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문집/눌재유고이홍준

[訥齋遺稿] [附錄] 廟宇上梁文 (典籍李尙彦) <국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7. 14:58

눌재유고(訥齋遺稿) / 附錄


廟宇上梁文 (典籍李尙彦)

吾將安倣。仰高山而感情。道之所存。瞻靈宇而拭目。聯一家之俎豆。樹百世之風聲。地偏嶺南一頭。縣僻府北三面。居民朴略。徒有枝鹿之餘風。人物眇然。久寂山林之高義。不緣君子之至此。那使吾黨而有今。儒林接武而興。蓋由啓發之力。俗尙以文爲業。實籍變化之功。肆篤愛悅之誠。乃講尊奉之典。

恭惟我慵齋李先生。薄雲豪氣。瑞世奇姿。早歲得師而提撕。三絶餘事。畢竟齊名於李杜。一死猶光。
訥齋李先生。淸白故家。孝友至性。一部家禮。寔平生制行之師。二字名堂。揭晩節全身之範。
文峯鄭先生。成此宅相。有若天資。玩樂齋前。妙契誠正之旨。聳動朝右。深究本末之論。


猗歟三哲之挺生。豈非一代之豪傑。慨園林之荒茀。久父老之傷嗟。白石晴川。分明釣遊之淸境。吟猿飛鶴。彷彿倘來之英靈。竊稽古人之尊賢。多於鄕里而建廟。張杓之祀茂叔。必就遺墟而立祠。韓愈之送巨源。亦以祭社而爲祝。玆皆先獲之美意。正宜後學之悉心。蓋自數十年。已龜從而筮叶。嗟我二三子。奈時詘而擧嬴。深恨歲月之推遷。漸致芳塵之埋沒。幸今役車之稍暇。又値時日之孔良。入山取材。隱歡聲於鬼運。出力相役。騰喜氣於朋來。紛斧鉅之生風。屹厦屋於不日。都料巧匠。盈尺圖罔毫釐之差。宜春舊規。三先生聯伯叔之序。幾年綱紀於心上。一朝突凡於眼前。羣山排闥而送靑。若有情於感遇。一溪循除而鳴玉。緬餘興於臨淸。諒平素之攸寧。矧豆籩之斯潔。舅甥兄弟之同室。孝義風烈之一門。典刑可觀。頑夫廉而懶夫立。縟儀將擧。憂者嬉而病者蘇。悽愴熏蒿。誠之不可掩如此。薦裸興俯。人皆以有事爲榮。試擧雙虹。聊陳六偉。兒郞偉抛梁東。一髮陶山元氣中。朝暮靜觀雲起處。油然生意與人同。兒郞偉抛梁西。煙畔龜城望不迷。城下數間文節廟。高風直道古今齊。兒郞偉抛梁南。花山隱隱與天參。扶輿鬱積生人傑。屈指寧客一二談。兒郞偉抛梁北。階前一水連雙白。散爲萬壑合三溪。直泝淵源眞一脈。兒郞偉抛梁上。九萬昭昭璇宇朗。四望都無一點氛。餘氓復覩昇平象。兒郞偉抛梁下。煙火一村臨大野。處處吾伊講讀聲。喜看麗澤薰蘭麝。伏願上梁之後。菁莪興化。奎璧騰精。蔚乎衆賢之比肩。孰不取斯而成德。洞規家訓。斯爲培養之基。義氣英聲。無非感發之地。巋然枌社之一廟。永作標準於千秋。


*용눌재집(慵齋訥齋集) > 慵齋先生遺稿 > 附錄

*문봉집(文峯集)에는 제목이 《柏麓里社廟宇上樑文》으로 실려 있음.

*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9
*참조: 한국문집총간 > 문봉집 > 文峯先生文集卷之六 > 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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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준의 삼절(三絶)은 이백(李白)·두보(杜甫)의 명성과 나란히 할 만하다고 칭송하였다. <용재선생세보도(慵齋先生世譜圖)>의 기록에 의하면 백록사(栢麓社)는 이종준 형제가 제향된 곳이다.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http://kyujanggak.snu.ac.kr/home/index.do?idx=06&siteCd=KYU&topMenuId=206&targetId=379&gotourl=http://kyujanggak.snu.ac.kr/home/MOK/CONVIEW.jsp?type=MOK^ptype=list^subtype=sm^lclass=AL^mclass=^sclass=^ntype=mj^cn=GK04282_00



묘우 상량문廟宇上梁文
전적典籍 이상언李尙彦1)

