였다가 잘못되었으나 기상과 학행으로 추대를 받아 책을 지고 배우러 오는 자 많더라.
정승(政丞) 구인후(具仁垕) 씨와 병사(兵使) 이의배(李義培)로 더불어 상종하면서 매일 묻고 의논하니 두 공이 큰 인물이라 사랑하여 나라에 쓸 뜻이 있더니 부모 봉양할 땅을 찾아 덕산군(德山君) 집을 수축(修築)하였더니 그때 청나라가 창궐하여 우리 서울을 침략하니 충장공(忠壯公, 이의배李義培)이 본도(本道) 절도사(節度使)가 됨에 공을 충의지심(忠義之心)4) 이 있다 하여 조정에 천거하여 부르니 공이 그때 상을 받았다가 상을 밀고 일어나 모친에게 삶아 가로대, 짐승 같은 것들이 서울을 침략하여 임금님이 피난하니 백성들의 궐기할 때라. 몸에 벼슬을 받은 일은 없으나 본시 벼슬하던 집 자손으로 일상생활이 나라에 은덕(恩德)이 아닌 것이 없으나 어찌 앉아서 나라에 위급함을 보기만 하오리까. 나아가 오랑캐를 격멸하고 돌아와서 뵈리다. 모부인(母夫人)이 허락하니 그 아내를 보고 부탁해 가로대, 노모를 잘 봉양하고 어린아이를 잘 보호하라. 난리가 평정되면 곧 돌아오리라 하고 집에 부리던 노복(奴僕) 70명을 거느리고 곧바로 광주(廣州) 땅 쌍령진(雙嶺陣) 터로 달려가니 이때 성은 무너지고 구원병은 막혀 외로운 성이 괴로움을 겪고 군사는 와해한지라 공이 분을 내어 장병 중에 도망하는 자를 꾸짖어 가로대, ‘임금은 욕을 당하고 주장(主將)은 위태로운 지경에 있는데 너희들만 살자고 어디로 도망하느냐?’ 하며 고향산천(故鄕山川)을 향하여 눈물을 뿌려 배절하고 입었던 남색 도포를 벗어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그 성명을 쓰고 따라온 노복(奴僕) 덕금(德金)에 주면서 ‘나는 이 길로 전사할 터이나 너는 집에 돌아가서 나의 죽은 날이나 알리고 어린 것이 장성하거든 이 옷을 두었다가 보이라’ 하니 그날이 정축년(丁丑年) 정월(正月) 초삼일(初三日)이다.
활을 당겨 적을 쏘다가 화살이 떨어지니 적병(敵兵)이 달려들거든 움직이지 않고 서서 칼로 적을 베니 칼이 또한 부러지는지라. 혼자 적을 죽인 것이 수도 모르나 결국은 적에게 죽으니 주장(主將)과 함께 진중(陣中)에서 순국(殉國)하니 이튿날 밤에 공이 타던 말이 혈서를 쓴 도포를 안장 위에 싣고 문밖에 와서 슬피 울거늘 집사람들이 공이 순국한 것을 알았고 덕금(德金)이 뒤따라 와서 그 전몰(戰歿)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말도 밤낮 울면서 먹지 않고 죽으니 공의 충성심 지성에서 나지 않았으면 짐승까지 감화하랴. 공의 순국이 어떤 대장부 절의(節義)인가. 전졸(戰卒)들 살아온 자 그 본대로 전하는 말을 듣다가 공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슬퍼하고 탄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오랑캐들이 불을 놓아 시신을 모두 다 태워 공의 유해(遺骸)도 찾지 못하고 그 혈서와 도포도 덕산현(德山縣) 외북면(外北面) 금치리(金峙里) 유좌(酉坐)에 장사지냈다. 그 뒤에 현인(賢人)과 현감(縣監) 이근행(李謹行) 등 백여 명이 사실을 기록 상정하고 포상을 요구했으나 조정공론이 의심을 같고 본토에 와서 조사까지 하고 숙종(肅宗) 임오년(壬午年)에 비로소 은전(恩典)을 입어 병조참의(兵曹參議)를 증직(贈職) 받고 인해 정려(旌閭)를 명하여 마을에 세우니 이것이 어찌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늠름한 절의(節義)는 끝끝내 덥혀 있을 수 없음이 아니리요.
