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게시판/기◆행장◆비명

[판사공 8세손 신암공 이억] 贈兵曹參議李公㫌閭碑閣記(증병조참의이공정려비각기) 庚申(경신)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1. 16:27

□판사공(判事公) 8세손 신암공(愼庵公) 이억(李檍)

 

【계대(系代)】 ②판사공(判事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①연천현감공(璉川縣監公) 사강(思剛) → 2世孫 ①사헌부집의공(司憲府執義公) 계손(季孫) → 3世孫 ①성균진사공(成均進士公) 당(瑭) → 4世孫 의금부도사공(義禁府都事公) 이화(以和) → 5世孫 ③증이조참판공(贈吏曹參判公) 약용(躍龍) → 6世孫 ①금헌공(錦軒公) 희수(希壽) → 7世孫 ①보은현감공(報恩縣監公) 석립(碩立) → 8世孫 ①신암공(愼庵公) 억(檍)

 


贈兵曹參議李公㫌閭碑閣記(증병조참의이공정려비각기) 庚申(경신)
-禮判(예판) 申錫愚(신석우) 撰(찬)
-直提學(직제학) 金炳地(김병지) 書(서)

 

崇禎丙子。建虜東搶。陪臣殉天子。職司殉國。將佐殉主帥。赫赫耀耳目垂簡冊。不可勝記。何其烈也。獨慶州李公檍。死義不讓諸人。事蹟幾泯而著。㫌褒久靳而施。鳴呼。若是者何以勸忠義之士乎。豈以身處偏裨。名不達於朝廷而然歟。余攷公家狀。其立節事甚詳。公慶州人。字汝樑。先世有參贊貞烈公諱揆。簪組相禪。至縣監諱碩立。於公爲考。公素有至性。長益倜儻。年二十餘而當丙子。公忠道節度李。李忠義培素知公。檄召同赴難。公慷慨辭母夫人。從戎戰于廣州之雙嶺。虜騎乃逼。士伍不能支。公侍主帥。植立不動。發矢矢盡。擊劒劒折。遂脫身上藍袍。咋指書血付家奴。遂與主將同殉。實丁丑正月。其立節炳炳有如此焉。及其請褒。朝議持疑。至於行査本道。亂時事易至泯沒。亦有如此矣。余甞讀黃太史陪臣傳。其叙李忠壯事曰。義培陣雙嶺。淸人進廹。義培衣虎裘立陣前。射虜不已。諸將佐皆亡去。獨裨將李億營奴曺丑生在。今以公家狀考之。檍字之訛而爲億。明白無疑。嗚呼。公之一死。可謂磊磊軒天地。而褒贈由於多士之籲。事狀徵於老卒之口。名字又訛於太史之筆。寧不爲忠魂義魄之所沉欝也。㫌閭旣行。公之後孫閣而覆之。歲久而圮。將重新之。請余爲記。謹撮其狀而爲之辭。末附陪臣傳事。以正太史氏之謬。崇禎紀元後四庚申孟夏。資憲大夫禮曹判書弘文提學。東陽申錫愚撰。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11
*한국문집총간 > 해장집 > 海藏集卷之十二 / 記 > 贈兵曹參議李公㫌閭碑閣記 庚申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1209A_0120_010_0310_2018_B127_XML

 

 

●증병조참의이공정려비각기(贈兵曹參議李公㫌閭碑閣記) 경신(庚申) 역문(譯文)
-예판(禮判) 신석우(申錫愚) 찬(撰)
-직제학(直提學) 김병지(金炳地) 서(書)

 

숭정병자(崇禎丙子)에 오랑캐가 동방을 침략하니 신하들은 천자(天子)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직책을 가진 사람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장정들은 주장(主將)을 위해 목숨을 바치니 혁혁한 공적이 세상 사람 귀와 눈을 놀라게 하며 역사책에도 다 적지 못하니 열사가 많으나 유독 경주(慶州) 이공(李公) 억(檍)이 의리에 죽고 공적이 다른 사람만 못지않건만 공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정려(旌閭)도 만시(晩時)에 건립되니 충의(忠義)의 사람을 장발하는데 이럴 수가 있을까. 일신이 조정에서 벼슬을 않고 이름이 조정에 들리지 않아 그런가.
내가 공의 가장(家狀)을 살펴보니 그 절(節)을 세운 사실이 상세히 적혔으며 공은 경주인(慶州人)으로 자는 여량(汝樑)이고 호는 신암(愼庵)이니 선세(先世)로부터 벼슬이 계속되었고 현감(縣監) 석립(碩立)은 공의 부친이다. 공이 어려서 성질이 고결하고 크면서 활달하여 나이 이십이 남짓하여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당하니 충도절도사(忠道節度使) 이공(李公) 의배(義培)가 일찍부터 공의 사람됨을 아는지라. 불러서 응원군으로 같이 가자 하니 공이 승낙한 후 모부인(母夫人)께 하직하고 광주廣州)의 쌍령(雙嶺) 전쟁터에 나감에 적병이 공격해오니 아병이 지탱을 못 하고 사산(四散) 도주하되 오직 공과 주장(主將)만이 남은지라. 활을 적에게 쏘다가 화살에 떨어지니 다시 칼을 들고 싸우니 칼이 다 부러진다. 위에 입었던 남의(藍衣)를 벗고 손가락을 끊어 혈서를 써서 따라온 종[奴]에게 주고 주장(主將)과 함께 죽으니 정축년(丁丑年) 정월(正月)이다.
그 절의(節義)를 따라 죽음이 떳떳함이 일월과 갖건만 난리가 끝난 뒤 공의 표창을 청하니 의심을 품고 본도(本道)에 와서 당시 일을 조사하니 난시(亂時) 일이라 빠지기 쉽다고 내 일찍 황태사(黃太史)의 글을 읽으니 그 전에 이충장(李忠壯) 일을 기록하였는데 의배(義培)가 쌍령(雙嶺) 땅에 진(陣)을 치니 오랑캐가 응전해 오거늘 의배(義培)가 갑옷을 입고 진(陣) 앞에 서서 오랑캐를 향하여 활을 쏘니 모든 장졸(將卒)들은 다 도망가고 다만 의사(義士) 이억(李億)과 종[奴] 조축생(曺丑生)이 남아 있었다 하였으니 이제 공의 가장(家狀)을 상고하니, 공의 이름 억(檍) 자를 억(億) 자로 그릇 적었음이 명백해졌다. 슬프다. 공의 한 번 죽음이 높기가 하늘과 같으나 그 공적을 표양(表樣)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의 신청에 따랐고 당시 순절하던 일도 다른 노졸(老卒)들의 입에서 나왔고 사기도 이름자를 그릇 적었으니 충혼의백(忠魂義魄)*)이 어찌 억울하지 않으리오.
정려(旌閭)가 한 번 내려지니 공의 후손들이 집을 세웠으나 세월이 오래 흐름에 다시 중수(重修)할새 나에게 기(記)를 청하니 내 그 가장(家狀)을 상고하여 글을 만들고 신하들이 전하는 일을 참고하여 사관의 그른 것을 밝히노라.

 

---------------------
*) 충혼의백(忠魂義魄) : 충성스럽고 의로운 혼백이라는 뜻으로, 충성과 절개의 정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