내 장차 누구를 의지하랴. 높은 산처럼 우러르며 감동하고, 도를 간직하고 있는 사당을 우러러 바라보도다. 나란히 한집안 사람을 제향하여 백세의 교화를 세우니, 땅은 치우친 영남의 한 모퉁이요, 고을은 외져서 부 북쪽 삼면이 막힌 곳이로다. 거주하는 백성은 소박하여 순박한 유풍만 있고, 인물은 아득해져 오래도록 산림에 은거하는 고상한 의리 지닌 분이 없었네. 군자가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어찌 우리 고장에 오늘이 있게 되었으랴. 선비가 발자취를 이어 일어난 것은 깨우치고 열어 준 덕분이고, 풍속이 학문을 업으로 삼는 것을 숭상하게 된 것은 실로 변화시킨 공로에 바탕을 두었도다. 이에 사랑하고 기뻐하는 정성을 돈독히 하여 높이 받드는 전례典禮를 계획하도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용재 이 선생은 하늘에 닿을 듯한 호탕한 기상과 상서로운 세상의 남다른 자품을 지니셨도다. 젊어서 스승의 이끌어 주심을 받으니 삼절三絶은 여벌의 일이었고, 끝내는 이백·두보와 이름을 나란히 하였으니 한 번 죽어 오히려 빛났도다. 눌재 이 선생은 청백리의 옛집에서 태어나 효성과 우애의 지극한 품성 지니셨도다. 한 부 『가례』는 평생 행실을 가다듬는 스승이었고, 두 글자로 이름을 붙인 당에는 만년의 절조로 몸을 온전히 한 규범을 걸었도다. 문봉文峯 정 선생鄭先生2)은 이분들의 외손이 되니 타고난 자품이 있었네. 완락재玩樂齋3) 앞에서 성정誠正4)의 심오한 가르침 깨달았고, 조정을 깜짝 놀라게 하니 본말本末의 논의 깊이 연구하였네. 아름답도다. 세 분의 현자가 우뚝이 태어나시니 어찌 일대 호걸이 아니랴. 원림園林이 황폐하니 오래도록 부로父老들이 마음 아파하고 탄식하였도다. 백석白石과 청천淸川은 분명 낚시하고 노닐었던 맑은 풍광이요, 원숭이가 울부짖고 학이 나니 영령께서 오신 것만 같도다.
가만히 생각건대, 옛사람이 현인을 높일 때 향리에서 사당을 세운 경우가 많았도다. 장표張杓가 무숙茂叔을 제향할 때 반드시 자취가 남은 터에 사당을 세웠고,5) 한유韓愈가 거원巨源을 보낼 때에도 사당에 제사 지내며 축원하였도다.6) 이는 모두 아름다운 뜻을 먼저 얻은 것이니 바로 후학들이 마음을 다하기에 마땅하도다. 대개 수십 년 이래로 이미 사당 짓는 일에 거북과 시초蓍草가 길한 점괘 알렸으나, 아 우리의 시대가 어려운데 어찌 사치스럽게 일을 도모할 수 있었으랴. 세월이 덧없이 흘러 점차 아름다운 자취가 사라질까 한스러워하였네. 다행스럽게도 이제 농한기가 되었고 또 아주 좋은 시일을 만났도다. 산에 들어가 재목을 취하니 귀신의 은밀한 도움에 환성을 지르며, 힘을 내어 서로 일하니 무리지어 오는 자들을 뛸 듯이 기뻐하도다. 분분하게도 도끼질과 톱질에 바람이 일어 우뚝하게 큰 집이 얼마 되지 않아 섰도다.
도목수와 솜씨 좋은 장인은 길이와 양을 재는 데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었고, 의춘宜春의 옛 법도에 따라 세 선생에게 나란히 형과 아우의 차례를 두었도다.7) 몇 년을 염두에 두었다가 하루아침에 눈앞에 우뚝 섰도다. 산들이 나란히 벌려 서서 푸르름을 보내오니 알아주는 정에 감격한 듯하고, 한 줄기 시내는 감돌아 흐르며 옥 소리로 울리니 맑은 시내에 넉넉한 흥이 감돌도다.
생각건대, 평소 편안하게 여기던 곳이며 더구나 제물이 정결함에랴. 외숙과 생질, 형제가 한 사당에 모셔졌으니, 효성과 의리의 기풍과 공덕이 있는 가문이로다. 모범을 볼 수 있으니 탐욕스러운 자는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는 뜻을 세울 수가 있고, 성대한 의식을 장차 거행하려 하니 근심이 있는 자는 기뻐하고 병든 자도 소생하는 듯하도다. 처창悽愴과 훈호熏蒿8)한 영령의 정기를 가릴 수 없는 것이 참으로 이와 같아 강신제를 지내며 몸을 숙이고 펴니 사람들이 모두 일이 있음을 영광으로 여기도다. 들보 올리는 일을 도와 육위송六偉頌을 진술하도다.

