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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공 8세손 신암공 이억] 贈兵曹參議愼庵李公旌閭重修記(증병조참의신암이공정려중수기)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1. 16:58

□판사공(判事公) 8세손 신암공(愼庵公) 이억(李檍)

 

【계대(系代)】 ②판사공(判事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①연천현감공(璉川縣監公) 사강(思剛) → 2世孫 ①사헌부집의공(司憲府執義公) 계손(季孫) → 3世孫 ①성균진사공(成均進士公) 당(瑭) → 4世孫 의금부도사공(義禁府都事公) 이화(以和) → 5世孫 ③증이조참판공(贈吏曹參判公) 약용(躍龍) → 6世孫 ①금헌공(錦軒公) 희수(希壽) → 7世孫 ①보은현감공(報恩縣監公) 석립(碩立) → 8世孫 ①신암공(愼庵公) 억(檍)

 


贈兵曹參議愼庵李公旌閭重修記(증병조참의신암이공정려중수기)
-七世孫(7세손) 容柱(용주) 述(술)
-八世孫(8세손) 箕轍(기철) 書(서)

 

噫此旌閭即我七代祖贈兵曹參議諱檍字汝樑號愼庵之表忠閣也公生於 皇明萬曆乙卯歲自幼孝行之卓異節義之高明悉載于行狀而二十二歲丙子猝當胡亂白衣赴難越明年丁丑正月三日殉節于廣州雙嶺陣而未趁表旌粤在 肅廟壬年 命旌贈職寔出於 朝家奬忠報功之盛典也伊來百有五十餘年上雨傍風構櫨朽頹丹靑渝滅其在象賢行路猶然嗟惜况爲公雲仍者之傷憾悽愴倘復如何哉不肖孫容柱每於省墓時心欲修補積有年所只因財力之未辦莫遂其誠徒切悽憾丙辰十二月政得除南海令莫非公之冥冥中厚蔭也多少所入辦在一身烏可以時日遲緩哉然職業有守末由躳叅再明年戊午夏使從叔浚采甫董役九日告成以遂多年抱懷之誠從此而公之髙節復可傳於幾百年之久矣庶或爲報答之萬一哉謹構數行之記以揭旌閣之右崇禎紀元後四戊午仲夏下澣記

 

 

●증병조참의신암이공정려중수기(贈兵曹參議愼庵李公旌閭重修記) 역문(譯文)
-7세손 용주(容柱) 술(述)
-8세손 기철(箕轍) 서(書)

 

슬프나 이 정려(旌閭)는 나의 7대조 증병조참의(贈兵曹參議) 휘 억(檍), 자 여량(汝樑), 호 신암(愼庵)공의 표충각(表忠閣)이다. 공이 황명만력(皇明萬曆) 을묘년에 출생하니 어릴 때부터 효행(孝行)이 뛰어나고 절의(節義)의 높은 행장(行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22살 병자년에 호란(胡亂)을 당하여 백의처사(白衣處士)로 난리에 종군하여 다음에 정축 정월 초 3일에 광주(廣州) 쌍령진(雙嶺陣) 터에서 순국한 후 정려(旌閭)를 받지 못했으니 숙종(肅宗) 임오년에 정려(旌閭)를 내리고 벼슬을 증직(贈職)하니 이것이 조정에서 충절(忠節)을 장려하고 공훈을 보답하는 법이다.
그 후 150년이 지나는 동안 비와 바람을 견디느라고 서까래와 추녀가 썩고 단청이 벗겨지니 어진 이를 숭상하는 집이 이 모양 되니 노상 행인도 애석히 여기는데 그 자손이야 오죽하랴. 불초손(不肖孫) 용주(容柱) 사당에 참배할 때마다 집을 고쳐야 하겠다고 마음에 다짐은 여러 번 했으나 경제가 허용치 않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슬퍼만 했더니 병진 12월에 정득(政得)이 남해령(南海令)이 되니 공이 지하에서 도우심이라. 다소간 수입으로 혼자서 예산을 충당하자니 시일의 조만이 관계있으랴. 직장이 있으니 몸소 일에 참여치 못하고 명년(明年) 무오(戊午) 여름에 종숙(從叔) 준채(浚采)가 역사(役事)를 시작하여 9일 만에 준공하니 자손이 여러 해 동안 마음에 품었던 일을 이룬 것이다. 이로부터 공의 높은 절의(節義)가 다시 몇백 년 위에 밝아짐이라. 공이 바친 공적에 비하면 만분의 일이나 보답이 될까 삼가 두어 줄 기문(記文)을 지어 정려각(旌閭閣)의 오른편에 거노라.

 

숭정기원후4 무오 중하 하한 기(崇禎紀元後四戊午仲夏下澣記)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