배(配)는 숙부인(淑夫人) 죽산박씨(竹山朴氏) 정지(挺芝)의 따님이니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을 영결(永訣)하고 망극한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몇 번이나 자결하고자 하다가도 위로 시부모님이 계시고 아래로는 어린 고아가 있으므로 죽지 못하고 살아서 6년간을 여막(廬幕)에서 호흡하기를 하루 같이하고 제삿날을 당하면 목욕재계하고 애통 기절하더니 나중 졸(卒)한 뒤 예(禮)에 따라 합장(合葬)했다. 1남 경창(慶昌)은 참봉(參奉)으로 참판(參判)을 증직(贈職) 받았고 경창(慶昌)의 아들 홍조(弘肇)는 지중추(知中樞)로 판서(判書)를 증직(贈職) 받았고 홍조(弘肇)의 아들 희하(喜夏)는 부사(府使)요, 희하(喜夏)의 양자(養子) 언백(彦培)은 군수(郡守)요, 언백(彦培)의 아들 계종(啓宗)은 통덕랑(通德郞)이요. 계종(啓宗)의 양자(養子) 준욱(浚郁)은 선전관(宣傳官)이요, 준욱(浚郁)의 아들은 남주(南柱)요, 남주(南柱)의 아들은 기중(箕中)이요, 기중(箕中)의 아들은 춘건(春鍵)이니 내외자손(內外子孫)이 여러 백 명이라.
만일 공을 위하여 글을 지을진대 해장(海藏) 신상서(申尙書)가 공의 정려기(旌閭記)를 지을 때 황태사(黃太史), 배신전(陪臣傳)을 인용하여 그른 것을 바로잡아 억울함을 풀었고 귤산(橘山) 이상공(李相公, 이유원李裕元)이 공의 묘갈명(墓碣銘)을 지을 때 이남포(李藍浦)의 일과 한 대 모아보면 공훈(功勳)과 아름다움이 같다 하였으니 이에 공의 순국(殉國)이 더욱 밝아져서 그 절의(節義)가 더욱 높아지니 나와 같은 천견(淺見)이 감히 다른 소리를 할 수 없고 일체(一切) 가장(家狀)을 참고하고 제공(諸公)들의 실록(實錄)을 참고해서 대략 이 글을 쓰나 공이 본래 큰 뜻을 길렀는데 시운(時運)이 불길하여 창졸간(倉卒間) 난리를 당하여 포부와 도략을 만분의 일도 쓰지 못하고 사라져간 일을 백 년 뒤에 붓을 잡은 사람도 슬픈 감회를 금치 못할진대 더욱 공의 당일 격분과 한을 품고 감히 어찌하였으랴. 슬프다, 공이 지하에 가서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척화신(斥和臣)과 더불어 놀더라도 부끄럼이 없을진대 찬왈(贊曰)
빛나는 혼령은 충심(忠心)을 가진 현량(賢良)이로다. 월성이씨(月城李氏) 옛 가문이요, 계림(雞林, 鷄林)에서 흘러온 자손이라. 어릴 때부터 그릇이 크더니 장성하면서 더욱 명랑해지다. 효도하고 우애하며 돈독하고 공경함이 제일이요, 문장(文章)은 여벌이라 난조(鸞鳥, 상상의 새) 같고 곡(鵠, 고니)과 같이 풍모가 당당하다. 따라서 이름이 높이나니 용맹과 도량으로 장발되다. 그해 병자년(丙子年)에 오랑캐가 우리나라를 침략하다 부름을 받고 달려갈 때 나랏일이라 지체할 수 없어 어머님께 하직하고 말에 오르니 동량의 재목이라. 우리 군사가 쌍영(雙嶺)에서 불리하여 화살이 다하고 칼이 부러지나 씩씩한 얼굴로 한자리에 섰으니 남포(藍袍)에는 유혈이 낭자하고 고향을 향하여 눈물로 배별(拜別)하다. 뱀과 같이 빠르고 멧돼지같이 충돌하는 적 앞에 누가 황망(慌忙)하지 않을까.
공이 홀로 우뚝 서서 충장공(忠壯公, 이의배李義培)과 같이 전사하니 밤 중문밖에는 말이 와서 슬피 울고 종이 와서 자세히 설명했다. 충신의 혼령이 담겨온 혈서 쓰인 옷을 묻어 묘를 쓰다. 모친은 호흡하고 모자도 슬피 울다. 슬프다, 공의 충성은 삼강오상(三綱五常) 삼강오상(三綱五常) : 삼강과 오상. 곧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이르는 말이다.
에 크게 밝으니 무엇으로 보상할까. 벼슬을 증직(贈職)하고 정려(旌閭)를 세웠도다. 어떻게 발휘할꼬.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의 해장(海藏)이 있도다. 황천(皇天)이 어진 것을 살피니 후손이 번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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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정이신성(昏定而晨省) : 밤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이른 아침에는 부모의 밤새 안부를 묻는다는 뜻으로, 부모를 잘 섬기고 효성을 다함을 이르는 말
2) 동온하정(冬溫夏凊) :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게, 더운 여름에는 서늘하게 한다는 뜻으로, 부모를 잘 섬기어 효도함을 이르는 말.
3) 붕정만리(鵬程萬里) : 붕새가 날아가는 길이 만 리. 앞날이 밝고 창창한 것, 또는 원대한 계획이나 사업을 비유하는 말이다.
4) 충의지심(忠義之心) : 충성스럽고 의리 있는 마음.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