젊은이들아 제물을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 兒郞偉抛梁東
한 가닥 도산의 원기 가운데로다 一髮陶山元氣中
아침저녁으로 구름이 이는 곳을 고요히 관찰하면 朝暮靜觀雲起處
뭉게뭉게 이는 생기 사람들과 함께하도다 油然生意與人同

젊은이들아 제물을 서쪽으로 던지니 兒郞偉抛梁西
연기 피어오르는 구성이 뚜렷이 보이도다 煙畔龜城望不迷
성 아래 몇 칸 집 문절공의 사당 있으니 城下數間文節廟
고상한 풍도와 곧은 도는 고금에 같도다 高風直道至今齊

젊은이들아 제물을 남쪽으로 던지니 兒郞偉抛梁南
희미하게 보이는 화산은 하늘에 닿을 듯하도다 花山隱隱與天參
아름답고 충만한 산천의 기운이 인걸을 낳으니 扶輿鬱積生人傑
어찌 손으로 꼽아 한두 마디로 말할 수 있으랴 屈指寧容一二談

젊은이들아 제물을 북쪽으로 던지니 兒郞偉抛梁北
섬돌 앞 한 가닥 물은 쌍백으로 이었구나 階前一水連雙白
흩어져 수많은 골짜기 되고 합하여 삼계가 되니 散爲萬壑合三溪
곧장 연원을 거슬러 가면 참으로 하나의 줄기로다 直溯淵源眞一脈

젊은이들아 제물을 위로 던지니 兒郞偉抛梁上
밝디밝은 구만리 하늘까지 신선의 거처 빛나도다 九萬昭昭璇宇朗
사방을 보니 한 점도 재앙의 기운 없으니 四望都無一點氛
수많은 백성은 다시 태평스런 모습을 보겠도다 餘氓復覩昇平象

젊은이들아 제물을 아래로 던지니 兒郞偉抛梁下
밥 짓는 연기 피는 마을이 큰 들에 있도다 煙火一村臨大野
곳곳마다 글 읽으며 강학하며 책 읽는 소리 處處伊吾講讀聲
난초와 사향 같은 은택을 기뻐하며 보겠도다 喜看麗澤薰蘭麝

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 선비의 교화가 일어나 규벽奎璧9)의 정기가 올라가기를. 성대하게 현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면 누군들 이를 통해 덕을 이루지 않으랴. 동규洞規와 가훈家訓은 북돋우고 덕을 기르는 터전이 되고, 의기義氣와 뛰어난 명성은 감동하여 마음을 일으키는 바탕이니 우뚝한 이 고장의 사당이 길이 천추에 법도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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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언(李尙彦, 1597∼1671) : 자는 용수(溶叟), 호는 성서(城西),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648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안악 군수·성균관 전적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성서집』이 있다.

2) 정 선생(鄭先生) : 정유일(鄭惟一, 1533∼1576)을 말한다. 자는 자중(子中), 호는 문봉(文峯), 본관은 동래(東萊)로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8년 문과에 급제하여 외직으로 진보·예안의 현감과 영천 군수를, 내직으로 대사간·승지·이조 판서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문봉집』과 편서로는 『명현록』이 있다.

3) 완락재(玩樂齋) : 도산서당의 남쪽에 있는 서재 이름이다. 정유일이 이황의 학맥을 이었기에 하는 말이다.

4) 성정(誠正) : 『대학장구(大學章句)』의 팔조목(八條目)에 속하는 성의(誠意)와 정심(正心), 곧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공부를 말한다.

5) 장표(張杓)가……세웠고 : 장표의 자는 정수(定叟)로, 장준(張浚)의 차자이며 장식(張栻)의 아우이다. 그가 원주(袁州)를 다스릴 때 군학(郡學)을 세우고 명륜당(明倫堂)과 계고각(稽古閣)을 지었으며,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 세 선생의 사당을 창건하였던 일이 있다.(『江西通志』 卷60)

6) 한유(韓愈)가……축원하였도다 : 거원(巨源)은 당나라 시인 양거원(楊巨源)을 말한다. 그가 70세에 치사(致仕)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한유가 그를 전송하며 지어 준 「송양거원소윤서(送楊巨源少尹序)」에 “옛날에 이른바 향선생으로 죽으면 사(社)에서 그를 제사 지낸다.”라고 한 말이 있는데, 그 지방 출신 대부(大夫)로서 벼슬에서 물러나서 시골에 내려와 서당을 세우고 학생을 가르친 사람이 죽으면 그 서당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7) 의춘(宜春)의……두었도다 : 순희(淳熙) 5년(1178)에 의춘 태수(宜春太守) 장광한(張廣漢)이 고을의 향교를 수리하고 강당 동쪽 청사에 주돈이(周敦頤)와 이정(二程) 형제를 모신 사당을 세운 일이 있다. 주희의 「원주주학 삼선생사기(袁州州學三先生祠記)」가 있다.(『晦庵集』 卷78)

8) 처창(悽愴)과 훈호(熏蒿) : 신(神)의 정기(精氣)가 나타난 상태를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에 “뭇 생명체는 반드시 죽고,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을 귀(鬼)라고 한다. 뼈와 육체는 아래에 묻히고 이것이 야토(野土)가 되면 그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소명(昭明), 훈호(焄蒿), 처창(悽愴)이 된다. 이것이 바로 백물(百物)의 정기가 되니, 여기에 신(神)이 나타난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다.

9) 규벽(奎璧) : 28수(宿)에 속하는 규수(奎宿)와 벽수(璧宿)의 병칭으로, 옛날에 문운(文運)을 주관한다고 여겼다.


*출처: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 -안동역사인물문집국역총서11 한국국학진흥원(2020.10) > 용재선생유고 > 부록附錄 > 묘우 상량문廟宇上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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